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게서 편지가 왔군요. 저에게 온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작년에 내린 눈을 조금 싸서 보내니 잘 간직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고마운 봄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보냅니다.
봄에게
밤새 숨소리 잔잔하고 총각무처럼 아삭한 삼월의 초봄이, 추웠던 겨울을 시장에 비싸게 내다팔겠다고 지난 석 달의 부스스한 겨울을 세월의 달력에 남기면서, 이내 계절이란 시간을 떼어 놓고 시장에 막 나왔네요.
차가운 기온을 툴툴 털어내며 쇳소리 낸다고 주위를 몇 번씩 두리번 두리번거리던 겨울이
한참동안 무언가 중얼중얼 거리다가, 봄인 당신에게 잡히어 두어 달을 겨울이란 시간으로 움츠리고 말없이 조용히 살다가 봄꽃을 닮고 싶어 고드름을 잘라낸 몸으로 봄 바닥에 떨어졌답니다.
겨울 소리를 주워 모으고 바람을 치우려는 ‘오는 봄’이라는 이름의 청소부를 부둥켜 안 고 초봄 온도를 쌓아 올리려는 ‘반길 봄’이란 놈이, 당신을 맞을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아지랑이는 피지 않았다고 하네요.
아직 봄맞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까치가 목련나무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작년에 날아간 봄 나비도 보이지 않고, 기다리다 지친 꾀꼬리도 울지 않습니다. 산양과 고라니의 무릎 밑 반길 봄이란 녀석도 성질이 급해서인지, 여러 개의 지리산 산봉우리를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 오며가며 다니다가 그만 무릎이 죄다 헐었답니다.
우리에게 반갑게 달려오는 새 봄을 맛보고 안다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우리에게 뛰어오는 사슴의 눈망울은 이 봄에 우리들을 어찌 이리도 선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름다운 당신이 악이 없어서인 게지요? 선하고 마음이 여린 착한 사람이 사는 동네에는 겨울에 하얀 눈이 더 많이 오는가 봅니다. 그러니 그곳에 사는 사람의 눈도 맑고 선량하지요.
시골집 우사(牛舍) 한 공간에 해를 보낸 묵은 지난 늦봄을, 작년에 수확한 무청과 함께 도토리를 묶어 2층에 쌓아두었습니다. 뒷산에 살던 딱따구리가 알고 있던 먹이(벌레)는 벌써 다 숨어버렸습니다. 잠시 옆에 누워 있던 영장산 소나무가 보내는 겨울과 아쉬워 악수하고 다가올 새봄을 일으켜 세우더군요. 그때 그 모습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방이동 넓은 몽촌토성의 복스럽고 인자한 무덤 한쪽 귀를 봄이 만지고 있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의 왕릉에서 왕의 기침소리가 들린 듯하고 백제의 수도 공주와 부여에서 마중 나온 백제 금동대향로의 침향 또한 겨울을 휘감고 피워 올라 역사로 들어갔습니다.
봄의 향기를 따라 가 봅니다. 광릉 숲에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고깔제비꽃, 흰노루귀 등 봄을 재촉하는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봄 편지가 역사의 우표로 왔는데 이젠 우리가 봄에게 답장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영국
국가문화재보존협회장
국립이리스트대학교 종신석좌교수
봄에게서 편지가 왔군요. 저에게 온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작년에 내린 눈을 조금 싸서 보내니 잘 간직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고마운 봄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보냅니다.
봄에게
밤새 숨소리 잔잔하고 총각무처럼 아삭한 삼월의 초봄이, 추웠던 겨울을 시장에 비싸게 내다팔겠다고 지난 석 달의 부스스한 겨울을 세월의 달력에 남기면서, 이내 계절이란 시간을 떼어 놓고 시장에 막 나왔네요.
차가운 기온을 툴툴 털어내며 쇳소리 낸다고 주위를 몇 번씩 두리번 두리번거리던 겨울이
한참동안 무언가 중얼중얼 거리다가, 봄인 당신에게 잡히어 두어 달을 겨울이란 시간으로 움츠리고 말없이 조용히 살다가 봄꽃을 닮고 싶어 고드름을 잘라낸 몸으로 봄 바닥에 떨어졌답니다.
겨울 소리를 주워 모으고 바람을 치우려는 ‘오는 봄’이라는 이름의 청소부를 부둥켜 안 고 초봄 온도를 쌓아 올리려는 ‘반길 봄’이란 놈이, 당신을 맞을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아지랑이는 피지 않았다고 하네요.
아직 봄맞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까치가 목련나무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작년에 날아간 봄 나비도 보이지 않고, 기다리다 지친 꾀꼬리도 울지 않습니다. 산양과 고라니의 무릎 밑 반길 봄이란 녀석도 성질이 급해서인지, 여러 개의 지리산 산봉우리를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 오며가며 다니다가 그만 무릎이 죄다 헐었답니다.
우리에게 반갑게 달려오는 새 봄을 맛보고 안다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우리에게 뛰어오는 사슴의 눈망울은 이 봄에 우리들을 어찌 이리도 선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름다운 당신이 악이 없어서인 게지요? 선하고 마음이 여린 착한 사람이 사는 동네에는 겨울에 하얀 눈이 더 많이 오는가 봅니다. 그러니 그곳에 사는 사람의 눈도 맑고 선량하지요.
시골집 우사(牛舍) 한 공간에 해를 보낸 묵은 지난 늦봄을, 작년에 수확한 무청과 함께 도토리를 묶어 2층에 쌓아두었습니다. 뒷산에 살던 딱따구리가 알고 있던 먹이(벌레)는 벌써 다 숨어버렸습니다. 잠시 옆에 누워 있던 영장산 소나무가 보내는 겨울과 아쉬워 악수하고 다가올 새봄을 일으켜 세우더군요. 그때 그 모습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방이동 넓은 몽촌토성의 복스럽고 인자한 무덤 한쪽 귀를 봄이 만지고 있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의 왕릉에서 왕의 기침소리가 들린 듯하고 백제의 수도 공주와 부여에서 마중 나온 백제 금동대향로의 침향 또한 겨울을 휘감고 피워 올라 역사로 들어갔습니다.
봄의 향기를 따라 가 봅니다. 광릉 숲에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고깔제비꽃, 흰노루귀 등 봄을 재촉하는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봄 편지가 역사의 우표로 왔는데 이젠 우리가 봄에게 답장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영국
국가문화재보존협회장
국립이리스트대학교 종신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