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중국과 한국의 정치가나 문인의 원림을 주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기술인이나 과학자의 원림은 어떠했을까? 그들이 가진 과학적 사고가 원림에는 어떻게 담겼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번호에 소개되는 중국 과학사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인 심괄은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심괄 www.wikiwand.com>
심괄(沈括, 1031~1095), 자는 존중(存中) 호는 몽계장인(夢溪丈人)이며 한족으로서 절강 항주 전당현(錢唐縣) 사람이다. 북송시대의 정치가이며 저명한 과학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전당심씨 집안은 고대부터 이 지역의 명문 귀족이었다. 심괄은 유년시절부터 관료였던 부친의 임관지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식견을 넓혔고, 심 씨 가문이 쌓아온 학문적 성향을 이어 받아 중국 과학사에 이정표적인 작품인 《몽계필담(夢溪筆談)》을 저술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천문, 방지, 율력, 음악, 의약 등 다양한 방면의 방대한 학문적 소양을 쌓은 인물로 평가 되고 있다(宋史;“天文, 方志, 律曆, 音樂, 醫藥、卜算無所不通, 皆有所論著”).
그는 1063년 진사에 올라 양주 사리참군(군법기관)에 제수되었고 삼사사, 찰방사, 한림학사 등을 역임하며 자신의 정치적 학문적 견해를 실천 하였다.
북송시대 신종(神宗, 1069~1805)이 즉위한 후 1080년 왕안석과 더불어 부패한 관료와 거상(巨商)의 부정부패를 퇴출시키고 부국강병을 위하여 시행된 희영변법(熙寧變法 혹은 王安石變法)를 주도하며 기존의 정치체계를 개혁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심괄은 평생 수많은 책을 가까이 했으며 정치적 색채를 따지지 않고 구양수(歐陽脩), 범중엄(范仲淹), 소식(蘇軾) 등 동시대의 학자들과의 학문적 교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격이 없는 심괄의 학문적 경향은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 중국의 인문 과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천문학, 수학, 물리학, 지리, 농학, 등에 탁월하였으며 집적된 지식을 주변 생활에 적용한 실천가이기도 하였다. 왕안석변법을 시행할 때 자신이 연구해온 하천 측량 방법과 제방 축조 기술 등을 십분 활용하여 하천준설 작업을 실시하였고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진흙을 이용하여 전답(田畓)확장 및 비탈진 호수 주변을 보수하였다. 또한 황무지를 개간하고 전답의 관수를 위하여 1만여 곳의 관개수로 공사를 실시하여 농업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그의 저서 《몽계필담(夢溪筆談)》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어 그의 과학분야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몽계원 조감도>
심괄은 말년에 그의 축적된 인문 과학적 지식의 실례라 할 수 있는 몽계원(夢溪園)을 조영하였다. 몽계원은 그가 직접 입지에서부터 원림의 배치구조, 구성요소 등을 직접 계획, 설계, 시공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심괄과 몽계원의 인연은 그의 나이 서른 즈음부터 시작 되었다. 평소 지명에 관심이 많았던 심괄이 꿈속에서 풍광이 빼어난 곳을 보았고 같은 꿈을 여러 번 반복 하여 꾸게 되었다. 그는 꿈속에서 작은 산을 올라 경관을 감상하였는데 그곳은 화목이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답고 산을 따라 계곡의 물이 흐르는 길지 중 길지였다고 한다(夢溪筆談:“嘗夢至一處, 登小山, 花如覆錦, 山之下有水, 澄澈極目, 而喬木蓊其上”). 그후 세월이 지나 1060년 심괄(31세)이 선성(宣城)에 좌천 되었을 때 심괄은 경구(현 鎮江市京口)에 위치한 폐허지를 매입하고 난 후 또 돌보지 않다가 1086년 약 25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곳을 다시 찾게 된다.
당시 그 폐허가 된 경구의 부지는 심괄이 평소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소였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를 인연으로 심괄은 이곳으로 이주하여 오면서 몽계원을 조영하고 말년을 지내게 된다. 몽계원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주택 원림으로서 정사(亭舍)와 소규모의 헌(軒)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조성되어 있고 문 앞의 작은 지당을 몽계라 일컬어 지금의 몽계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몽계원 진입구>
몽계원은 물을 주경(主景)으로 삼아 물이 산을 돌아 흘러 중심에 모여 조성되어있는 폐쇄적인 산수원림을 품은 형상을 하고 있다. 원래 심괄은 흐르는 물의 침식작용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여 처음으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고 조개화석에 근거해 하천이 퇴적해 세월이 흐른 뒤 육지가 된 원리를 밝혔으며 구혈(甌穴)과 폭포혈(瀑布穴) 등의 어휘도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 원내 건조물들은 각 공간의 고도(高度)를 고려하여 언덕 위 수변(水邊)과 동일 선상의 배치를 피하였고 원림 내 깊고 요원한 공간감을 자아내기 위하여 건조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노출 시키거나 숨기는 배치구조를 지니고 있다.

