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중 정원가 예찬 5 ] 황가원림의 대표 상림원과 한무제



중국의 원림은 ?를 기본으로 하였고 秦, 漢에 이르러 궁의 원유 즉, 궁원으로 발전하였다. 진·한으로부터 시작된 황가원림은 다양한 조영형식, 사상, 종교, 권력자의 이상과 욕망이 맞물려져 왔다. 궁원은 더 이상 단순한 경관감상의 장소가 아닌 조영자의 꿈과 이상향을 대변하는 장소로 지칭되기에 이른다. 한나라는 진나라의 뒤를 이어 원림을 진작시켰으며 그 기초를 더욱 강건히 하였다. 한나라의 황가원림 형식은 중국 전통원림사에 있어 매우 의의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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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 초상> 


 한(漢)나라 효무황제 유철(劉徹)(BC 156~87년)은 한조(漢朝)의 제7대 황제로서 한나라 유방(劉邦)의 증손이다. 그는 유가를 숭상하였고 중국의 연호제도를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 뛰어난 책략가로서 문·무를 겸비하였고 서한 왕조를 번영시켜 역사 속에 중국을 강력한 황제국가로 인식시킨 인물이다. 그는 국력회복을 통하여 경제발전을 꾀했고 그에 따라 황가원림도 전대미문의 발전과 번영을 이루게 된다.
서한 시대의 황가원림 대부분이 한무제 때 건립된 것을 보아도 이를 짐작할 만하다. 대표적 원림은 상림원(上林苑), 미앙궁(未央宮), 건장궁(建章宮), 감천궁(甘泉宮), 토원5처(兎園5處)이며 이에 대한 기록은 갈홍(葛洪)의 《서경잡지(西京雜記)》, 남조(南朝) 사람이 편찬한 《삼보황도(三輔黃圖, 작자미상의 고대 지리서)》, 청조(淸朝) 고염무(顧炎武)의 《역대택경기(歷代宅京記)》 등에 실려 있다. 유철은 황제 등극 후 유방에 의해 소실되고 경작지로 변해버린 진나라의 상림원 지역을 확대복원하고 궁을 건설하였다. 당시 동방삭(東方朔)은 이를 만류하였고 그는 이 일에 대하여 “한무제는 평복차림으로 장안 교외에서 사냥을 즐겼고 그로 인해 많은 농토를 훼손하여 백성과 자주 충돌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교외 외곽의 농토를 장안 교외의 농토와 교환해 주고, 진조(秦朝)의 옛 상림원을 황가원림으로 삼고…(중략),
기화이초와 각종 금수가 가득 하였다” 《漢書, 東方朔 傳》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규모는 현재의 남전 서안 등 모두 5개현에 걸쳐있고 12개 문과 약 160㎞의 담, 300,000㏊에 이르는 면적을 지니고 있었다. 원내에는 건장궁, 승광궁 등 12개의 궁이 조영되었고 어춘원, 사현원, 박망원, 락유원 등 36개의 원유와 20여개의 觀(白鹿觀, 昆明觀 등), 그리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정자와 대(臺)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원림건축과 원유는 산, 계곡과 연결되어 있었고 각 건축물은 높낮이를 다르게 하여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복도는 그 끝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關中記》. 이러한 상림원의 조영은 군주의 강력한 힘과 더불어 입지선정이 탁월하였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상림원 주위에는 종남산(終南山)과 구준산(九峻山)이 무성한 산림과 함께 웅장하게 자리하여 심원한 자연 경관을 이루었고 황하로 흘러드는 경수와 위수 등 8개의 물줄기가 입수하여 흘러 나가며 자연스런 수경관을 형성하였다. 이 때문에 상림원에는 지당과 늪이 다양하게 조성되었는데 대표적으로 곤명지는 한무제 4년(BC 114) 수군 전함의 훈련을 위하여 못을 팠으며 수십척의 전함과 망루가 있는 백척 이상의 전함이 정박하여 있었고, 못 가운데에는 석경(石鯨)을 조각하여 설치하고 양측 호안에는 견우와 직녀상이 위치하고 주위에는 은하수를 상징하는 이궁, 별궁, 정자, 대, 누각 등을 조영하였다. 《三輔黃圖》《西京雜記》 2006년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협서 제2분과원)는 곤명지 유적지을 발굴한 바 있다.
그 결과 곤명지는 20여개 마을에 인접하여 위치하였고 동서 약 4.25㎞, 남북 약 5.69㎞이며 호수 둘레는 약 17.6㎞ 면적은 16.6㎢, 입수구가 420m에 이르는 것도 있음을 확인하였다. 상림원 내 12궁전에는 원림이 조성되었고 그중 가장 뛰어난 곳은 건장궁내 원림이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전정, 쌍봉궐, 신명대, 태액지 유적만이 남아 있다. 건장궁은 전정후원의 구조로 남부는 궁궐구역, 북부는 원림구역을 이루고 있다.
가장 높은 기단위에 전정을 조영하여 중심을 이루게 하고 정문인 원궐(圓闕), 옥당(玉堂), 건장궁(建章宮)의 전전(前殿), 천량궁(天梁宮)이 하나의 축선을 형성하고 있다. 기타 궁실은 좌우로 분포되어 있고 전체가 복도로서 둘러싸여 있다. 건장궁의 원림 구역은 태액지(太液池)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진시황제가 조영하였던 三神山(瀛州, 蓬萊, 方丈)을 모방하여 태액지 가운데 재현하였다.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전전후원(前殿後苑)과 일지삼산(一池三山)을 모식화 하여 조영한 것이다. 이 前殿後苑과 一池三山의 형태는 후세 황가원림 조영 양식의 기본을 이루었다. 이밖에 상림원에는 기화이초 및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로 가득하였다. 수목은 복숭아, 배, 대추, 매화, 살구 등을 식재 하였는데 배나무는 자색 청색 등 다양한 종을 식재 하였고 대추나무는 옥문대추, 적심대추, 곤륜산 서왕모대추 등이 식재되었다.
 남쪽의 창포, 산생강, 회화나무, 용안, 여지, 감귤 등을 식재, 부려궁을 조영하였고 특히 서역의 포도나무를 식재하고 포도궁이라 명하였다. 각 궁은 독특한 수목을 식재, 특징적 요소로 삼고 이름하였다. 동물은 사자, 호랑이, 곰, 여우 등 100여종 이상 존재하였고 각종 수목과 물가에 새가 있어 심원의 산림 풍광을 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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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궁> 


 상림원은 광활한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조영 되었고 다양한 기능적 역할을 하였으며 산수화 속 풍경을 현실에 재현한 것이다. 한무제 이후 한나라는 왕위 찬탈 등으로 인하여 쇄락하였고 동한왕조의 건립되고 낙양으로 도읍이 옮겨지면서 장안 일대의 원림궁원 또한 퇴락을 길을 걷게 된다. 상림원 또한 이러한 역사 속에서 조용히 묻히게 되었다. 상림원은 秦朝로부터 西漢에 이르기 까지 약 240년 동안 중국의 역사 가운데 존재한 대표적 원림이었다.

신현실  
북경대학교 세계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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