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문학은 고전문학에서 문학작품의 갈래 중 하나이다. 장르 자체의 폭넓은 개방성으로 양반가의 부녀자, 승려, 중서민 등 기술 능력을 갖춘 모든 계층의 대표적인 문학형식이다. 가사란 노래 가(歌), 말 사(詞) 즉, 말을 노래처럼 한다는 뜻으로 훈민정음 이후의 우리문학이다. 경상도는 서원이 많아 문학과 역사, 철학이 발달 되었다면, 전라도는 정자가 많아 시와 서화가 발달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들은 경상도가 선비문화, 전라도는 사림문화라고 한다.
전남 담양은 면앙정 송순의 면앙정가의 시작으로 송강 정철에 이르러 사미인곡, 성산별곡으로 꽃피우는 가사문학의 산실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또 그와 걸맞게 자연경관으로는 대나무 및 메타스퀘어 가로수길로도 유명하다.
가사문학과 관련되는 담양 지방의 정자와 그 특징을 살펴보자. 당시 여러 학자들은 이곳의 경관을 바라보며 풍류를 노래했을 것이다.
면앙정은 송순이 41세 때 관직에 잠시 물러나 고향인 담양에 그의 호를 딴 면앙정이라는 정자를 지었으며, 그때 면앙정가를 남겼다. 이곳에서 송순은 후학 선비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또한 퇴계 이황을 비롯한 유명인사들과 학문에 관해 토론하던 장소였다.
<가사문학의 태동이였던 면앙정 모습과 삼언가 현판>
송순이 면앙정을 짓고 나서 지은 유명 시조를 살펴보자.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즉, 면앙정가의 내용처럼 자신의 방을 달과 바람에 나누어주고 자연에 심취하여 아름다운 강산을 배경으로 지상 낙원을 연상하였을 것이다.
면앙정 안에 걸려있는 면앙정 삼언가는 다음과 같다.
면유지(免有地) 앙유천(仰有川) 정기중(亭其中) 홍호연(興浩然)
초풍월(招風月) 읍산천(挹山川) 부여장(扶黎杖) 송백년(送百年)
굽어보니 땅이 있고, 우러러보니 하늘이 있고. 그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호연지기가 일어나는구나.
바람과 달을 불러오고, 산과 내도 불러, 명아주 지팡이 짚고 백 년 여생 보내리라.
송순의 당시 심정을 잘 나타낸다.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식영정은 면앙정가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정철의 성산별곡을 탄생시킨 곳이다. 하서 김인후(金麟厚)의 문하에서 수학한 서하당 김성원이 자신의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그리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식영정의 모습과 정자 뒤에 위치한 성산별곡 시비>
정자는 주변의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 자연환경과의 조화가 뛰어난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식영정의 배산인 성산을 딴 《성산인곡》 시비가 정자 바로 옆에 있다.
영정 송강정, 환벽당과 더불어 정송강유적이라고 불린다. 서인에 속했던 정철은 1584년(선조 17) 대사헌이 되었으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해에 대사헌직에서 물러났다. 그후 창평(昌平, 담양의 조선 시대 지명)으로 돌아와 4년 동안 조용히 은거생활을 하였다.
가사문학을 꽃피운 송강정은 죽록정(竹綠亭)이라는 초막을 짓고 송강이 살았다. 지금의 송강정은 1770년에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식영정(息影亭)을 왕래하며 가사문학의 백미《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많은 시가와 가사(歌辭)를 지었다.
,송강정의 여름 모습과 정자 옆에 위치한 사미인곡 시비>
《사미인곡》은 임금을 사모하는 연군지정을 읊은 평서체의 노래이다. 《속미인곡》은 임금을 사모하는 심경을 남편과 이별하고 사는 부인의 심사에 비겨 자신의 충정을 고백한 대화체 내용이다. 이 시기에 정철은 아름다운 가사문학의 정취가 배어나는 비유를 어찌 이렇게도 잘 할 수 있었을까? 실의에 빠져 세상을 비관하고 음주와 영탄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한 주력이였을까?
