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중 정원가 예찬 24] 중국원림의 바이블! 계성(計成)의 ‘원야(園冶)’



몇 년 전 국내외에서 관심을 끌었던 와호장룡(臥虎藏龍)이라는 중국의 무협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특히 아름다운 영상미로 극찬을 받았고 그로 인해 동양 고전 속의 자연이 주는 경관미, 특히 중국 강남원림에 대한 많은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중국이 경제·문화적으로 부강을 누린 시기인 명·청대(明淸代)의 수많은 원림들이 지닌 심미적 가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철학이 되어 오늘날 그 인문학적 가치를 칭송 받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강남원림은 그 조영방식이 매우 과학적이고 철학적이며 또한 오랜 경험이 함축된 공감각적인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원림들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자연을 재현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때로는 거대한 괴석을 과감하게 배치하여 인공을 스스럼없이 내보임으로써 오히려 호탕한 면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중국의 원림 조영방식은 지금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며 하나의 독특한 조영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인물이 바로 계성(計成)이다. 계성은 원야로 국내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다. 계성하면 웃지못할 일화가 늘 따라다닌다. 한국의 조경사(造景史)가 일본을 통해 번역한 책으로 정보를 얻던 초창기 때에 일본학자가 오역한 책을 그대로 국역하다보니 계성의 성씨가 이씨로 둔갑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참동안 시험문제에서 원야의 저자가 ‘이계성’으로 표기된 적이 있었다. 성씨가 ‘계’씨에서 ‘이’씨로 바뀌었으니 계성이 들으면 통탄할 일이다. 계성의 원야는 ‘한문학계의 정원전문가’인 안대회 교수께서 번역하여 소개되었고 우리나라에선 중국원림분야의 바이블이 되었다.


<개성기념관>


  계성(1582~1642)은 중국 강소성 소주(蘇州) 오강현(현 吳江市)출생으로 자는 무부(無否), 호는 부도인(否道人)이다 중국 명대(明代:1368~1644)사람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유년시절부터 다양한 방면의 학식을 쌓았으며 청년시절 귀족의 소양 덕목중 하나인 산수화에 심취하였다. 당시 유행하였던 심주(沈周) 문정명(文徵明) 당연(唐寅) 구영(仇英) 등의 명대 강남 산수화에 조예가 깊고 더 나아가 원대(元代)와 오대(五代)시대의 형호(荊浩)와 관동(關仝)의 화풍으로 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히며 소양을 쌓았다. 특히 그의 수많은 산수 유람과 원림 및 명승 유람 경험은 훗날 원림 조영에 기초를 이루게 된다. 계성은 청년시기 북경 호남 호북 등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두루 다니며 조원의 기초를 익혔으며, 중년이후 가세가 쇠락하여 강남으로 돌아와 전강(鎮江)에 자리를 잡게 된다. 벼슬에 올랐으나 순탄하지 못해 더욱 조원과 원림경영에 몰두하게 된다.


<원야>


 남송 이후 중국은 남방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의 중심을 이동하였고 명대에 이르러서는 강남일대가 중국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었다. 중국의 소주 항주를 중심으로 대단위의 유명 원림들이 조성되었고 이는 계성으로 하여금 원야를 집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명나라가 1421년 북경으로 수도를 천도 한 후 계성은 붕당에 휩싸여 환관 위충현(魏忠賢)을 주축으로 하는 엄당(閹黨)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결국 정치에 중심에 서지 못하는 불운을 얻게 되고 조원가로서의 명성만이 남게 된다.  1623년 계성은 진사 오현(吳玄)의 요청으로 약 3400㎡의 면적에 동제원(東第園)을 조영하였다, 동제원은 그 본래 지역의 특성을 살려 산수화의 기법을 빌려 조영되었으나 기존 원림들의 산수화적 기법을 차용한 단계를 넘어 이수(理水)와 첩석(疊石) 및 그 전체를 조감(鳥瞰)적 경지로 승화시켜 창의적으로 설계했다.


