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서정리 9층 석탑을 떠올리며



서정리 9층 석탑을 떠올리며

윤흥식

전 논산중앙초등학교 교사   

 

 내 고향 청양군 정산에는 ‘서정리 9층 석탑’이 천 년 세월을 오로지 하고 있다. 오늘도 변함없이 녹야들 한 가운데에 우뚝 서서 민초들의 애환을 지켜보고 있는 고장의 자랑이다.

 

 1965년 늦가을로 기억된다. 당시 정산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나는 권오영 교장 선생님의 노력과 배려로 아주 특별하고 귀하신 세 분의 말씀을 듣는 행운을 얻었었다. 즉 학교 가까이에 있는 서정리 9층 석탑의 탑신이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안전을 위해 해체 복원하는 공사를 지휘, 감독하기 위해 현장을 찾으신 세 분의 고명하신 문화재 전문가 말씀이었다.

 

 1960년대 청양 지방은 정말 외지고 궁벽한 곳 중의 하나였다. TV는 고사하고 라디오조차 귀해 유선 방송을 통해야만 겨우 바깥세상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물론 서점조차도 없어 어쩌다 만화책 한 번 읽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문화적 욕구에 목말라하던 어린 중학생 180여 명에게 아마도 세 분의 말씀은 시원한 청량제였으리라고 믿는다. 내 자신은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세 분의 말씀이 또렷이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동국대학교 박물관장이신 황수영 박사님, 국립공주박물관장 김영배 선생님, 국립부여박물관장 홍사준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이 한 시간 넘게 문화재와 관련된 말씀을 해 주셨다. 아마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을 직접 뵙고 말씀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가슴이 설레고 흥분이 되었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가 가족은 물론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아주 자랑스럽게 세 분 자랑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세 분 중에서도 특히 홍사준 선생님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았다. 말씀의 깊이야 다 같으셨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퍽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접근하셨고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겼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문화재를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고 갈파하실 땐 속이 다 후련했었다.

 

 훗날 홍사준 선생께서 마지막 백제인이란 별칭을 얻으며 발로 뛰어 서산마애삼존불을 세상에 알리고, 계백장군 묘소를 확인하는 등의 쾌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역사적 사건이란 생각이다. 하여 오늘날 내 자신이 향토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어릴 적 홍사준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감동의 결과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가 자랄 때의 서정리 9층 석탑 주변은 퍽 을씨년스러웠다. 좁은 논길을 걸어 들어가면 협소한 공간에 잡초가 우거진 가운데 외로이 서 있어 퍽 쓸쓸해 보였었다. 거기에 달랑 안내표지판 하나가 전부였으니.

그러나 지금은 복원 작업을 해 그 때보다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 기쁘기 그지없다. 특히 옛 동헌 터 연못에서 자라던 연꽃을 가져다 백련지를 조성해 놓은 것은 박수를 칠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더 손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입로를 확실히 정비하고, 주차시설을 늘려 문화유산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답사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어릴 적 내 가슴을 울렸던 세 분 모두는 지하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문화유산의 계승 발전을 염원하고 계실 것이다. 따라서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백제 문화가 홀대 받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새로운 백제 역사를 찾아 헌신하신 홍사준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가야 할 책임이 오늘을 사는 충청인들의 과제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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