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관련 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한국적인 정원양식이 확립된 시기를 조선 후기로 보고 있다. 대체로 한국의 정원은 중국과 일본의 정원에 비해 언뜻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문화의 전래와 함께 일본정원의 태동기에 영향을 준 백제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 유교문화의 영향은 우리 정원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조선 시대 원림문화의 중흥은 백제에서 통일신라,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축적된 인간과 자연과의 절충점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중 고려 시대 원림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선생이다. 최초의 이동식 정자인 사륜정(四輪亭)에 관해서는 7번째 칼럼에서 집중 조명한 바 있다. 금번호에서는 사륜정에서 그 시각을 넓혀 그의 생애와 방대한 저작을 통해 정원분야에 미친 업적을 중심에 두고자 한다. 이는 시서화를 중시한 당시 경향과 정원과의 관련성이 매우 큰 것을 전제로 이규보가 원림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재조명하기 위함이다.

<이규보 국가표준영정 사진제공=문체부 한민족정보마당 홈페이지>
이규보는 고려 고종 때의 문장가로 고려 오백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다. 그의 시는 8천여 편에 달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만 헤아려도 2,077편에 이를 만큼 방대한 저작활동을 했다. 그의 대표작인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文集)》과 《백운소설(白雲小說)》등의 저서와 천마산시, 모중서회, 고시십팔운, 초입한림시, 공작, 재입옥당시, 초배정언시, 동명왕편, 모정기,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 등의 많은 작품이 전한다.
서거정은 그를 동방의 시호라고 예찬한 바 있고, 일본의 저명한 한문학자 하시모토는 조선의 문학자로서 소동파에 견줄 만한 인물로 이규보 선생을 지목했다. 특히 이규보의 《동국이상국문집》을 내세우며 백거이를 닮은 점도 없지 않지만 소동파적 문인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규보는 당시 내로라하는 문장가들인 이인로, 오세재, 임춘, 조통, 황보항, 함순, 이담지와 교유하면서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이규보 선생이 자신에게 붙인 호로 그 뜻을 밝히기를 흰 구름을 흠모해서 지은 것이라 했다. ‘어떤 것을 흠모하여 배우면 비록 그 본질을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그와 비슷하게는 되지 않겠나. 거사라 한 것은 비록 집에 살고 있지만 도를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그의 집에는 식량이 떨어져 끼니를 잇지 못하는 일이 잦았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쾌하게 지냈다 한다. 성격이 소탈하여 스스로를 잡도리할 줄 몰랐으며 온 천지와 우주를 좁게 여겼다. 항상 술을 마셔 어질어질하면서도 누구라도 불러 주면 반가이 나갔다가 잔뜩 취해서 돌아오곤 했으니 아마도 옛날의 애주가 시인 도연명과 같은 무리가 이규보 자신과 같지 않겠냐며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동국이상국집 자료제공=http://leekihwan.khan.kr/430>
백운거사는 취하면 시를 읊고 스스로 전을 짓고 찬을 지었다. 또 그는 문장이 없으면 사람은 그 영혼을 신묘하게 할 수 없다고 했으니 그가 자주 주제로 삼은 자연과 원림은 그에게는 영혼을 신묘하게 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당시 이규보와 같은 식자층들은 고문의 문체를 중시하여 묘석에 새길 비지, 풍경, 누정의 연혁을 밝히는 기(記) 등을 자주 썼다. 세간에 이규보에 대한 평가 중에는 관직에 상당히 집착했던 것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두고 자신의 글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보전하기 위해서 관직에 나가기를 소망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할 만큼 후세의 사람들은 그의 저작을 칭송한다.
이규보는 1207년 최충헌에 대한 노골적인 예찬을 담고 있는 <모정기(茅亭記)>를 통해 관운이 트이게 된다. 이 시는 정자를 주제로 담고 있는데 특히 그는 누정에 관한 내용을 많이 다루었다. 한국 누정기가 신라 말 최치원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고려 시대에 이르러 이규보는 기존의 누정기가 지닌 실용적 기록물 성격에서 탈피하여 개인적인 심상과 의식을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물로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음이 20여 편에 달하는 현존하는 그의 누정기를 통해 확인된다.