<석조원>


 1632년에는 왕사형(汪士衡)의 청으로 오원(寤園)과 남경에 석조원(石巢園)을 조영하여 그 명성을 떨치며 조원가로서의 20여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야를 집필하게 된다. 원야는 1631년에서 1634년 사이 쓰여졌으며 총 3권으로 구성되어있다. 원야 집필 당시에는 ‘원목(園牧)’이라 불리었으나 조원보(曹元甫)가 계성이 조영한 수많은 원림을 감상한 후 ‘원야(園冶)’로 명명하기를 제안하여 지금까지 ‘원야’라 지칭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흥조론(興造論)과 원설(園說)로 나뉘어져 있는데 흥조론은 서문으로서 원림 조영자로서 간략한 집필사유 등을 소개하고 있다. 원림조영에 관한 본론적인 내용은 ‘원설’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이 내용은 건조물을 주체로 한 내용과 건조물에 부속된 구조물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특정 요소의 축조 및 활용방안을 적고 있다. 원설은 상지(相地), 입기(立基-지형 선택 등에 관한내용), 옥우(屋宇), 장절(裝折:장식 및 설비), 난간, 문창, 장원(墙垣:담벽), 포지(鋪地:바닥 포장 등),철산(掇山:첩산-돌쌓는법), 선석(選石:돌고르는법),  차경(借景)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야>


 이중 가장 중요한 상지(相地)는 원림계획 및 설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원림을 조영하고자 할 때, 대상공간의 특징과 설계내용의 결합 및 배치를 의미하며 상반상성(相反相成)의 이론에 따라 원림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과 지형 공간을 고려하여 서로 조화로우며 각기 다른 형태를 창출해 내는 방식이다. 또한 계성은 원림 조영에 있어 특히 첩산의 역할을 중시하였는데 이는 인공적인 조영 방식이기는 하지만 자연을 풍모를 이끌어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계획된 수체계와 가산 등 수토(水土)로만 구성된 인공적 공간에 첩석을 가미함으로서 자연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다양한 요소들의 조성 방식은 생태적, 미적, 화의(畫意)적 아취인  중국의 인문학적 개념을 공간감적 개념으로 형상화 시킨 형태이다.
원림의 흥조론에서 계성은 "三分匠, 七分主人"이라 기술한 대목이 있다. 이는 원림의 조영을 주관하는 설계가(주인)의 중요성을 간단명료하게 나타낸 것이다. 원림 조영에 있어 설계가가 그 지형을 살피고 각 요소를 가장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 7할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는 내용으로 계성의 원림조영에 관한 기본의식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저서가 ‘원목’에서 ‘원야’로 개명된 것은 당대 사람들이 계성의 조원양식을 어떻게 평가 하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원목(園牧)’의 ‘원’은 ‘다스리다’라는 뜻이나 ‘야(冶)’는 흔히 ‘곱게 단장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나 진정한 의미는 ‘야금하다’ 즉 ‘보잘 것 없는 광석을 그 쓸모에 맞게 힘을 들여 가공하여 그 빛을 발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원림조영에 있어 계성이라는 인물의 업적을 세상이 인정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원림의 조영방식과 그 변천과정을 계성의 원야가 탄생하기 전후로 나누어 연구되어 왔다. 이는 계성의 사상과 원림 조영방식이 얼마나 기존의 조영방식을 뛰어넘어 정교하고 계획적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지리학적 개념에 기초하여 이수(理水)와 상지(相地)에 능통한 후 원림의 구성요소들을 그 특징에 맞추어 배치하는 것은 기존의 원림조영에서 볼 수 없었던 부분이다. 그러나 ‘원야’는 당시 사대부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였고 단지 개인적 취미로 저술된 것으로 평가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 청대에 이르러 원야와 계성이 재평가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후락원>


 계성의 조원 기술방식은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 전해 졌으며 특히 일본 강호시대(江戶時代)의 명원으로 알려진 후락원(後樂園)은 원야를 기초로 하여 조영된 대표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계성의 원야는 현재까지도 중국원림의 바이블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현실
중국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
(사) 한국전통조경학회 집행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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