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중 정원가 예찬 13] 민중의 애환을 시와 원림으로 달랜 시성(詩聖) 두보 편



 중국 원림은 분포지역에 따라 북방원림(皇室園林), 남방원림(私家園林), 영남원림, 사찰원림 등으로 구분되어 왔다. 그 중 남방원림은 중국 정원문화의 대표격이며 강남의 사가원림은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강남은 일반적으로 상해, 절강, 소주, 안휘지역 등으로 지칭하고, 고대 지방귀족과 문인들이 대거 거주하여 수향고전(水鄕古鎭: 물길을 끼고 형성된 고대 향촌지역)을 형성하며 고대 중국의 원림문화를 주도하여 왔다. 

 당(唐) 중기 이후 황실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성행했던 원림조성 유행은 한 지역에만 집중되어 성장 발전하기보다 인접한 주변 지역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면서 형성되었다. 특히 강남 지역에 인접한 사천(四川)과 중경(重慶)에 현존하고 있는 원림들은 강남 원림을 모티브로 삼아 그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소박하며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두보(杜甫)의 완화계(浣花溪) 초당(草堂)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두보>


 당나라 때 시인이었던 두보(杜甫, 712~770)의 字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小陵野老)이며 하남성 공현(鞏縣)에서 출생하였다. 북방 사대부 출신으로 한무제(漢武帝) 때 포악한 관리로 알려진 두주(杜周)의 후손으로, 대대로 양명(揚名)한 가문의 출신이다. 증조부인 두의예(杜依藝)가 현령으로 부임하게 되어 공현으로 이주한 후 오랫동안 그곳에서 거주하였다. 저명한 시인 두심언(杜審言)의 손자이기도 한 두보는 문학적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집안에서 현실주의 시인으로 성장하며 당대에 시성(詩聖)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두공부집(杜工部集)》과 약 1,400여 수의 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또 안사의 난(安史之亂: 安祿山과 史思明이 일으킨 반란)을 경험한 백성들의 고충과 비참한 현실을 읊은 ‘삼리(三吏:新安吏, 石壕吏, 潼關吏)’, ‘삼별(三別:新婚別, 垂老別, 無家別)’ 등이 대표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5세에 이미 시 짓기로 유명하였으며 벼슬에 올라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소관(小官)에 머물러 빈곤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로 인해 당시 백성의 실제 삶의 애환을 깊이 인식하고 작품에 반영하였다. 당(唐) 759년(玄宗末期) 발발한 안사의 난을 피해 사천(四川)으로 이주한 후 760년 성도(成都) 서부 교외의 완화계(浣花溪) 부근에 초당을 지어 거처하기에 이른다. 이곳에서 약 4년여 간의 생활을 통하여 240여 수의 시를 창작하였고, 자신의 원림을 제재로 삼아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두보의 ‘복거(卜居)’와 ‘당성(堂成)’ 등의 시작(詩作)에는 완화계 초당의 입지 선정 및 원림 조성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卜居》”浣花流水水西頭,主人為卜林塘幽。已知出郭少塵事,更有澄江銷客愁。無數蜻蜓齊上下,一雙鸂鶒對沉浮。東行萬里堪乘興,須向山陰上小舟”(완화계곡 서쪽의 수림과 못은 맑고 심원하므로, 주인인 나를 위하여 이곳에 초당을 짓기로 계획하였다. 도성을 나오니 속세의 일들이 한결 편안해지니, 또한 맑은 강에 나의 근심을 씻어버린다. 수많은 잠자리 들이 일제히 날아서 오르내리고, 한 쌍의 자색 원앙이 함께 뜨고 가라앉네. 물길(수로)을 따라 동쪽 멀리까지 흥이 나도록 가, 해가 지도록 물놀이를 하다가 작은 배에 올라 돌아오고 싶다). 

 《堂成》背郭堂成蔭白茅,緣江路熟附青郊。榿林礙日吟風葉,籠竹和煙滴露梢。暫止飛烏將數子,頻來語燕定新巢。旁人錯比揚雄宅,懶惰無心作解嘲(초당은 백모를 이용하여 지붕을 덮었고 초당은 성곽을 등지고 위치하며 금강에 인접한 채 큰길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두보초당 >


 두보 초당은 조성 당시 약 666㎡이었으나 점차 그 면적이 확대되었고 ,건축물은 남쪽에 위치하여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도록 배치하고 주요한 경관요소들은 북쪽에 조성하여 조망에 막힘이 없도록 연출하였다. 초당 앞에는 4주의 소나무, 5주의 복숭아나무 등을 식재하고 지당은 사립문 앞에 파서 초당에 앉아 외부 경관의 변화와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체험하도록 조성하였다. 그의 시 《春夜喜雨》에는 봄날 어느 비 내리는 저녁 초당에 앉아 느끼는 경관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작품마다 원림 내 화목의 종류 및 배치 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두보초당>


 이 원림에는 약 40여종의 화목이 향기와 색깔 형태 등에 따라 배치되어 공간을 깊고 넓게 보이도록 하였으며, 다리와 연못과 같은 원림 건축물과 함께 “實則虛之、虛則實之” 하듯 조성하고 있다.
 

 완화계의 초당은 두보가 성도를 떠난 후 황폐하여 사용되지 않던 것을 오나라(五代) 위장(韋莊)에 의해 그 유적이 발견되고 재조명된 후 얼마못가 다시 쇠퇴하였던 것을 명대(明代)에 와서 규모가 이전보다 확대되고 원림을 중심으로 복원되었다. 명대의 초당복원은 본래 초당의 풍모를 거스르지 않고자 기존의 건축물과 연못 다리 등의 구조물과 화목을 보존하고 보충하여 경관의 원상을 회복 하고자 하였다《重修杜工部草堂記》. 이후 청대(淸代)에 다시 규모가 확장되어 현재의 규모를 이루게 되었다. 

 두보는 초당 조성 시 인공의 원림과 자연과의 소통과 결합을 이루어 자연과 인간이 소통을 꾀했다. 특히 초당 내 수목 및 정원요소들은 그 지방의 향토수종 및 재료를 이용하였으며 기존의 자연조건을 거스르지 않아 마치 본래의 대자연 안에 존재 하듯 자연과 결합을 이루었다.
  중국의 원림조성에 영향력을 미친 두보와 같은 시인들은 시를 짓기 위한 최고경지의 인문적 소양 이외에도 시에서 그려지는 심상의 구현을 위한 회화적 감각과 각종 원림 재료들의 특성에 대한 식견도 높아 중국 최고의 원림설계가라 칭송 할 만하다.

신현실

북경대학교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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