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신창석의 문화사색] 별의 들마루



우리 어릴 적에는 애들이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게다가 시골에는 병원도 거의 없었지만, 급히 병원으로 달릴 만큼 탈 것도 없었다. 우리 동네에는 그저 조그만 찬장에 두통약이나 배탈약 그리고 약간의 바르는 약을 옹기종기 올려놓고 파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을 뿐이다. 나라를 잃었다가 동족 전쟁까지 치렀으니, 그 가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여느 아이들처럼 나도 잔병치레가 많았다. 그나마 내 생명은 다행인 셈이었다. 산부인과도 아닌 안방에서, 의사도 아닌 이웃집 할머니들의 산파로 태어나, 다들 그랬던 것처럼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지만, 이렇게 자라온 장면을 돌이켜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집에는 부엌을 반이나 차지하는 새까만 들마루가 하나 있었다. 무슨 칠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궁이의 연기에 그을리고, 걸레질하는 손때가 들러붙은 까마득한 세월일 뿐이었다. 거기서 온 식구들이 둘러 앉아 밥도 먹었고, 학교 갔다 오면 책보자기도 던져놓았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그 위에 드러누워 떼를 쓰기도 했다. 마당 한견에 배꽃이 떨어져 지저분해질 즈음이면, 들마루를 옮겨다 그 위에 덮었다. 해마다 여름은 들마루 위에서 작열했고, 무말랭이며 곶감을 깎고 남은 감껍질을 말릴 즈음이면 들마루 밑으로 서늘한 가을이 지나갔다.

 자라기에 성급한 아이들은 텃밭이나 마당가에 늘어선 과실나무의 설익은 것들을 따먹곤 했다. 토마토며 참외, 살구나 자두, 대추나 포도알이 약간이라도 익는 색깔이 돌면 바로 골라서 따먹곤 했다. 푸른 땡감은 항아리에 넣어 푹 삭여야 하지만, 늘 조금 일찍 건져 먹곤 했다. 뒷산에 오르면 잔대를 캐먹기도 했고, 다람쥐보다 재빨리 알밤을 찾아먹기도 했다. 그러니 늘 배탈을 달고 다닐 수밖에. 

  해가 빠지면 늘 배가 아팠고, 배가 아프면 들마루로 기어올랐다. “내 손이 약손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 할머니는 자상하게 물었다. 여기? 저기? 아직 아프나? 이제 다 나았나? 그러면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할머니, 이야기 한 자루만!” 할머니의 따뜻한 무릎에 머리를 괴고 누웠을 때, 이미 나는 어디가 아픈지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할 때는 마당 건너편의 뒷간 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느 집이건 대낮에는 멀쩡하다가도 밤이면 소름 끼치는 곳이 있지 않은가? 오래 거길 째려보면 무언가 희무스름한 것이 펄럭이는 것 같기도 하고. 효성이 지극한 아이 이야기나 불쌍하기 짝이 없는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잘 알아듣지는 못해도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물론 그 다음 자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지만, 맞장구가 시들하면 할머니가 먼저 잠든 척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따금 할머니가 확인 차 나를 내려다 볼 즈음이면 어쩌나 확인할 즈음이면, 나는 검고 푸른 하늘의 까마득한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라이 박혀 있는 것은 별이요, 이리저리 포물선을 그리는 것은 반딧불이다. 크기는 그만그만했지만 하나 같이 푸른빛은 반딧불이요, 미세하나마 여러 가지 색깔로 반짝이는 것은 별이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별들이 컬러풀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하나 구별해 낼 수는 없지만, 똑같은 빛을 내는 별은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는 용케도 별을 보는 눈동자를 알아차렸다. 어느새 게으른 선비가 떨어뜨린 수박이 떼굴떼굴 떽떼굴... 소나무 옆을 지나 또 떼굴떼굴 떽떼굴... 하염없이 굴러가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마저 통하지 않으면 쥐가 쥐의 꼬리를 물고 또 그 다음 쥐가 쥐의 꼬리를 물고... 한없이 강을 건너고 있을 때면, 이미 나는 깊은 별에 빠져들었던 모양이다. 그 수박이 어디서 멈추었는지, 그 쥐들이 무사히 강을 건너갔는지. 아직도 나는 그 이야기의 끝자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의 그 다음을 알 수 없듯이...

 요즘 하늘에는 별 보기가 거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오히려 저 회색빛 하늘 너머 어딘가에서 지구별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지 않을까? 아무런 힘도 없이 드리운 눈시울에 너그러움만 남아 빛나던 할머니의 눈동자가 보고 있지 않을까? 저 별에서 바라본 지구는 어쩌면 꺼질 듯 말 듯 반짝이는 초록의 별이리라. 수없이 지나간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반짝이는 초록의 별이리다. 

 

 할머니는 어쩌면 저 멀리서 되돌아보기 위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마루에 새겨놓았는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당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한(恨)을 옛날 옛적에 지나간 이야기로 풀어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픈 배를 어루만지면서 운명을 달랬는지도 모른다. 지구를 여행하는 오늘의 인생길이 비록 난해하고 우울할지라도, 다른 하늘에서 바라보면 찬란한 별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오늘의 지구가 내일의 별이 된다는 것을, 오늘의 이야기는 내일의 추억이라는 것을, 그 들마루는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저 하늘의 어느 모퉁이에서 초록별을 바라보게 되리라는 것을 유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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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석 교수 

중요민속문화재 제172호 청운동 성천댁 소유자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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