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商), 주(周), 진(秦), 한(漢)의 황제가 경영하던 원유(苑囿)를 중심으로 한 원림이 유행하던 시기를 중국 고대원림의 맹아기라 한다면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기는 고대원림 발전의 기초를 다졌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위진남북조(220~589)는 크게 삼국시기(위, 오, 촉), 서진, 동진, 십육국시기, 남북조시기로 나눌 수 있다.
위진남북조는 계속된 변란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유교, 불교, 도교사상이 융성하게 되어 중국 역사상 동일시기내에 공전(空前)의 다원문화 융화가 이루어진 진정한 문화융성의 시기였다. 죽림칠현, 왕희지, 도연명 등은 이 시기 대표적 인물들이다. 소요하며 자유로운 삶을 실천하였던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부터 유교적 풍류를 향유하던 난정(蘭亭)의 모임과 산수에 기대어 살아 간(山水園林) 도연명(陶淵明)의 전원 속 생활은 사영운(謝靈運)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사운영
사영운(謝靈運385~433)은 도연명보다 20년 후를 살다간 사람으로 산수시가 전성기를 이루는 시대에 주유하였다. 그는 한족으로 절강성 회계(會稽) 사람이며 동진의 명장(名將) 사현(謝玄)의 손자로서 사강공(謝康公) 혹은 사강락(謝康樂)이라 불리웠다. 그는 《산거부(山居賦)》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하여 산수를 노래하였고 중국 문학사상 산수시파(詩派)의 시조로 불리우며 후세의 이백, 두보, 왕유, 유종원 등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명문 사대부 출신이었던 사영운은 기존 사대부들이 산수에 은거하며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삶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조부의 작위를 이어받은 명문 사대부로서 또한 당대의 명사(名士)로서 기존 사대부들이 택했던 안빈낙도의 은일적 삶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문 «등강고산서»의 내용을 보면 그가 이미 중국 강남지역을 비롯한 강북지역을 수 차례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혀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가문의 권력과 부를 기반으로 산수가 빼어난 곳을 두루 둘러보았으며 그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이 투영된 원림을 조영하였다. 특히 조손(祖孫)이 함께 조영한 산중의 별서는 깊고 고요한 은일사상에 기반한 자연 산수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어 후대 시문학의 제재(題材)로 빈번하게 인용되었다. 조부 사현과 사영운이 조성한 시영서(始寧墅)는 중국 사대부 별서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절강성에 위치하고 있다. 시영서는 424년 사영운이 정치적 혼란을 피하여 고향 시영으로 귀향하여 그곳의 산수를 파악한 후 기존에 있던 조부의 별서를 고쳐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풍수적으로 길지에 입지한 이 별서의 주변에는 강이 흐르고 아득하고 깊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송나라 곽희(郭熙)는 “산수에는 가서 볼만한 곳, 그림으로 볼만한 곳, 유람할만한 곳, 살만한 곳이 있다”라 하였는데 시영서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추 당대 최고의 사대부 별서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사영운은 산거부(山居賦)를 비롯하여 ‘過始寧墅(과시영서)’ ‘石壁精舍還湖作(석벽정사환호작)’ ‘石門新營所注(석문신영소주)’ ‘登石門最立頂(등석문최립정)’ 등 21편의 작품을 남겼고 그 중 산거부는 가장 긴 장편 시문으로서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산거부(山居賦)에는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인문경관과 사회풍조 및 장원경제 등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으며 사영운(謝靈運) 자신의 자연에 대한 생각 및 태도, 별서의 조영방식, 원림의 구성요소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산거부에 의하면 그는 시영서(始寧墅)를 증, 개축하고 원림을 조성하기 전 천지만물을 관찰하였고 별서가 위치한 곳의 지리적 환경을 고려한 후 자신이 꿈꿔왔던 산수원림을 재현하였다. 이 별서는 주변의 남산과 북산으로 인하여 주거지가 2개로 나뉘고 두개의 산 가운데 위치한 무호(巫湖)가 남북을 연결하고 있다. 별서의 기본구조는 앙차, 부차, 원차, 인차 등 차경수법을 통하여 심미적이며 전경이 한눈에 조망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 조화되어 하나되게 조성하였다. 별서 대부분은 인공적 개조가 없는 원시적 자연의 풍모를 지니고 있어 풍부한 야생식물과 곡수(曲水)와 첩산(疊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영서(始寧墅)는 기온이 온화하며 기화이초가 가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 곳으로 나뉘어진 주택은 북산의 잔도(棧道)와 돌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호수의 배를 통하여 왕래하며 호수와 산 원림이 이루는 상이하며 때로는 상통하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近北則二巫結湖, 兩智通沼. 橫石判盡, 休,週分錶, 南山則央渠二田, 周岭三苑. 九泉別澗, 五穀異碾群峰參差出其間, 連燦复陸成其坂. 眾流溉灌以環近, 諸堤擁抑以接遠. 遠堤兼陌, 近流開湍. 凌阜泛波, 水往步還. 還回往匝, 枉諸員巒”,《山居賦》).

