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전통건축에 담긴 조영원리: ⑮ 동구(洞口)



사람들의 거주 공간은 다양하며 이들 공간에는 외부와의 경계선이 존재한다대부분 경계부분에는 출입구가 있는데그 모습 또한 다양하다살림집 출입구인 대문은 그 집안의 얼굴이다사람들은 살림집 출입구인 대문에마을 출입구인 동구에도시 출입구인 고속도로 입구에한 나라 출입구인 공항에 다양한 의미를 담은 형태로 꾸며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표현한다예를 들어 한 나라의 출입구인 공항은 그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시작점으로 첫인상을 심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그래서 대부분 국가에서는 많은 노력을 들여 공항을 꾸민다도시도 같다최근 여러 도시는 그 도시의 이미지와 성격에 맞는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어 도시의 시작점을 알리고 있다.

 

 어떤 도시는 현대적 디자인 개념과 재료로 시설물을 만들어 도시의 첫 인상을 표현하는가 하면어떤 도시는 전통적 디자인 개념과 재료로 시설물을 만들어 도시의 첫 인상을 표현한다이들 시설물은 도시의 관문으로서 도시의 밖과 안의 경계점이 된다시골의 작은 마을도 그 마을의 성격을 엿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구조물을 세워 마을의 성격을 다양하게 드러낸다이외에 어떤 마을은 마을 주변의 자연 경관에 의미를 부여하고 약간의 시설물을 첨가하여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마을의 첫 인상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최근 마을들은 도로와 마을의 경계지점에 마을 이름을 새긴 큰 돌을 세워 마을 초입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데이런 모습은 도로를 정비하고 길을 넓힌 전국의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다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마을은 초입에 아직도 당나무와 장승정려각과 정효각공덕비 등을 세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이런 모습은 빠르게 변모하는 현대 사회문화보다 과거 전통사회문화가 살아 있는 지역에 더 잘 남아 있다.

 

 이들 비각은 마을사람들이 기존의 사회적 규범과 문화를 따라 건립한 것으로 마을의 얼굴이자 역사다과거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비각을 세운 것은 이곳을 지나는 그들의 후손인 마을 사람들이 이를 보고 마을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과 규범을 제시한 것이다어떤 마을은 사회적 규범 이전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토속신앙과 민속 문화를 따라 돌을 쌓거나 금줄을 걸거나 장승 또는 기타 조형물을 세워 놓기도 했다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당제가 있을 때 이곳에서 간단한 고사를 지낸다.

 

 이외 동구에는 마을의 역사를 지켜본 고목이 자라고 있다고목 옆에는 돌무더기를 만들어 주변을 신성한 공간으로 꾸며 제당으로 사용하고동제를 행한다동제는 동고사서낭제골맥이 제사라고 부른다돌 위에는 동제 때 쳐 놓은 금줄을 걸어 놓고 마을 사람들은 투박하게 조각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세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이와 같은 다양한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은 근대기를 거치면서 불편하다는 이유촌스럽다는 이유전근대적인 이유 등으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부 시골 마을과 전통역사 마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과거 마을 사람들은 이와 같은 공간과 시설물 조영을 통해 공동체 의식과 문화를 공유했다.

 

 마을의 어귀인 동구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갔고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오갔고우리 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오갔다마을 어귀는 마을의 시작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이웃마을에서 시집오던 어머니도 이곳을 지나왔고장보러가던 할머니도 이곳을 지나갔다지금도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자동차다양한 현대사회 문화와 문명들이 오가고 있다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어린 아이는 어느 잔치 집에서 얼큰하게 한잔 하시고 돌아오시는 할아버지를 이곳에서 기다리면서 동구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어린 아이는 할아버지가 오시는 것을 보고 이내 할아버지 손에 들려 있는 봉지에 눈이 떼지 못했다어린 아이는 할아버지의 옷소매를 잡고 동구 밖으로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집으로 향했다어느덧 어린 아이는 부모가 되어 밤늦게 하교하는 자식을 이곳에서 기다린다.그리고 노부부는 도회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손들이 오는 모습을 이곳에 기다린다사람들이 변하고 바뀌어도 어릴 때 보았던 저녁노을과 고목은 변함없이 그들을 기다린다그리고 사람들은 동구와 함께한 많은 시간과 추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노년에 다시 이곳을 찾고자 한다.

 

 지금도 동구는 마을을 찾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으며그들 손에는 다양한 사연과 소식이 전달되고 있다이런 모습을 동구의 고목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그리고 어른들은 고목 아래에서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기도 한다마을에서 나서 자라고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바뀌었지만마을 동구의 고목 아래에는 언제나 아이들의 숨결이 있었고청년들의 웃음소리가 있었고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소리가 있었다또한 마을 찾는 외부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숨을 돌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이와 같이 동구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는데현대화를 앞세운 변화의 흐름 앞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버리는 실수를 했다이제 우리는 좀 느리게 가면서 문화유산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가치를 발굴하여 후손들에게 참된 문화유산과 그 가치를 남길 때가 되었다.

정연상

안동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 약력 ■

-전통건축 목수 및 기술자 수업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박사(2006)

-현 경상북도 및 대구시 문화재전문위원

-현 안동대학교 건축공학과 조교수

-건축 역사 및 이론, 건축문화유산 보수 및 유지관리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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