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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무기연당과 함안 무기리 주씨 고가

입력 : 2017년08월22일 1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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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경상남도 함안은 일찍부터 고대문명이 꽃피우기 좋은 곳으로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오랜 역사와 고유한 문화를 간직한 함안은 삼한 시대에는 안야국(安椰國)이 세워지고, 주변의 작은 부족국가와 통합해 아라가야(阿羅伽倻)가 되었다. 6가야 중 하나인 아라가야는 뛰어난 철기기술과 토기 제작 등으로 찬란한 문명을 보여주었다. 

  사랑채 감은재      사진제공=함안군 블로그 사랑채 감은재 사진제공=함안군 블로그

 함안군 칠원에 자리 잡은 함안 무기연당(咸安 舞沂蓮塘, 국가민속문화재 제208호,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1길 33)은 국담 주재성(菊潭 周宰成, 1681~1743)의 생가인 함안 무기리 주씨 고가(咸安 舞沂里 周氏 古家,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0호)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다. 이 연못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周宰成)가 난을 일으켰을 때 함안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공을 세운 의병장 주재성을 기리기 위하여 관군들이 건립하였다.

 

 국담 주재성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의병장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백운동 서원을 세운 주세붕 선생의 종손자인 국담 선생은 1728년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쓰며 평생을 보냈다.

 1743년에 세상을 떠난 국담 선생은 2년 뒤에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되었으며, 1783년(정조 4)의 충신의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1788년 기양서원(沂陽書院)에 제향되었다.

 

 무기연당이 있는 무기마을은 약 300여 년 전 상주주씨가 이주해 살고 있는 집성촌으로 증조할아버지인 주문보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다. 그는 이곳이 무릉도원처럼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서 마을 이름을 ‘무릉(武陵)’이라하고, 자신이 정착한 마을도 자신의 사상을 담아 '무기'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700년대에 건립한 함안 무기리 주씨 고가는 국담 선생 이후 주씨 문중의 종가로 내려 왔으며 18세기경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주씨 고가는 국담 선생의 충성심에 대한 공훈으로 내려진 충신정려(忠臣旌閭)와 아들 주도복의 효행에 대한 포상으로 내려진 효자정려(孝子旌閭)가 함께 걸려 있는 충효쌍정려문(忠孝雙旌閭門)과 중문, 사랑채인 감은재(感恩齋), 안채와 사당 등이 있고, 담장을 사이에 두고 연당을 중심으로 하환정(何換亭)과 풍욕루(風俗樓), 충효사(忠孝祠)와 영정각(影幀閣) 등이 있다.

 

담장       사진제공=윤완식 담장 사진제공=윤완식

  무기리 주씨 고가 솟을대문      사진제공=함안군청 무기리 주씨 고가 솟을대문 사진제공=함안군청

 솟을삼문 앞에 서면 붉은 색을 띤 충신정려와 효자정려가 잠시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사랑채인 감은재는 넓은 마당을 두고 자연석 2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一’자형으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각각 온돌방을 두었다. 국담 선생의 아들인 주도복의 호이기도 한 감은재는 서실로 사용하였으며 이곳에 국담문집책판(菊潭文集冊板)이 보관되어 있고 대청 북쪽 벽에는 초상화를 모셔 두었던 영정각이 남아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一’자형이다. 맞배지붕을 한 안채는 왼쪽부터 건넌방, 안대청, 안방 부엌을 두었다. 

 안채 뒤에 사당인 부조묘(不祧廟)가 있는데 이곳은 국담 선생의 기제사(忌祭祀)를 영구히 받들라는 왕령에 따라 그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무기연당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무기연당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감은재 맞은편, 한서문으로 들어가면 함안 무기연당이 한 눈에 펼쳐진다. 국담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하환정과 풍욕루가 서 있고, 오른쪽에는 충효사와 영정각이 있다.

 국담 선생은 이인좌가 반란을 일의켜 호남까지 진출하려고 하자 이에 맞서 함양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관군과 합세하여 난을 평정하였다. 국담 선생은 의병과 관군들에게 사재를 털어 대접하고 밥솥 400여개를 준비해 보내주었다고 한다. 관군들은 국담 선생의 공을 기리며 고마움을 보답하고자 창의사적비를 세우고, 서당 앞에 연당을 파고 가운데 기암괴석으로 원형의 당주를 쌓아 석가산을 만들었다. 연당은 ‘국담(菊潭)’이라 하고 석가산은 ‘양심대(養心臺)’라 하였다. 또 담장 쌓고 일각문을 내어 ‘영귀문(詠歸門)’이라 하였다. 그 후로 주재성은 자신의 호도 ‘국담’이라 하였다.

 

하환정     사진제공=문화재청 하환정 사진제공=문화재청

 하환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로 마루와 방 한 칸을 두었으며 연당 쪽으로 난간을 설치하였다. ‘세상살이를 어찌 벼슬 따위와 바꿀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정자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국담 선생의 소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풍욕루    사진제공=문화재청 풍욕루 사진제공=문화재청

 풍욕루는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앞뒤에 퇴칸을 두었다. 중앙에 마루을 두어 앞뒤로 통하게 하고 양쪽으로 각각 방을 한 칸씩 배치하였다. 대청에 ‘경(敬)’자 편액이 걸린 풍욕루는 ‘바람에 몸을 씻는다’는 뜻으로 선비의 고고함이 담겨 있다.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살겠다는 국담 선생의 마음이 담긴 함안 무기연당은 긴 세월이 흘렀어도 그 고고함은 그대로 전해져 오고, 우리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함안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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