[문화칼럼][신창석의 문화사색] 아카데미의 향기



처음 철학을 배우면 삼단논법이 나오기 마련이다. 삼단논법은 말의 논리를 갖추는 방법이다. 그 중에 연역법의 예문으로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는 논리학 예문이요, 죽음의 예문이다. “인간”이라는 말 속에 이미 “죽음”이 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리요, 인간의 삶은 곧 죽어가는 도중이라는 단순하고 진실한 존재론이다. 실재로 소크라테스는 죽었고, 그의 죽음은 그리스 철학을 세계로 꽃피우게 하는 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귀족청년들의 영혼을 타락시킨 죄”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는 청년들과 진리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자유에 대하여 토론하기를 즐겼다. 그 시대에도 교육에 대한 치맛바람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청년들의 부모는 귀한 자식들이 장래를 위한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에 몰두하지 않고, 쓸 데 없는 토론으로 영혼을 낭비한다고 여겨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것이었다.

 재판에서 그 유명한 변론들이 있었으나,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언도를 받고 말았다. 그는 감옥에서 죽음과 영혼의 불멸에 대한 제자들과의 토론을 마지막으로 죽음에 이르는 한 잔 술을 기꺼이 받아마셨다. 소크라테스는 외상으로 제자들과 함께 먹은 닭 값을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그때가 기원전 399년이었다. 그가 독배를 마시던 순간 수제자 플라톤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지독한 독감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애통하게 여기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지중해 해안을 따라 올리브 꽃이 만발하던 봄날이 아니었을까?


<지중해의 올리브 정원>


 플라톤은 그날도 소크라테스를 그리워하며 아테네 근처 숲길을 거닐고 있었다. 문득 올리브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그는 그 향기를 따라 걸었다. 그 앞에 펼쳐진 것은 이미 오래전 신화의 시대에 아테나 여신이 들여왔다는 올리브 숲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올리브가 무성하다 못해 드넓은 정원을 이룰 수 있었을까? 역시 그리스 신화에는 여신 아테나를 도와 아테네를 지켜낸 영웅, 아카데모스장군이 나온다. 그런데 아카데모스(Akademos)의 무덤이 바로 올리브 정원 뒤에 있었고, 그 주변은 아테네인들에게는 성역이었다. 당연하다. 성스런 지역이니 사람들이 함부로 범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사이 올리브나무는 깊이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올리브나무는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감을 자극하는 생명의 나무가 아닌가. 

 

 마침 좋은 터를 찾아다니던 플라톤은 기원전 387년 드디어 올리브정원을 매입하였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원통한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사랑의 배움터를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지도 12년이 지난 때였다. 플라톤은 여기서 동문들과 새로운 자신의 제자들을 모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올리브 정원을 걸으며 인생에 닥쳐오는 난제를 대화로 풀어나갈 공동의 시간도 맞춘 것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올리브 정원”을 “철학의 정원”으로 만들어갔다. 바람에 실려 오는 올리브 향기는 아테네 청년들의 귀로 흘러들어 옛 생각을 전해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극했을 것이다. 


<토론하는 플라톤과 제자들>


 철학의 정원에 오던 사람들은 올리브 정원에서 산보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점차 궁금한 문제를 따라가며 심도 있게 토론하고 연구하다 보니 토론실과 연구실 그리고 도서관이 필요했다. 연중 연구와 강의를 매듭 짓는 시기에는 소크라테스의 탄생일과 사망일을 기념하는 학술행사도 개최하게 되었다. 이상을 추구하는 청년들이 모이다 보니 문화와 예술의 여신 뮤즈(Mouse)들을 기리는 종교적 축제가 가미되기도 했다. 배우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니 기숙사도 짓고 정원도 가꾸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학교 같은 구조를 갖추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엄밀한 학문”을 추구하는 차별화된 학제와 공간을 창조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오늘의 대학 풍경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아테네 시민들은 시외 북서쪽의 아카데모스 성역이라는 뜻으로 아카데미아(akademia)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제는 아카데미아를 들락거리는 좀 특별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생겼으니, 이들을 아카데미코스(akademikos)라고 부르게 되었다. 물론 “아카데모스 성역의 사람”이란 뜻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아카데미코스들은 시내를 떠돌며 토론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아테네 귀족청년 자신들이었으니, 아무도 고발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카데미코스들이 즐겨 드나들고 기쁜 마음으로 학문을 하던 곳은 다른 특별한 이름을 지을 필요도 없이 그냥 “아카데미아”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고고학 공원>


 아카데미아는 서양 역사에서 학교문화, 교육문화의 시효가 되었다. 오늘날 “아카데모스”라는 이름은 까맣게 잊혀버렸지만, 그리스어 Ἀκαδημία(Akadēmía)는 모든 언어사전에서 학술, 학원, 연구소, 학습소, 학교, 교육, 연구, 양성, 훈련 등을 의미하는 일반개념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영어의 아카데믹(academic)이라는 말도 장군같다거나 영웅같다는 뜻이 아니라, 무언가 학술적이고, 지적이며 고상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아카데믹한 사람, 아카데믹한 기질, 아카데믹한 분위기, 아카데믹한 전통, 아카데믹한 환경 등을 사랑하게 되었다.
 

 심지어 아카데미라는 말은 이제 너무 인기가 좋아서 아카데믹하게 포장하고 싶은 것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요즘은 특히 가짜나 사기, 사이비들이 아카데미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시중의 어딘가에 아카데미라는 말이 붙어 있으면 어느 구석이든 가짜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굳이 아카데미라는 말을 사용하는 종교, 집합소, 사업소, 사무실, 단체, 공동체들은 아카데믹하지 않은 치부를 아카데미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아카데미코스는 그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요, 아카데미는 그저 지혜를 사랑해서 즐겨 다니던 곳이요, 올리브 향기가 흩날리던 고요한 숲이다. 

신창석 교수 

국가민속문화재 제282호 청송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과 분가 고택 소유자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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