<몽계원 내>
그리 많지 않은 가산과 건조물의 배치 구성이 계류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이러한 작은 공간의 세심하고 계획적인 배치가 정교한 짜임새를 지닌 작지만 큰 원림을 창조해 낸 것이다. 수경관(水景觀)의 감상을 고려한 몽계원의 북부는 사면이 물길에 인접하여 있으며 언덕 위에는 화훼 군락이 조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서측에 각헌(殼軒)이 위치하고 그 아래로 백화각(百花閣)이 접해있고 백화각 뒤편에는 창협정(蒼峽亭)이 수변에 인접하여 있다. 원내는 구불구불한 소로로 조성되어있다. 남부에는 깊고 넓은 지당이 조성 되었고 서부의 계류는 죽림을 돌아 남측으로 흐르고 우거진 죽림의 깊은 곳에 소소당(蕭蕭堂)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측 계류에는 안심재(安心齋)가 있다. 삼면이 계류에 접하고 있는 은행나무의 서편에는 깊고 요원한 느낌의 수면이 펼쳐져 있고 그 동편에는 지당이 자리하고 있다. 몽계원 동부의 산언덕 위에는 차경을 활용한 원정(遠亭)이 조성되어 있다.
수목의 배치에서도 심괄의 학문적 깊이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심괄은 특히 수직고도가 기온과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지형이 높고 온도가 낮을수록 꽃이 만개하는 시기가 지연된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연구를 토대로 원내 언덕 위에 화훼 군락을 조성하여 계절별로 개화하여 계절감을 더하였고 수목 식재 시 교목과 관목을 교차하는 층위별 식재를 통하여 수목의 생장을 고려하였다. 원내에는 화훼와 관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개화시기에는 원림에 만개한 꽃이 마치 비단을 덮어 놓은 듯 화려하고 아름답게 조성하였으며 지세가 낮은 곳에는 죽림을 조성하고 그 밖에도 은행, 매화, 배, 밤, 단풍 등 다양한 수종을 공간과 위치를 고려하여 식재하였다.

<몽계원 평면도>
심괄은 복거 후 몽계원 원림 내 생활의 즐거움을 《몽계필담》에도 서술하였다(夢溪筆談: 渔于泉,舫于渊,俯仰于茂木美荫之间,… …与之酬酢于心。目之所寓者, 琴、棋、禅、墨、丹、茶、吟、谈、酒,谓之“九客”). 심괄의 원림조성방식은 산수화에 기본을 두고 수학적 지리적 기술적 방면의 조영자 자신의 심도 있는 이해로 이루어낸 작품이다. 누 정 각 수목 등 우리가 흔히 일컫는 원림의 구성요소의 미적 척도나 화려함이 아닌 원의 존재 이유, 조성 원리, 대상과의 소통을 통한 이해와 기술이 접목된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하며 이는 철저한 과학적 원리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심괄은 이곳에서 《몽계필담》을 완성하게 되는데 이 희대의 걸작이 원림에서 나왔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 책은 11세기 중국의 백과전서이자 과학기술의 대작으로 중국 과학 발전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필담 보필담 연필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심괄이 일생동안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저술한 것이다. 《몽계필담》 외에도 《장흥집(長興集)》, 《창오대기(蒼梧臺記)》, 《강주람수정기(江州攬秀亭記)》 등에서 명승과 자연경관의 특색을 묘사하는 등 산수원림에 관한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표현하였다. 현존 하는 몽계원은 1985년 전강시에서 문헌을 중심으로 원림의 일부를 중건한 것이다.
심괄의 학문적 호기심과 실천 정신은 애민정신에서 발로한 것으로 그의 수학적 천문적 역학적 문학적 연구성과는 훗날 계성과 같은 원림 조영가(造營家)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론적 예술적 능력이 뛰어나도 기술적 측면에서 미흡하다면 그 원림은 완전성을 구비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심괄은 예술과 시공기술을 모두 갖춘 진정한 원림 조영가요, 과학자다.