이는 누정의 조성과정에 관한 기록, 누정 주변의 산수경물에 관한 묘사, 누정 명칭과 관련된 논설이 주를 이루었는데 특히 누정의 이름이 지닌 의미와 이를 누정주인의 인격과 연결시키는데 집중하였다(안세현,2015). 이러한 현상은 원림문화에 끼친 유교적 영향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선비들 사이에 유행했던 사상으로 자연과 친화함으로써 산수지락(山水之樂)의 감흥과 인지지락(仁智之樂)의 경지를 터득하는 수련문화의 주를 이루었다(정치영,2016). 유교적 심신수양의 방법론은 원림경영의 주된 목적과 태도로 정착된다. 이들은 원림을 통해 여생을 위한 자기만의 은둔의 장소를 만들어가면서 그 곳을 동학들과 학문을 나누고 후학들을 양성하는 공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규보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이러한 원림 향유문화의 전형을 만들어 간 것이다. 그의 글은 후대의 문인들을 통해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특히 그의 원림애호는 글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를 몸소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그만 정원을 손질하며’ 라는 글에 이러한 점이 잘 스며있다.
‘성 동쪽의 집에는 윗뜰 가로 세로 30보 정도가 되고 아랫 뜰은 가로세로 10보정도 되는 규모의 정원이 있다. 조그만 뜰 정도라면 내 힘으로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게으른 종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정돈하였다. 우선 말라 죽은 나무를 베어 내고 더부룩한 잎들을 잘라 내었다. 그리고 낮은 땅은 북돋우고 높은 땅은 깎아서 바둑판처럼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매우 간결한 지형처리의 사례로 흔히 한국정원에 있어 자연에 순응하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자연을 닮아 곡선적인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것처럼 알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정원의 구성은 건축선의 연장을 기반으로 한 직선을 기본으로 하며 간결미를 추구한다. 전통정원의 중요요소인 연못과 화계 또한 직선이 기본 구획이 된다. 또 이규보는 정원의 한가로움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정원을 만들어 놓으면 평상복인 베옷을 입었을 때나 벼슬아치의 관복을 입었을 때나 언제든지 거닐 수 있고 대자리를 깔고 돌베개 베고 누워있기에도 좋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마당에 흩어지고 맑은 바람이 절로 불어오는 이곳에서, 내 옷자락을 잡고 따라다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즐겁고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낼 수 있으리라. 그러니 이 또한 한가로이 지내는 사람에겐 낙원인 것이다.’
이규보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해 10월에 화초를 기르기 위해 온실을 짓는 것을 보고 이를 꾸짖으며 그가 한 말이다. “봄에 꽃피었다가 겨울이면 시드는 것은 풀과 나무의 일반적인 성질인데 이걸 억지로 뒤집으면 비정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비정상적인 물건을 만들어서 시도 때도 없이 구경거리로 삼는다면 이는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일이다.” 라며 온실을 걷어치우게 했다 한다. ‘과일나무 접붙이기’ 란 제목의 글에서는 수목에 관한 지식도 해박했음을 알 수 있는데 부친의 영향으로 밝히고 있기도 하다. 정원의 꽃을 주제로 한 시도 ‘꽃을 가꾸며’, ‘취중에 꽃구경’, ‘국화를 두고’ 등 그 수가 적지 않다.
이규보의 문장을 통해 보면 정치한 자연묘사, 생생한 심상표현 등이 돋보이는데 이는 자연경관과 원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모자람이 없었으며 또한 원림전문가였음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체험을 진솔하게 담았고 그의 자연관에 입각한 원림애호에 관한 실천이 맞물려 후대의 원림향유문화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원동력이 된 셈이다.
