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신창석의 문화사색] 길 위의 안단테



우리 소싯적에는 음악, 미술, 체육 시간이 있었다. 제일 기다리는 시간들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설레며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호기심 그 자체의 나이에 고대하는 시간이 없다면, 이미 그런 학교는 실패작이니까. 어른들이 늘 즐겨 하는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새로우니까. 어른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전통 없이는 깊이 가르칠 것이 없고, 아이들의 놀라움 없이는 재미있게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술시간이면 처음 사용해보는 붓이며 물감, 빠레트도 신기했고, 색깔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색깔의 밝기는 명도, 색깔의 감은 채도, 물감의 정해진 색을 요리조리 섞어서 내 빠레트만의 색을 만들어 칠해보는 것은 배색이었다. 체육시간이면 늘 새로운 운동을 배웠다. 선생님은 시간마다 다르게 생긴 공을 들고 나왔고, 새로운 공마다 다른 규칙이 있었다. 털이 난 공도 처음 보았고, 테니스 라켓은 너무 매끈하여 자꾸만 어루만지기에 바빴다. 첨보는 덤블링 기계, 그 높이에 겁나 떨면서도 뛰어 넘어보는 짜릿함이란. 앞으로 넘어야 할 수많은 삶의 높이를 예견케 했다.

 

 어느 날 음악시간에 난생 처음으로 대형 녹음기를 보았다. 이 세상 물건 같지 않은 그 많은 스위치를 매만지며 고동색 테이프를 요리조리 걸어가는 음악 선생님의 손길은 그날따라 더 고귀하게 보였다.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곡들이 차례로 흘러나오고, 시끌벅적하던 개구쟁이들도 어느새 저마다의 자세를 잡아갔다. 선생님의 손짓을 따라 저마다 지휘자가 되어보기도 했다. 난생 처음 울림의 마술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그 때는 귀나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음악을 들은 것 같다. 겨드랑이를 끝없이 파고드는 짜릿짜릿한 바이올린의 물결. 나무의자를 떨면서 엉덩이를 긁어대는 첼로의 부르릉거림, 천상으로부터 caelo라는 의미를 가졌다니 괜히 눈을 감아보았다. 교실 마룻장을 때리면서 발바닥을 저리게 하던 운명교향곡의 천둥소리. 아직은 덜 자란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그랬는지, 떨리는 마룻바닥과 의자의 마찰을 타고 조금씩 조금씩 미끄러져갔다. 알 수 없는 선율의 오솔길을 찾아서.

 

 오금의 떨림이 끝나면 이제 열심히 외울 순서다. 알레그로 빠르게, 모데라토 보통 빠르게, 안단테 걸음걸이 빠르게, 아다지오 느리게...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른 채, 노래하듯 외우기 시작했다. 모든 노래나 연주에는 속도가 있고, 모든 속도에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은 이태리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애들은 영어부터 배우지만, 우린 장화같이 생긴 나라의 이태리어부터 배운 셈이다. 모질게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명품교육을 받은 셈이다. 놀라움과 함께 배웠으니까.

 

 하지만 요즘도 잘 모르겠는 것이 안단테의 빠르기는 빠른 속도일까, 아니면 느린 속도일까? 안단테andante는 원래 ‘걷다’라는 뜻을 가진 안다레andare 동사의 현재분사형이다. 그렇다. 속도 의식은 인간의 걸음걸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노래와 연주의 속도도 걸음걸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단테를 기준으로 더 빠르거나 느리게. 가볍게 걷기는 인류의 유전인자에 기록된 표준속도가 아닐까. 유구한 세월을 지나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에 각인된 속도가 아닐까. 안단테는 한가하게 그러나 하릴없이 걷는 것은 아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급한 볼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릴 없이 어슬렁거리지 않고 걸어가기, 그것이 세월을 걷는 기본이 아닐까.

 

 이제 내 삶의 시절은 안단테가 제일 편한 계절이다. 하이든의 세레나데를 올려 본다. 바삐 가다가 안단테로 들어서면 나는 잃어버렸던 길을 다시 찾아 영혼의 걸음마를 새로 배운다. 이제 안단테로 걷는 게 편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나는 비로소 안단테로 사는 거다. 바쁘지도 않게 그렇다고 하릴없이 헤매거나 게으르지 않게, 그렇게 길을 떠날 계절이다.

 

 밖으로 나서니 늦가을 비가 내린다. 비도 안단테로 내린다. 그러고 보니 안단테는 가을이 지나가는 속도인가 보다. 올해 마지막으로 대지를 적시기 때문인가 보다. 원래 자연의 속도인가 보다. 길 위의 안단테를 들으며 새로운 발걸음을 떼어본다.

신창석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약 력 ◆

 

* 중요민속문화재 제172호 청운동 성천댁 소유자

*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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