정철의 은거와 관련된 송강정은 동남향으로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단층 팔작지붕이다. 중재실(中齋室)이 있는 구조로, 전면과 양쪽이 마루이고 가운데 칸에 방을 배치하였다. 정각 바로 옆에는 1955년에 건립한 《사미인곡》 시비가 있다. 정자의 정면에 ‘송강정(松江亭)’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당시의 이름인 ‘죽록정(竹綠亭)’ 편액이 있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정자 앞으로 흐르는 증암천(甑岩川)은 송강(松江) 또는 죽록천이라고도 한다.
자연친화적인 공간미가 일품인 조선 최고의 정자 소쇄원, 계곡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였으며, 대나무밭을 가로지르는 입구와 지형에 따라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건물들은 한국의 전통미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광풍각, 제월당 대봉대를 담은 소쇄원의 겨울 모습과 여름철의 입구>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인 소쇄원은 건축학이나 조경학 등을 전공하는 분은 '반드시' 답사 가는 곳 중 하나다. 이곳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그의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게 되어 죽게 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한 학문과 더불어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소쇄원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瀟灑翁)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오곡문(五曲門)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작은 폭포가 되어 정원 내 연못으로 떨어지도록 했다. 계곡 가까이에는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을 뜻하는 '주인집‘의 제월당(霽月堂)과 비온 뒤에 해가 뜨며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사랑방'의 광풍각(光風閣)이 있다. 광풍각 내에는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48영을 읊은 '소쇄원도, 瀟灑園圖'가 남아있어 옛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이곳 또한 당대 많은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했다.
<명옥헌에서 바라본 대조적인 계절 모습>
가사문학의 산실 담양은 화려한 경관에 어울리게 주옥같이 많은 정자를 간직하고 있다. 다 열거하지 못한 환벽당, 명옥헌 등 정원 조성지도 너무나 경관이 수려하다. 따라서 이렇게 경관 좋은 곳에서 옛 선현들의 문학을 싹 띄우는 기틀을 마련한 담양에서 훌륭한 정신세계의 힐링 장소가 되기를......
정중수 교수
국립안동대학교 공과대학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가사문학은 고전문학에서 문학작품의 갈래 중 하나이다. 장르 자체의 폭넓은 개방성으로 양반가의 부녀자, 승려, 중서민 등 기술 능력을 갖춘 모든 계층의 대표적인 문학형식이다. 가사란 노래 가(歌), 말 사(詞) 즉, 말을 노래처럼 한다는 뜻으로 훈민정음 이후의 우리문학이다. 경상도는 서원이 많아 문학과 역사, 철학이 발달 되었다면, 전라도는 정자가 많아 시와 서화가 발달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들은 경상도가 선비문화, 전라도는 사림문화라고 한다.
전남 담양은 면앙정 송순의 면앙정가의 시작으로 송강 정철에 이르러 사미인곡, 성산별곡으로 꽃피우는 가사문학의 산실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또 그와 걸맞게 자연경관으로는 대나무 및 메타스퀘어 가로수길로도 유명하다.
가사문학과 관련되는 담양 지방의 정자와 그 특징을 살펴보자. 당시 여러 학자들은 이곳의 경관을 바라보며 풍류를 노래했을 것이다.
면앙정은 송순이 41세 때 관직에 잠시 물러나 고향인 담양에 그의 호를 딴 면앙정이라는 정자를 지었으며, 그때 면앙정가를 남겼다. 이곳에서 송순은 후학 선비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또한 퇴계 이황을 비롯한 유명인사들과 학문에 관해 토론하던 장소였다.
<가사문학의 태동이였던 면앙정 모습과 삼언가 현판>
송순이 면앙정을 짓고 나서 지은 유명 시조를 살펴보자.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즉, 면앙정가의 내용처럼 자신의 방을 달과 바람에 나누어주고 자연에 심취하여 아름다운 강산을 배경으로 지상 낙원을 연상하였을 것이다.
면앙정 안에 걸려있는 면앙정 삼언가는 다음과 같다.
면유지(免有地) 앙유천(仰有川) 정기중(亭其中) 홍호연(興浩然)
초풍월(招風月) 읍산천(挹山川) 부여장(扶黎杖) 송백년(送百年)
굽어보니 땅이 있고, 우러러보니 하늘이 있고. 그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호연지기가 일어나는구나.