<참고문헌>
김윤식, 김종회 엮음(2014), 이병주 역사기행, 바이북스
이규보 지음, 김상규, 류희정 역, 이규보 작품집, 동명왕의 노래, 보리
이규보 지음, 김하라 편역(2006),이규보 선집, 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돌베개
안세현(2015), 누정기를 통해 본 한국한문산문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정치영,박정혜,김지현(2016), 조선의 명승,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신현실
중국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
(사) 한국전통조경학회 집행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정원관련 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한국적인 정원양식이 확립된 시기를 조선 후기로 보고 있다. 대체로 한국의 정원은 중국과 일본의 정원에 비해 언뜻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문화의 전래와 함께 일본정원의 태동기에 영향을 준 백제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 유교문화의 영향은 우리 정원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조선 시대 원림문화의 중흥은 백제에서 통일신라,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축적된 인간과 자연과의 절충점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중 고려 시대 원림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선생이다. 최초의 이동식 정자인 사륜정(四輪亭)에 관해서는 7번째 칼럼에서 집중 조명한 바 있다. 금번호에서는 사륜정에서 그 시각을 넓혀 그의 생애와 방대한 저작을 통해 정원분야에 미친 업적을 중심에 두고자 한다. 이는 시서화를 중시한 당시 경향과 정원과의 관련성이 매우 큰 것을 전제로 이규보가 원림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재조명하기 위함이다.
<이규보 국가표준영정 사진제공=문체부 한민족정보마당 홈페이지>
이규보는 고려 고종 때의 문장가로 고려 오백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다. 그의 시는 8천여 편에 달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만 헤아려도 2,077편에 이를 만큼 방대한 저작활동을 했다. 그의 대표작인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文集)》과 《백운소설(白雲小說)》등의 저서와 천마산시, 모중서회, 고시십팔운, 초입한림시, 공작, 재입옥당시, 초배정언시, 동명왕편, 모정기,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 등의 많은 작품이 전한다.
서거정은 그를 동방의 시호라고 예찬한 바 있고, 일본의 저명한 한문학자 하시모토는 조선의 문학자로서 소동파에 견줄 만한 인물로 이규보 선생을 지목했다. 특히 이규보의 《동국이상국문집》을 내세우며 백거이를 닮은 점도 없지 않지만 소동파적 문인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규보는 당시 내로라하는 문장가들인 이인로, 오세재, 임춘, 조통, 황보항, 함순, 이담지와 교유하면서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이규보 선생이 자신에게 붙인 호로 그 뜻을 밝히기를 흰 구름을 흠모해서 지은 것이라 했다. ‘어떤 것을 흠모하여 배우면 비록 그 본질을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그와 비슷하게는 되지 않겠나. 거사라 한 것은 비록 집에 살고 있지만 도를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그의 집에는 식량이 떨어져 끼니를 잇지 못하는 일이 잦았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쾌하게 지냈다 한다. 성격이 소탈하여 스스로를 잡도리할 줄 몰랐으며 온 천지와 우주를 좁게 여겼다. 항상 술을 마셔 어질어질하면서도 누구라도 불러 주면 반가이 나갔다가 잔뜩 취해서 돌아오곤 했으니 아마도 옛날의 애주가 시인 도연명과 같은 무리가 이규보 자신과 같지 않겠냐며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동국이상국집 자료제공=http://leekihwan.khan.kr/430>
백운거사는 취하면 시를 읊고 스스로 전을 짓고 찬을 지었다. 또 그는 문장이 없으면 사람은 그 영혼을 신묘하게 할 수 없다고 했으니 그가 자주 주제로 삼은 자연과 원림은 그에게는 영혼을 신묘하게 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당시 이규보와 같은 식자층들은 고문의 문체를 중시하여 묘석에 새길 비지, 풍경, 누정의 연혁을 밝히는 기(記) 등을 자주 썼다. 세간에 이규보에 대한 평가 중에는 관직에 상당히 집착했던 것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두고 자신의 글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보전하기 위해서 관직에 나가기를 소망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할 만큼 후세의 사람들은 그의 저작을 칭송한다.
이규보는 1207년 최충헌에 대한 노골적인 예찬을 담고 있는 <모정기(茅亭記)>를 통해 관운이 트이게 된다. 이 시는 정자를 주제로 담고 있는데 특히 그는 누정에 관한 내용을 많이 다루었다. 한국 누정기가 신라 말 최치원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고려 시대에 이르러 이규보는 기존의 누정기가 지닌 실용적 기록물 성격에서 탈피하여 개인적인 심상과 의식을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물로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음이 20여 편에 달하는 현존하는 그의 누정기를 통해 확인된다.