사운영 여행 경관
사영운은 호수 내 부유하는 수중 식물, 심산유곡의 각종 수목과 죽림, 그 외의 다양한 과수의 배치와 활용을 통하여 기존 별서에서 볼 수 없었던 수목경관으로 자연경관을 연출했다. 또한 산중에 마, 맥아, 곡식, 콩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여 사계절의 경색(景色)을 느끼도록 하였다(“阡陌縱橫塍埒交經. 導渠引流脈散溝並. 蔚蔚豐秫苾苾香粳. 送夏蚤秀迎秋晚成. 兼有陵陸麻麥粟菽. 候時覘節遞藝遞孰”著者注:주변에 오곡을 재배하여 색다른 경색을 표현하였다. 시영서(始寧墅)의 논밭 사이 소로는 논밭경계가 종횡으로 교차하여 있고 논밭 사이의 도랑의 물은 흘러 각부에 도달하고 논밭중의 수수가 무성하고 여름 끝에 이른 이삭이 꽃을 피웠다). 또한 북산에 조성된 2개의 채원과 남산에 3개의 원림은 100여주의 과실수가 원근으로 열식되어 원근감있게 전개 되었으며 과실이 풍성했고 아름다운 수목은 계곡에 가지를 드리우며, 비파와 능금이 골짜기를 덮었다. 또한 그 모습은 수면에 투영되어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거부에는 38종의 수목명이 구체적으로 나타났으며, 수생식물이 18종 죽(竹) 10종, 동물 53종이 자세히 거론되어 있다. 사영운(謝靈運)은 시영서(始寧墅)를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도출하기 위하여 생태학, 수학, 지리학, 미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방면에서 이를 고찰하고 그를 통해서 중국 차경(借景)의 적용과 자연산수 및 문인화적 원림을 조성하기에 이른다. 이미 수천년전 사영운은 원림이 단순한 수목과 경물의 배치에 의해 조성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학문적 고찰을 통해 자연과 사상의 융합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현실
북경대학교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
상(商), 주(周), 진(秦), 한(漢)의 황제가 경영하던 원유(苑囿)를 중심으로 한 원림이 유행하던 시기를 중국 고대원림의 맹아기라 한다면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기는 고대원림 발전의 기초를 다졌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위진남북조(220~589)는 크게 삼국시기(위, 오, 촉), 서진, 동진, 십육국시기, 남북조시기로 나눌 수 있다.
위진남북조는 계속된 변란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유교, 불교, 도교사상이 융성하게 되어 중국 역사상 동일시기내에 공전(空前)의 다원문화 융화가 이루어진 진정한 문화융성의 시기였다. 죽림칠현, 왕희지, 도연명 등은 이 시기 대표적 인물들이다. 소요하며 자유로운 삶을 실천하였던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부터 유교적 풍류를 향유하던 난정(蘭亭)의 모임과 산수에 기대어 살아 간(山水園林) 도연명(陶淵明)의 전원 속 생활은 사영운(謝靈運)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사운영
사영운(謝靈運385~433)은 도연명보다 20년 후를 살다간 사람으로 산수시가 전성기를 이루는 시대에 주유하였다. 그는 한족으로 절강성 회계(會稽) 사람이며 동진의 명장(名將) 사현(謝玄)의 손자로서 사강공(謝康公) 혹은 사강락(謝康樂)이라 불리웠다. 그는 《산거부(山居賦)》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하여 산수를 노래하였고 중국 문학사상 산수시파(詩派)의 시조로 불리우며 후세의 이백, 두보, 왕유, 유종원 등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명문 사대부 출신이었던 사영운은 기존 사대부들이 산수에 은거하며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삶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조부의 작위를 이어받은 명문 사대부로서 또한 당대의 명사(名士)로서 기존 사대부들이 택했던 안빈낙도의 은일적 삶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문 «등강고산서»의 내용을 보면 그가 이미 중국 강남지역을 비롯한 강북지역을 수 차례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혀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가문의 권력과 부를 기반으로 산수가 빼어난 곳을 두루 둘러보았으며 그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이 투영된 원림을 조영하였다. 특히 조손(祖孫)이 함께 조영한 산중의 별서는 깊고 고요한 은일사상에 기반한 자연 산수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어 후대 시문학의 제재(題材)로 빈번하게 인용되었다. 