바람과 달을 불러오고, 산과 내도 불러, 명아주 지팡이 짚고 백 년 여생 보내리라.
송순의 당시 심정을 잘 나타낸다.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식영정은 면앙정가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정철의 성산별곡을 탄생시킨 곳이다. 하서 김인후(金麟厚)의 문하에서 수학한 서하당 김성원이 자신의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그리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식영정의 모습과 정자 뒤에 위치한 성산별곡 시비>
정자는 주변의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 자연환경과의 조화가 뛰어난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식영정의 배산인 성산을 딴 《성산인곡》 시비가 정자 바로 옆에 있다.
영정 송강정, 환벽당과 더불어 정송강유적이라고 불린다. 서인에 속했던 정철은 1584년(선조 17) 대사헌이 되었으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해에 대사헌직에서 물러났다. 그후 창평(昌平, 담양의 조선 시대 지명)으로 돌아와 4년 동안 조용히 은거생활을 하였다.
가사문학을 꽃피운 송강정은 죽록정(竹綠亭)이라는 초막을 짓고 송강이 살았다. 지금의 송강정은 1770년에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정철은 이곳에 머물면서 식영정(息影亭)을 왕래하며 가사문학의 백미《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많은 시가와 가사(歌辭)를 지었다.
,송강정의 여름 모습과 정자 옆에 위치한 사미인곡 시비>
《사미인곡》은 임금을 사모하는 연군지정을 읊은 평서체의 노래이다. 《속미인곡》은 임금을 사모하는 심경을 남편과 이별하고 사는 부인의 심사에 비겨 자신의 충정을 고백한 대화체 내용이다. 이 시기에 정철은 아름다운 가사문학의 정취가 배어나는 비유를 어찌 이렇게도 잘 할 수 있었을까? 실의에 빠져 세상을 비관하고 음주와 영탄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한 주력이였을까?
정철의 은거와 관련된 송강정은 동남향으로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단층 팔작지붕이다. 중재실(中齋室)이 있는 구조로, 전면과 양쪽이 마루이고 가운데 칸에 방을 배치하였다. 정각 바로 옆에는 1955년에 건립한 《사미인곡》 시비가 있다. 정자의 정면에 ‘송강정(松江亭)’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당시의 이름인 ‘죽록정(竹綠亭)’ 편액이 있다. 둘레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고 정자 앞으로 흐르는 증암천(甑岩川)은 송강(松江) 또는 죽록천이라고도 한다.
자연친화적인 공간미가 일품인 조선 최고의 정자 소쇄원, 계곡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였으며, 대나무밭을 가로지르는 입구와 지형에 따라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건물들은 한국의 전통미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광풍각, 제월당 대봉대를 담은 소쇄원의 겨울 모습과 여름철의 입구>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인 소쇄원은 건축학이나 조경학 등을 전공하는 분은 '반드시' 답사 가는 곳 중 하나다. 이곳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그의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게 되어 죽게 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한 학문과 더불어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소쇄원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瀟灑翁)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오곡문(五曲門)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작은 폭포가 되어 정원 내 연못으로 떨어지도록 했다. 계곡 가까이에는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을 뜻하는 '주인집‘의 제월당(霽月堂)과 비온 뒤에 해가 뜨며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사랑방'의 광풍각(光風閣)이 있다. 광풍각 내에는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48영을 읊은 '소쇄원도, 瀟灑園圖'가 남아있어 옛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이곳 또한 당대 많은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했다.
<명옥헌에서 바라본 대조적인 계절 모습>
가사문학의 산실 담양은 화려한 경관에 어울리게 주옥같이 많은 정자를 간직하고 있다. 다 열거하지 못한 환벽당, 명옥헌 등 정원 조성지도 너무나 경관이 수려하다. 따라서 이렇게 경관 좋은 곳에서 옛 선현들의 문학을 싹 띄우는 기틀을 마련한 담양에서 훌륭한 정신세계의 힐링 장소가 되기를......
정중수 교수
국립안동대학교 공과대학
정보통신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