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영관 칼럼] 대한황실의 4평 집무실



 지난 6월 3일 오후 업무 차 대한황실의 집무실이 있는 창덕궁 앞 돈화문로 89번지 이화회관 3층을 방문했다. 4평정도 되는 공간 안에 2개의 책상과 긴 탁자, 오래되고 낡은 소파 4개 그리고 소형냉장고가 있었다. 출입문 왼쪽 벽에는 고종광무태황제의 어진이 모셔져 있었고 그 좁은 집무실 안은 이원 황사손 저하를 비롯한 사무국장과 간사의 사무집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개 사립대학 총장의 업무실도 외부손님들을 위한 대기실이 있고 비서들의 사무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600년 조선대한황실의 적통이시며 국가의 국보와도 같은 대한황실의 5대 수장 황사손 저하의 집무실은 외부의 손님들을 위한 대기실도 기타 편의시설들도 없는 협소한 공간 그 자체였다. 만약 외국왕실의 귀빈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한국의 국가적 위상에 걸맞지 않는 대한황실의 이런 소외되고 초라한 모습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뿐이었다. 

대한황실 집무실이 있는 이화회관(왼쪽 건물)

 한국정부는 해방이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며 국가보훈처나 광복회 같은 조직들을 만들어 항일독립투쟁유공자들을 발굴하여 그 당사자들과 후손들에게 각종 의료문화혜택들과 장학금 그리고 연금을 지급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공로에 보답하고 후세들에게 귀감이 되는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정책시행에도 그늘이 있어 항일독립투쟁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공자로서 또는 유공자의 후손들로 인정받지 못해 국가로 부터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뉴스를 통해 종종 보도되곤 한다.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선포하신 고종광무태황제께서는 선진교육도입과 의료근대화 그리고 문화역사적 계몽과 군사조직 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정책을 대내외에 펼치셨고 무엇보다도 항일독립투쟁에 앞장서셨다. 이런 이유로 매국역적간신배들에 의해 강제 퇴위되셨고 결국 비참한 독살을 피하실 수 없으셨다. 광무태황제의 항일독립투쟁의 뜻을 이어받은 다섯째 왕자 의친왕은 더욱 더 적극적인 항일독립투쟁을 위해 상해임시정부로의 망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여 왜정 36년 동안 온간 핍박을 받으셨다. 

 더구나 해방 이후 황실의 존재에 경계심을 갖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 구황실법이 제정되어 황실의 재산들이 몰수되었고 의친왕은 안동별궁 쪽방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으셨다. 의친왕의 직계후손들을 비롯한 황실구성원들은 강제로 도미되거나 막노동꾼 또는 식당종사자나 청소부들로 전락되어 역사의 담장 밖으로 내몰리는 수치와 고난을 겪게 되었다. 

 고종광무태황제를 비롯한 의친왕의 항일독립투쟁 그리고 순정효황후의 독립군자금지원에 이르기까지 대한황실이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음은 자명한 사실들이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굳이 보훈처의 독립유공자신청서에 일일이 기재하여 제출하지 않더라도 행정부가 자발적으로 이를 정리하고 객관화하여 황실구성원들에 대한 국가적인 예우와 품위유지를 위한 지원정책을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동시에 과거정부로부터 불법적으로 강탈된 황실재산들에 대한 소유관리권들을 반환해 주어야 한다. 

 

 수년전 인사동 피맛골에서 수백 년 된 조선백자가 출토되자 언론에서 이를 대서특필했고 그 백자의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문화재로 등록된 일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물질적 재산손실을 경험한 한국인들은 유독 건물 짓기와 물건소유 그리고 재산증식에 열을 올리는 기괴한 행위들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행위들은 물질만능배금주의로 전이되어 현재 한국사회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국가로 병들게 되어 결국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되어 버렸다. 더구나 우리 민족의 고귀한 도덕성과 더불어 함께 나누며 살았던 선한 공동체 중심적인 양심들도 잠식되어 가고 있다.

 이런 기괴한 행위들의 근원을 불식할 수 있는 길은 홍익인간정신과 참된 인본주의에 기반을 둔 조선대한황실의 애민정신과 효 사상을 회복하고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일뿐이다. 이를 위해 서울의 5대궁들이 대한황실구성원들을 위한 실제적인 거주공간들로 복원되어 어린 꿈나무들이 언제든지 궁에 찾아가면 황실의 기품 있는 언어와 생활양식들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해 궁의 전각들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일에 수백억 원의 예산을 아낌없이 지출하면서 정작 궁의 실재 거주권을 갖은 황실구성원들에 대한 예우에는 인색하다 못해 수수방관하는 모습들 속에서 자라나는 어린 꿈나무들은 국가로부터 그 어떤 역사적 교훈들이나 올바른 윤리의식의의 표본도 배울 수 없게 된다. 

 고작 수백만 원하는 조선백자도 국가문화재로 지정되고 시골의 양반사대부 종손들도 혈통을 보호한다며 애지중지 귀한 대접을 받고 하물며 한우소고기 맛의 우수성을 보존한다며 미천한 소의 종자 연구에 수백억 원의 돈을 쏟아 붓는 현 상황 속에서 600년 조선대한황실의 살아 있는 혈통이며 조국의 독립투쟁에 앞장선 대한황실의 5대 수장인 황사손 저하와 황사손 비 마마 그리고 황실구성원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예우정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 

 따라서 정부는 대한황실의 혈통보존을 위한 정책도입과 실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한황실의 혈통은 대한민국만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고귀하고 소중하며 살아있는 역사문화전통유산의 큰 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 5대궁을 ‘조선대한황실특구청’으로 지정하여 텅 빈 궁궐 안이 황실구성원들에 의해 살아있는 공간들로 재생될 수 있게 하여 아름다운 궁을 찾는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올바른 역사문화예절교육을 받으며 절제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황실의 품행실천모형들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외 관광객들이 기품 있고 찬란했던 왕실의 전통들을 직접 경험하고 전수받을 수 있는 실용적인 교육체험공간들로도 활용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으로서의 명성이 회복될 수 있게 되며 과거 왜구역적매국잔당들에 의해 자행된 치욕스런 역사적 상처들이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왜곡된 역사관의 수정과 함께 황실을 보유한 국가로서의 국격이 상승케 되며 외국왕실들과의 교류를 통한 대한민국의 대외적인 외교지평 또한 확장될 수 있게 된다. 

 다음에 대한황실원을 방문할 때에는 4평 남짓한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원래의 집무실이요 거주공간인 서울의 5대궁 안으로 찾아가는 날이 오기를 조만간 기대해 본다.

김영관 (PhD., McGill)

사단법인 한국효문화원 원장, 

대한황실문화원 문화재환수위 연구위원/

해외왕실교류위 수석위원,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 방문연구 교수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종교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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