조부 사현과 사영운이 조성한 시영서(始寧墅)는 중국 사대부 별서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절강성에 위치하고 있다. 시영서는 424년 사영운이 정치적 혼란을 피하여 고향 시영으로 귀향하여 그곳의 산수를 파악한 후 기존에 있던 조부의 별서를 고쳐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풍수적으로 길지에 입지한 이 별서의 주변에는 강이 흐르고 아득하고 깊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송나라 곽희(郭熙)는 “산수에는 가서 볼만한 곳, 그림으로 볼만한 곳, 유람할만한 곳, 살만한 곳이 있다”라 하였는데 시영서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추 당대 최고의 사대부 별서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사영운은 산거부(山居賦)를 비롯하여 ‘過始寧墅(과시영서)’ ‘石壁精舍還湖作(석벽정사환호작)’ ‘石門新營所注(석문신영소주)’ ‘登石門最立頂(등석문최립정)’ 등 21편의 작품을 남겼고 그 중 산거부는 가장 긴 장편 시문으로서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산거부(山居賦)에는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인문경관과 사회풍조 및 장원경제 등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으며 사영운(謝靈運) 자신의 자연에 대한 생각 및 태도, 별서의 조영방식, 원림의 구성요소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산거부에 의하면 그는 시영서(始寧墅)를 증, 개축하고 원림을 조성하기 전 천지만물을 관찰하였고 별서가 위치한 곳의 지리적 환경을 고려한 후 자신이 꿈꿔왔던 산수원림을 재현하였다. 이 별서는 주변의 남산과 북산으로 인하여 주거지가 2개로 나뉘고 두개의 산 가운데 위치한 무호(巫湖)가 남북을 연결하고 있다. 별서의 기본구조는 앙차, 부차, 원차, 인차 등 차경수법을 통하여 심미적이며 전경이 한눈에 조망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 조화되어 하나되게 조성하였다. 별서 대부분은 인공적 개조가 없는 원시적 자연의 풍모를 지니고 있어 풍부한 야생식물과 곡수(曲水)와 첩산(疊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영서(始寧墅)는 기온이 온화하며 기화이초가 가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 곳으로 나뉘어진 주택은 북산의 잔도(棧道)와 돌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호수의 배를 통하여 왕래하며 호수와 산 원림이 이루는 상이하며 때로는 상통하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近北則二巫結湖, 兩智通沼. 橫石判盡, 休,週分錶, 南山則央渠二田, 周岭三苑. 九泉別澗, 五穀異碾群峰參差出其間, 連燦复陸成其坂. 眾流溉灌以環近, 諸堤擁抑以接遠. 遠堤兼陌, 近流開湍. 凌阜泛波, 水往步還. 還回往匝, 枉諸員巒”,《山居賦》).
사운영 여행 경관
사영운은 호수 내 부유하는 수중 식물, 심산유곡의 각종 수목과 죽림, 그 외의 다양한 과수의 배치와 활용을 통하여 기존 별서에서 볼 수 없었던 수목경관으로 자연경관을 연출했다. 또한 산중에 마, 맥아, 곡식, 콩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여 사계절의 경색(景色)을 느끼도록 하였다(“阡陌縱橫塍埒交經. 導渠引流脈散溝並. 蔚蔚豐秫苾苾香粳. 送夏蚤秀迎秋晚成. 兼有陵陸麻麥粟菽. 候時覘節遞藝遞孰”著者注:주변에 오곡을 재배하여 색다른 경색을 표현하였다. 시영서(始寧墅)의 논밭 사이 소로는 논밭경계가 종횡으로 교차하여 있고 논밭 사이의 도랑의 물은 흘러 각부에 도달하고 논밭중의 수수가 무성하고 여름 끝에 이른 이삭이 꽃을 피웠다). 또한 북산에 조성된 2개의 채원과 남산에 3개의 원림은 100여주의 과실수가 원근으로 열식되어 원근감있게 전개 되었으며 과실이 풍성했고 아름다운 수목은 계곡에 가지를 드리우며, 비파와 능금이 골짜기를 덮었다. 또한 그 모습은 수면에 투영되어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거부에는 38종의 수목명이 구체적으로 나타났으며, 수생식물이 18종 죽(竹) 10종, 동물 53종이 자세히 거론되어 있다. 사영운(謝靈運)은 시영서(始寧墅)를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도출하기 위하여 생태학, 수학, 지리학, 미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방면에서 이를 고찰하고 그를 통해서 중국 차경(借景)의 적용과 자연산수 및 문인화적 원림을 조성하기에 이른다. 이미 수천년전 사영운은 원림이 단순한 수목과 경물의 배치에 의해 조성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학문적 고찰을 통해 자연과 사상의 융합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현실
북경대학교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