신현실
중국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
(사)한국전통조경학회 집행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과 한국의 정치가나 문인의 원림을 주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기술인이나 과학자의 원림은 어떠했을까? 그들이 가진 과학적 사고가 원림에는 어떻게 담겼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번호에 소개되는 중국 과학사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인 심괄은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심괄 www.wikiwand.com>
심괄(沈括, 1031~1095), 자는 존중(存中) 호는 몽계장인(夢溪丈人)이며 한족으로서 절강 항주 전당현(錢唐縣) 사람이다. 북송시대의 정치가이며 저명한 과학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전당심씨 집안은 고대부터 이 지역의 명문 귀족이었다. 심괄은 유년시절부터 관료였던 부친의 임관지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식견을 넓혔고, 심 씨 가문이 쌓아온 학문적 성향을 이어 받아 중국 과학사에 이정표적인 작품인 《몽계필담(夢溪筆談)》을 저술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천문, 방지, 율력, 음악, 의약 등 다양한 방면의 방대한 학문적 소양을 쌓은 인물로 평가 되고 있다(宋史;“天文, 方志, 律曆, 音樂, 醫藥、卜算無所不通, 皆有所論著”).
그는 1063년 진사에 올라 양주 사리참군(군법기관)에 제수되었고 삼사사, 찰방사, 한림학사 등을 역임하며 자신의 정치적 학문적 견해를 실천 하였다.
북송시대 신종(神宗, 1069~1805)이 즉위한 후 1080년 왕안석과 더불어 부패한 관료와 거상(巨商)의 부정부패를 퇴출시키고 부국강병을 위하여 시행된 희영변법(熙寧變法 혹은 王安石變法)를 주도하며 기존의 정치체계를 개혁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심괄은 평생 수많은 책을 가까이 했으며 정치적 색채를 따지지 않고 구양수(歐陽脩), 범중엄(范仲淹), 소식(蘇軾) 등 동시대의 학자들과의 학문적 교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격이 없는 심괄의 학문적 경향은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루어 중국의 인문 과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천문학, 수학, 물리학, 지리, 농학, 등에 탁월하였으며 집적된 지식을 주변 생활에 적용한 실천가이기도 하였다. 왕안석변법을 시행할 때 자신이 연구해온 하천 측량 방법과 제방 축조 기술 등을 십분 활용하여 하천준설 작업을 실시하였고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진흙을 이용하여 전답(田畓)확장 및 비탈진 호수 주변을 보수하였다. 또한 황무지를 개간하고 전답의 관수를 위하여 1만여 곳의 관개수로 공사를 실시하여 농업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그의 저서 《몽계필담(夢溪筆談)》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어 그의 과학분야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몽계원 조감도>
심괄은 말년에 그의 축적된 인문 과학적 지식의 실례라 할 수 있는 몽계원(夢溪園)을 조영하였다. 몽계원은 그가 직접 입지에서부터 원림의 배치구조, 구성요소 등을 직접 계획, 설계, 시공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심괄과 몽계원의 인연은 그의 나이 서른 즈음부터 시작 되었다. 평소 지명에 관심이 많았던 심괄이 꿈속에서 풍광이 빼어난 곳을 보았고 같은 꿈을 여러 번 반복 하여 꾸게 되었다. 그는 꿈속에서 작은 산을 올라 경관을 감상하였는데 그곳은 화목이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답고 산을 따라 계곡의 물이 흐르는 길지 중 길지였다고 한다(夢溪筆談:“嘗夢至一處, 登小山, 花如覆錦, 山之下有水, 澄澈極目, 而喬木蓊其上”). 그후 세월이 지나 1060년 심괄(31세)이 선성(宣城)에 좌천 되었을 때 심괄은 경구(현 鎮江市京口)에 위치한 폐허지를 매입하고 난 후 또 돌보지 않다가 1086년 약 25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곳을 다시 찾게 된다.
당시 그 폐허가 된 경구의 부지는 심괄이 평소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소였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를 인연으로 심괄은 이곳으로 이주하여 오면서 몽계원을 조영하고 말년을 지내게 된다. 몽계원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주택 원림으로서 정사(亭舍)와 소규모의 헌(軒)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조성되어 있고 문 앞의 작은 지당을 몽계라 일컬어 지금의 몽계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몽계원 진입구>
몽계원은 물을 주경(主景)으로 삼아 물이 산을 돌아 흘러 중심에 모여 조성되어있는 폐쇄적인 산수원림을 품은 형상을 하고 있다. 원래 심괄은 흐르는 물의 침식작용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여 처음으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고 조개화석에 근거해 하천이 퇴적해 세월이 흐른 뒤 육지가 된 원리를 밝혔으며 구혈(甌穴)과 폭포혈(瀑布穴) 등의 어휘도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 원내 건조물들은 각 공간의 고도(高度)를 고려하여 언덕 위 수변(水邊)과 동일 선상의 배치를 피하였고 원림 내 깊고 요원한 공간감을 자아내기 위하여 건조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노출 시키거나 숨기는 배치구조를 지니고 있다.
