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신창석의 문화사색]분노와 우울의 시간



왜 고통의 시간은 한없이 길고, 즐거움의 시간은 찰나인가? 시계는 객관적 사물이지만, 시간은 주관적 의식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시계가 하루 24시간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제각각 달리 의식된다.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은 천년같이 느껴지고, 즐겁고 기쁜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주어지는 시간은 같아도 보내는 의식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분노와 우울의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분노하거나 우울한 시간에는 의식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분노나 우울로 마비된 의식 속에는 나 자신도 없다. 그래서 분노하거나 우울한 동안의 시간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시간이 의식일진대, 의식하지 못하는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요, 의식이 마비되어버린 순간이요, 결국 우리 삶에서 내 자신을 놓쳐버린 순간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내면에서 속절없이 끓어오르는 충동이다. 물 끓듯이 솟구치는 분노를 부레끓는다고 말하는가 보다. 분노는 또한 소화할 수 없는 외부 상황에 대한 잔인한 반응이다. 분노한다는 것은 주변의 상황에 나 자신이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내 대신 익명의 충동이 반응한다. 그래서 분노의 시간은 제어불능의 순간이요, 결국 주체할 자신을 잃어버린 자아상실의 순간이다.

 

 우울은 삶의 기쁨 뿐만 아니라 슬픔까지도 빼앗겨버린 순간을 말한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는 삶의 바다에서 정체 모를 그 무엇에 억눌리어 나 자신에 금이 가버린 자아균열이 우울한 순간이다. 우울한 순간은 결국 의식마저 접고 억눌러 생생한 삶의 여정을 도려내버린다. 도려내어져 상처 난 의식은, 그 상처로 자기 안에 고여 버린 영혼은 우울하다. 우울한 것은 영혼이 자아를 감옥으로 삼아 그 안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분노의 시대와 우울한 시대도 잃어버린 시대이다. 분노의 시대는 맹목적 충성으로 역사의식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시대이다. 암울한 시대는 가치의식을 억눌러 부셔버렸기 때문에 잃어버린 시대이다. 분노의 시대는 제어불능의 시대요, 암울한 시대는 지워진 역사가 되고 만다.

 

 삶의 여정은 어쩌면 물의 흐름과 닮아 있다. 작은 시내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모여든다. 그러나 강물도 그냥 바다로 가는 것은 아니다. 물도 한 곳이 고이면 썩어들고, 흙바닥을 긁어대면 황토물이 된다. 그때마다 물은 자기정화의 길을 찾아간다. 시내는 골짜기의 울퉁불퉁한 돌부리에 부딪치며 자신을 너그럽게 연마하고, 급류로 흙탕물이 되면 가라앉히고 가라앉혀 정화의 길을 흘러간다. 강바닥의 굴곡과 수면 위의 바람이 맞장구를 쳐 물결이 살아난다.

 

 강물이 정화의 길을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르듯, 삶의 여정도 어쩌면 치유의 길이다. 분노로 뒤척이거나 우울이 엄습해 오면 유유히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잔잔한 물결에 나를 실어 배워본다.

 

 깊은 숨을 내쉰다! 고인 물은 깊은 숨을 내쉬며 돌부리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굴곡을 넘어가는 물결에, 나의 깊은 숨결에 끓어오르는 피를 흘려 보내본다. 그러면서 분석한다! 왜 물결이 소용돌이치는지, 무엇이 끓어오르는지 강 건너 불 보듯 평정을 차리고 헤아려본다. 지금 우울한 기분은 어떤 기쁨이나 슬픔을 위한 기다림인지 가려본다. 침묵한다! 주둥이는 소리만 내지만, 사람의 입은 진실을 울리기 위한 것이다. 침묵하는 순간이야말로 나만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경청한다! 듣지 못하는 자는 말다운 말도 하지 못한다. 제대로 듣지 않으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리한다! 분노를 휘두르고 싶다면 먼저 결과를 떠올려보라. 우울하면 내 삶에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을 정리해 보자.

 

 분노가 질주하는 도로 옆에도 강물은 유유히 흘러간다. 반짝이는 물결이 분노를 흩어지게 할 것이다. 우울함이 고인 창밖의 처마에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낭랑하다. 낙수의 멜로디는 영혼에 파장을 일으켜 슬플 때는 슬프게 기쁠 때는 기쁘게 살게 할 것이다.

신창석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약 력 ◆

 

* 중요민속문화재 제172호 청운동 성천댁 소유자

*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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