이는 누정의 조성과정에 관한 기록, 누정 주변의 산수경물에 관한 묘사, 누정 명칭과 관련된 논설이 주를 이루었는데 특히 누정의 이름이 지닌 의미와 이를 누정주인의 인격과 연결시키는데 집중하였다(안세현,2015). 이러한 현상은 원림문화에 끼친 유교적 영향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선비들 사이에 유행했던 사상으로 자연과 친화함으로써 산수지락(山水之樂)의 감흥과 인지지락(仁智之樂)의 경지를 터득하는 수련문화의 주를 이루었다(정치영,2016). 유교적 심신수양의 방법론은 원림경영의 주된 목적과 태도로 정착된다. 이들은 원림을 통해 여생을 위한 자기만의 은둔의 장소를 만들어가면서 그 곳을 동학들과 학문을 나누고 후학들을 양성하는 공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규보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이러한 원림 향유문화의 전형을 만들어 간 것이다. 그의 글은 후대의 문인들을 통해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특히 그의 원림애호는 글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를 몸소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그만 정원을 손질하며’ 라는 글에 이러한 점이 잘 스며있다.
‘성 동쪽의 집에는 윗뜰 가로 세로 30보 정도가 되고 아랫 뜰은 가로세로 10보정도 되는 규모의 정원이 있다. 조그만 뜰 정도라면 내 힘으로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게으른 종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정돈하였다. 우선 말라 죽은 나무를 베어 내고 더부룩한 잎들을 잘라 내었다. 그리고 낮은 땅은 북돋우고 높은 땅은 깎아서 바둑판처럼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매우 간결한 지형처리의 사례로 흔히 한국정원에 있어 자연에 순응하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자연을 닮아 곡선적인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것처럼 알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정원의 구성은 건축선의 연장을 기반으로 한 직선을 기본으로 하며 간결미를 추구한다. 전통정원의 중요요소인 연못과 화계 또한 직선이 기본 구획이 된다. 또 이규보는 정원의 한가로움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정원을 만들어 놓으면 평상복인 베옷을 입었을 때나 벼슬아치의 관복을 입었을 때나 언제든지 거닐 수 있고 대자리를 깔고 돌베개 베고 누워있기에도 좋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마당에 흩어지고 맑은 바람이 절로 불어오는 이곳에서, 내 옷자락을 잡고 따라다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즐겁고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낼 수 있으리라. 그러니 이 또한 한가로이 지내는 사람에겐 낙원인 것이다.’
이규보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해 10월에 화초를 기르기 위해 온실을 짓는 것을 보고 이를 꾸짖으며 그가 한 말이다. “봄에 꽃피었다가 겨울이면 시드는 것은 풀과 나무의 일반적인 성질인데 이걸 억지로 뒤집으면 비정상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비정상적인 물건을 만들어서 시도 때도 없이 구경거리로 삼는다면 이는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일이다.” 라며 온실을 걷어치우게 했다 한다. ‘과일나무 접붙이기’ 란 제목의 글에서는 수목에 관한 지식도 해박했음을 알 수 있는데 부친의 영향으로 밝히고 있기도 하다. 정원의 꽃을 주제로 한 시도 ‘꽃을 가꾸며’, ‘취중에 꽃구경’, ‘국화를 두고’ 등 그 수가 적지 않다.
이규보의 문장을 통해 보면 정치한 자연묘사, 생생한 심상표현 등이 돋보이는데 이는 자연경관과 원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모자람이 없었으며 또한 원림전문가였음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체험을 진솔하게 담았고 그의 자연관에 입각한 원림애호에 관한 실천이 맞물려 후대의 원림향유문화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원동력이 된 셈이다.
<참고문헌>
김윤식, 김종회 엮음(2014), 이병주 역사기행, 바이북스
이규보 지음, 김상규, 류희정 역, 이규보 작품집, 동명왕의 노래, 보리
이규보 지음, 김하라 편역(2006),이규보 선집, 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 돌베개
안세현(2015), 누정기를 통해 본 한국한문산문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정치영,박정혜,김지현(2016), 조선의 명승,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신현실
중국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
(사) 한국전통조경학회 집행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