<몽계원 내>
그리 많지 않은 가산과 건조물의 배치 구성이 계류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이러한 작은 공간의 세심하고 계획적인 배치가 정교한 짜임새를 지닌 작지만 큰 원림을 창조해 낸 것이다. 수경관(水景觀)의 감상을 고려한 몽계원의 북부는 사면이 물길에 인접하여 있으며 언덕 위에는 화훼 군락이 조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서측에 각헌(殼軒)이 위치하고 그 아래로 백화각(百花閣)이 접해있고 백화각 뒤편에는 창협정(蒼峽亭)이 수변에 인접하여 있다. 원내는 구불구불한 소로로 조성되어있다. 남부에는 깊고 넓은 지당이 조성 되었고 서부의 계류는 죽림을 돌아 남측으로 흐르고 우거진 죽림의 깊은 곳에 소소당(蕭蕭堂)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측 계류에는 안심재(安心齋)가 있다. 삼면이 계류에 접하고 있는 은행나무의 서편에는 깊고 요원한 느낌의 수면이 펼쳐져 있고 그 동편에는 지당이 자리하고 있다. 몽계원 동부의 산언덕 위에는 차경을 활용한 원정(遠亭)이 조성되어 있다.
수목의 배치에서도 심괄의 학문적 깊이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심괄은 특히 수직고도가 기온과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지형이 높고 온도가 낮을수록 꽃이 만개하는 시기가 지연된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연구를 토대로 원내 언덕 위에 화훼 군락을 조성하여 계절별로 개화하여 계절감을 더하였고 수목 식재 시 교목과 관목을 교차하는 층위별 식재를 통하여 수목의 생장을 고려하였다. 원내에는 화훼와 관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개화시기에는 원림에 만개한 꽃이 마치 비단을 덮어 놓은 듯 화려하고 아름답게 조성하였으며 지세가 낮은 곳에는 죽림을 조성하고 그 밖에도 은행, 매화, 배, 밤, 단풍 등 다양한 수종을 공간과 위치를 고려하여 식재하였다.
<몽계원 평면도>
심괄은 복거 후 몽계원 원림 내 생활의 즐거움을 《몽계필담》에도 서술하였다(夢溪筆談: 渔于泉,舫于渊,俯仰于茂木美荫之间,… …与之酬酢于心。目之所寓者, 琴、棋、禅、墨、丹、茶、吟、谈、酒,谓之“九客”). 심괄의 원림조성방식은 산수화에 기본을 두고 수학적 지리적 기술적 방면의 조영자 자신의 심도 있는 이해로 이루어낸 작품이다. 누 정 각 수목 등 우리가 흔히 일컫는 원림의 구성요소의 미적 척도나 화려함이 아닌 원의 존재 이유, 조성 원리, 대상과의 소통을 통한 이해와 기술이 접목된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하며 이는 철저한 과학적 원리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심괄은 이곳에서 《몽계필담》을 완성하게 되는데 이 희대의 걸작이 원림에서 나왔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 책은 11세기 중국의 백과전서이자 과학기술의 대작으로 중국 과학 발전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필담 보필담 연필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심괄이 일생동안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저술한 것이다. 《몽계필담》 외에도 《장흥집(長興集)》, 《창오대기(蒼梧臺記)》, 《강주람수정기(江州攬秀亭記)》 등에서 명승과 자연경관의 특색을 묘사하는 등 산수원림에 관한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을 표현하였다. 현존 하는 몽계원은 1985년 전강시에서 문헌을 중심으로 원림의 일부를 중건한 것이다.
심괄의 학문적 호기심과 실천 정신은 애민정신에서 발로한 것으로 그의 수학적 천문적 역학적 문학적 연구성과는 훗날 계성과 같은 원림 조영가(造營家)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론적 예술적 능력이 뛰어나도 기술적 측면에서 미흡하다면 그 원림은 완전성을 구비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심괄은 예술과 시공기술을 모두 갖춘 진정한 원림 조영가요, 과학자다.
신현실
중국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
(사)한국전통조경학회 집행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