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중 정원가 예찬 7 ] 사륜정(四輪亭) : 독창적 정원시설의 발명가, 이규보



이규보(1168~1241년)는 고려 무신집권기의 대문호로 공의 이름은 인저(仁低)였으나 뒤에 규보(奎報)로 고쳤고,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지헌(止軒) 등이 있으며 특히 시와 술과 거문고를 좋아한다 해서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규보의 저서로는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文集)》과 《백운소설(白雲小說)》을 들 수 있는데 《동국이상국문》은 전집 41권과 후집 12권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후집은 역시 사자(嗣子) 함(涵)이 전집에서 빠진 다른 유작들을 다시 수집하여 만든 것으로 뒤에 전집과 합하여 간행되었다. 이 《동국이상국문집》은 공의 서거를 전후한 1241년 즉 고종 28년에 최초로 간행되었고 조선 시대에 와서도 몇 차례 간행이 있었다. 또 《백운소설》의 내용 중에는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이 적정에게 보낸 시편을 다루었고, 우리민족사에 《동명왕편》이라는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규보는 고려 무신집권기에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입신한 신진사인의 대표적 인물로서 민족주체성과 민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후일 신흥사대부 문학의 모태가 되었으며, 또한 자기시대의 문제를 인식한 지식인적 양심은 후대에 높이 살만 하다. 공의 시대를 대표할 만한 업적 중에 고려 시대 정원사분야에 큰 업적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으니 바로 《동국이상국문집 권23》에 실려 있는 《사륜정기》이다. 오랜 기간 누정문화를 공유해온 한국과 일본, 중국의 많은 사례와 비교해도 이규보의 사륜정(四輪亭)은 매우 독창적이다. 실제로 지어지지 않은 정자에 대한 기문을 남겼다는 점도 기발하며, 더구나 이동이 가능하도록 네 바퀴달린 정자라는 점은 유례없는 발상이었다(홍형순). 사륜정기에서는 이규보가 사륜정을 고안한 연유가 자세히 나타나 있다.


사륜정 사진제공=경기도시공사 


 사륜정이라는 것은 농서자(?西子)가 설계하고 아직 짓지는 못한 것이다. 여름에 손님과 함께 동산에다 자리를 깔고 누워서 자기도 하고, 혹은 앉아서 술잔을 돌리며 바둑도 두고, 거문고도 타고, 마음 가는 대로 하다가 날이 저물면 파하였으니 이것이 한가한 자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햇볕을 피하여 그늘로 옮기면서 여러 번 그 자리를 바꾸는 까닭으로 거문고나 책·베개·대자리·술병·바둑판이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지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떨어뜨리는 수가 있었다. 이에 비로소 설계하여 사륜정을 세우려 하는 것이다. 아이종으로 하여금 끌게 하여, 그늘을 따라 나가면 사람과 바둑판·술병·베개·대자리가 모두 한 정자를 따라 동서로 가면 되니 이리저리 옮겨 다닐 걱정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은 비록 성취하지 못하나 뒤에 반드시 지을 것이다(사륜정기).

 

 원래 정자는 원림의 핵심건축물로 관람자들이 움직이는 동선의 핵심 지점에 위치해 여러 광경을 수습하여 흩어진 원림의 경관에 주제를 부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규보는 이동식정자인 사륜정을 통해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은 적극적인 경관연출과 이를 통한 행태를 조작하고자 한 것이다. 사륜정에는 치밀하게 설계된 규모와 행위에 대한 고려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사륜정기에 보면

 

 바퀴를 넷으로 하고 정자를 그 위에 지었는데 정자의 사방이 6척이고 들보가 둘, 기둥이 넷, 대나무로 서까래를 하고 대자리를 그 위에 덮으니 가볍게 하기 위함이다. 동서가 각각 난간 하나씩이요, 남북 또한 같다. 정자가 사방이 6척이니, 그 칸수를 다 합치면 모두가 36척이다. 정자안의 배치는 거문고 타는 자 한 사람, 노래하는 자 한 사람, 시에 능한 중(僧) 한 사람, 바둑 두는 자 두 사람, 주인까지 여섯이다(사륜정기).

 

 이규보는 창작활동이나 사륜정을 고안할 때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진취적이며 실험정신이 강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원관련 지식도 해박하였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정자를 짓는데 그 아래에 바퀴를 다는 것이 옛날 제도에 있는가 하였다. 대답하기를, 알맞음을 취할 뿐이니, 어찌 반드시 옛것만을 찾겠는가. 옛날에 나무에 깃들어 살 때에 거처할 수가 없으므로, 비로소 기둥과 집을 세워 풍우를 막았는데 후세에 이르러 점점 제도가 증가하여 나무판자로 쌓은 것을 대(臺)라 하고, 난간을 겹으로 한 것을 사(?)라고 하였으며 집 위에 집을 지은 것을 누(樓)라 하고, 툭 트여서 텅 비고 허창(虛敞)한 것을 정(亭)이라 하였으니, 모두 그때그때 헤아리고 참작하여 맞는 것을 취한 것일 뿐이다(사륜정기).

 

 또한 상징적 측면에서, 사륜정에 내재한 의미는 도가적(道家的) 사유와 자연현상이 보여주는 ‘우주적 질서’로 부터 임금을 모시는 신하의 도리 등 현실적인 문제까지 망라하고 있다.

 

 밑은 바퀴로 하고 위는 정자로 한 것은, 바퀴는 굴러가고 정자 위에 머물러 때가 행하게 되면 행하고 그치게 되면 그친다는 뜻이다. 바퀴를 넷으로 한 것은 사계절을 뜻한 것이요, 정자를 6척으로 한 것은 육기(六氣)를 나타낸 것이며, 두 들보와 네 기둥은 임금을 대신하여 정사를 도와 사방에 기둥이 된다는 뜻이다(사륜정기).

 

 오늘날, 이규보의 사륜정은 결국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게 되었으나 그 문장에 의거하여 만드는 일은 그리 힘드는 일이 아닐 만큼 개연성이 높다. 또한 그가 지닌 현실에 입각한 실험정신과 이동식 정자를 통한 원림경관의 향유태도와 고도의 상징성은 고려 시대 정원사에 독보적인 기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현실  
북경대학교 세계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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