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신창석의 문화사색] 소크라테스의 유언



 “네 자신을 알라, Γνῶθι σεαυτόν!”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로신전 제단에 새겨진 말이다. 돈을 싸들고 점치러 오는 귀족이나 왕들에게 미래를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라는 제사장들의 안쓰러운 배려일 것이다. 제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다 고개만 들면 바로 보이도록 새겨둔 것이 아닐까? 내일 일이 그렇게도 궁금한가? 그러면 먼저 네 자신을 알라!  


<어느 성벽에 새겨진 “네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일생은 깨달음을 향한 여로였다. 그 스스로를 깨닫고 제자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고, 그것이 그의 일생이었다. 그런 소크라테스가 처음 깨달은 것은 너무 많이 아는 듯이 설쳐대던 그 시대의 궤변론자들 덕분이었다. 궤변론자란 소피스트(Sophist)를 번역한 것이고, 소피스트는 원래 “지혜로운자”를 뜻한다. 소포스(Sophos)가 지혜를 뜻하니까. 소피스트들은 지식을 팔아서 먹고 살았다. 그들은 주로 말을 잘 꾸며대는 수사학이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설득하는 웅변술을 가르쳤다. 말만 잘하면 돈도 벌고, 권력도 잡고, 심지어 왕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판매할 정도로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아폴로신전의 경고를 인용한 것이다. “네 자신을 알라!” 그러나 이 말을 던지면서 소크라테스 자신은 무엇을 깨달았다는 말인가. 소피스트들은 스스로 안다고 여기지만, 소크라테스 자신은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보다 적어도 하나는 더 알았다. 즉 자신을 모른다는 간단한 사실을.
 

<소크라테스의 흉상, 그리스 원작에 대한 로마시대 복각, 루브르박물관 소장>


 이렇게 열린 깨달음의 길은 사형으로 마감된다. 소크라테스는 무슨 범죄를 저질렀길래 사형언도를 받았을까? 사기 절도 강도 강간 살인도 아니요, 배임이나 국정농단도 아니요, 간첩이나 매국도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아테네 귀족청년들의 영혼을 타락시킨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 어쩌면 그 발단은 귀족청년들에게 있었다. 장차 아테네의 국가 지도자가 될 청년들은 당연히 소피스트들을 따라다니며 수사학과 웅변술을 배우고, 경기장에 나가 마장마술이나 무술을 익히며 육체를 단련했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들이 귀한 아들들에게 기대하는 지식과 용맹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 귀족청년들은 소피스트들에게 배우러 가지도 않았고, 경기장에 충실하지도 않았다. 그럴 시간에 그들은 소크라테스와 함께 시장통이며 통닭집으로 몰려다니며 별 소용없이 보이는 주제에 열을 올렸다. 선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덕스럽게 살 수 있는가? 채소나 고기 파는 곳은 잘 아는데, 교양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2500년이 지난 현대의 어머니들도 그럴진대, 당시 귀족사회의 부모들이 보고만 있었겠는가. 부모들은 아들들을 말리다 못해 소크라테스 자신을 격리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것도 아예 영원히.   

 그렇게 사형언도를 받은 소크라테스의 최후는 그의 사랑하는 제자 플라톤이 《파이돈》이란 책에 고스란히 기록해 두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약 기운이 온 몸에 퍼질 때까지 몇 마디의 말을 절도에 따라 이어간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제일 먼저 아내와 집안 여자들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의 죽음에 이르러 통곡하거나 부끄러운 행동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독배를 받아들자 독배이긴 하지만 신에게 받쳐도 좋은지 간수에게 물어본다. 간수가 허락하자 신에게 헌주를 하며 말한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여행이 편안하도록 기도드리오니, 내 기도대로 이루어지소서.” 독배를 마신 후 독이 하반신부터 상체로 퍼져 올라오자, 마지막으로 제자 크리톤을 부르며 말한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 외상이 있네. 미루지 말고 갚아주게.”
 

<테오도르 그로세 Theodor Grosse, 「소크라테스의 최후」, 1880년경>


 소크라테스는 물론 “악법도 법”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이는 억울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뜻이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보다시피 닭 한 마리 외상값을 대신 갚아달라는 간단한 부탁이었다. 여기에는 학자들의 분분한 해석이 있다. 

 첫째로,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이며, 소크라테스는 그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바치고 싶었다는 해석이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영물은 닭과 뱀이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닭을 바침으로서 자신의 영혼불멸설을 다짐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자신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불멸하게 될 것이니, 의술의 신에게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바쳐달라는 것이다. 

 

 둘째로, 소크라테스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빗대어 던지는 생의 마지막 농담이라는 해석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으로서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려냈지만, 그 자신은 너무 나갔다고 여긴 제우스 신의 벼락을 맞아 죽어버렸다. 남의 삶과 죽음을 가지고 놀았던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받치자는 익살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유언으로?

 

 닭 한 마리를 받치는 것이 감사의 제물이든 단순한 농담이든, 아스클레피오스를 신으로 해석해야 된다. 그러면 아스클레피오스 신화에 대한 해석과 영혼은 죽음을 통해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오르페우스교의 교리 그리고 소크라테스 자신의 영혼불멸설을 교묘하게 잘 엮어내야 가능한 해석이다. 누가 마지막 숨결을 놓으면서 그렇게 상징적이고, 비유적이며, 복잡하고 오묘한 말을 남길 힘이 있겠는가?  

 셋째로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냥 외상 있던 통닭집 주인이라는 단순한 이해이다. 이것이 와 닿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변변한 학교나 교실이 없었으며, 소크라테스 자신도 제대로 된 벌이가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다만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제자를 건지고, 양지 바른 공터나 통닭집을 돌아다니며 토론을 벌였다. 귀족 청년들의 부모들이 하찮게 여기는 선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덕에 대하여, 인격에 대하여, 영혼불멸에 대하여...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말하자면 오늘날 길 위의 인문학을 죽기까지 즐기고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니 외상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도 한 마리뿐 이었겠는가? 또 혼자만 먹은 것이 아니었므로, 우리의 외상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동양의 위대한 선사들은 죽음에 이르러 열반송을 남겼다. 소크라테스의 유언 못지않게 간단명료하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 말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원하던 삶을,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증표가 아닐까?

 이 세상을 살면서 빚진 것을 갚으려는 마지막 한 마디, 그 속에 참된 삶의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마지막 숨결을 빚 갚는데 사용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깨달은 자의 품격이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알았기에, 그 누구와도 다른 이 한마디로 억울한 독배의 인생을 가뿐이 넘어선 것이다. “여보게, 닭 한 마리 외상값 좀 갚아주게!” 

신창석 교수 

중요민속문화재 제172호 청운동 성천댁 소유자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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