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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제42호 충주 탄금대(忠州 彈琴臺)

우륵의 가야금이 울리는 역사의 공명

입력 : 2017년10월10일 16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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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긴 한가위 연휴 덕분에 고향을 찾은 가족들에게도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차례상을 물리자마자 서둘러 고향집을 나서는 모습이 마치 풍습처럼 되어버렸었다. 쉬는 날이 길다보니 느긋하게 가족끼리 여가를 보내볼 만도 하다.

 

 충청도 인근에 있는 이들이라면 이 명절에 한번쯤 찾아볼만한 명승이 있다. 바로 충주의 탄금대(忠州 彈琴臺, 명승 제 42호)다. 탄금대는 남한강을 끼고 시원스레 조망되는 경관과 함께 특히 역사의 흔적이 오랜 시대에 걸쳐 겹겹이 쌓여있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온 가족들이 함께 걸어볼만한 산교육장소다. 
 

  충주 탄금대 충주 탄금대

 충주는 예로부터 택리지에서 살만한 곳으로 충주의 4대촌을 꼽기도 했을 정도로 가거지로서 알맞은 곳이었다. 충주시 칠금동에 위치한 탄금대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전에는 지방기념물 제4호이기도 했다. 원래 도심지에 가까이 위치해서 접근성도 좋다. 탄금대 하면 우리나라 3대 악성중의 하나인 우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탄금대의 명칭이 바로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 그 옛날 천재음악가가 가야금을 즐겨 연주했던 장소일까? 

 

 탄금대의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면 각종 탑과 조각물이 있어 마치 현대의 공원과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곳이 조선 시대에도 전국의 유명한 명승지였다는 것을 알고 나면 주변의 경관이 모두 의미깊게 다가오게 된다. 마치 우륵의 가야금에서 나오는 공명이 지금까지 들리는 것 같다. 조선말에 제작된 <청구남승도>에는 충주 탄금대가 명승지로 표기되어 있다. 이 남승도에 당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120개 명승지 중 하나로 탄금대가 올라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명성을 짐작할 만 하다. 오늘날로 말하면 조선의 명승지 120선에 뽑힌 것이다.
 

청구남승도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청구남승도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원래 ‘남승도’는 주사위 놀이의 일종으로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도판에 적힌 명승지를 유람하듯 옮겨가는 놀이다. 조선 시대에는 이 주사위 놀이를 명승지와 접목해 아이들의 한자교육과 겸해 전국의 명승지를 가상 체험하는 재밌는 놀이도 벌였다는 것이 자못 신기하다.

 

 탄금대 일대는 원래 대문산(大門山)이라 불리던 작은 산으로 남한강과 접하면서도 기암절벽에 소나무가 어울려 있고 넓은 수변과 함께 조망되는 파노라믹한 경관이 시원스럽다. 여기에 문화적 역사적 가치 또한 더한 명승이다. 
 

충주 탄금대 충주 탄금대

 조선 후기 작자미상의 김학공전을 개작한 이해조의 탄금대란 소설에도 개화기 권선징악의 무대로 탄금대가 등장했다. 소설에 묘사된 탄금대는 주인공이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로 사회 격변기의 복수와 화해, 대립과 갈등의 무대로 사용되었다. 이는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실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무대가 된 탄금대의 장소성이 근대 소설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라 시대 천재음악가의 연주무대로 쓰였던 탄금대의 명성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 당시의 사람으로 가야국이 매우 혼란해지자 신라로 망명했다. 진흥왕은 그를 국원(國原:지금의 충주)에 안치시키고 신라의 관료 세 사람(계고, 법지, 만덕)을 파견시켜 음악과 춤·노래 등을 전수하게 하였다. 이후 우륵의 음악과 춤·노래 등은 신라의 궁중음악인 대악(大樂)으로 채택되어 우리 고유음악의 기틀이 되었다(충주시청 홈페이지). 우륵은 항상 탄금대의 산상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탄주했다고 전해진다. 가야국의 멸망을 경험한 천재음악가의 당시 심정을 짐작하건데 탄금대의 강물과 절벽을 바라보며 그 통한을 가야금 연주로 달랬을 것이다.
 

신립장군 순절비 및 비각 신립장군 순절비 및 비각

 또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 8천여 명의 장병을 거느리고 왜장 고시니 유키나카에 대항하여 배수진을 치고 격전 끝에 참패하게 되자, 장강백파에 투신하여 순국한 전적지로도 유명하다. 또한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100척 높이의 절벽부에 신립장군의 충절이 어린‘열두대’도 함께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신립 장군이 탄금대 전투 때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이곳에서 강 아래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유래된 곳이다(문화재청). 이곳은 아름다운 주변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이기도 하다.
 

  탄금정       사진제공=문화재청 탄금정 사진제공=문화재청

 2층 누각형태인 탄금정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로 본래 충주관아 내 연못에 천운정이란 정자가 있던 것이 사직산에 옮겼다가, 1955년 다시 이 자리로 이건되었는데, 목조로 된 정자가 낡고 헐어 지금 이 정자를 건립하게 되었다고 충주시는 알리고 있다. 이 탄금정에서 사방으로 바라보이는 남한강과 주변경관은 장관이다.

 남한강 절벽부에 흉고직경 약 10∼30cm 의 소나무로 구성된 송림이 잘 발달되어 있고, 하층부에는 붉나무, 싸리, 쪽동백, 산초나무, 뽕나무, 생강나무, 생강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문화재청).

 또 탄금대 일대의 탄금대토성 유적은 삼국시대 백제세력에 의해 축조된 토성으로 발굴조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탄금대는 과거 명승지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부터 탄금공원으로 관리되는 지금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시설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보면 탄금대는 주민들에게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받는 진정한 명승임에 틀림없다.

 

<인용문헌>

2008년 천연기념물, 명승 국가지정문화재 지정보고서

대가야 박물관 홈페이지

충주시청 충주문화관광 홈페이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이원호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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