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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정원가 예찬 33] 정원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가르친 정원철학자 閑居業種花人(한거하면서 꽃 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번암 채제공 편

입력 : 2018년02월05일 13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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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제공하면 조선 후기 화국수(華國手)라 불리었고 영조가 정조에게 충신이라 칭찬했으며 수원화성을 축조했던 공사총괄 책임자로 이름나 있다.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으로 조선 효종 때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낸 채유후(蔡裕後)의 방계 5대손이며,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채응일(蔡膺一)이다. 그의 관직은 규장각제학·예문관제학·한성판윤·강화유수, 우의정, 영의정까지 지냈다. 사도세자의 스승으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인정할 만큼 안목이 남달랐으며 글씨와 문장에도 능했다. 또 양명학·불교·도교·민간신앙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수기치인의 측면에서는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열린 생각을 펼친 유학자다. 최헌중(崔獻中)·이승훈(李承薰)·이가환(李家煥)·정약용 등이 그의 정치적 후배로 거론된다.
 

채제공의 초상 채제공의 초상

 그동안 나라를 빛낸 화려한 업적에 가려 그의 정원가적 풍모는 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채제공은 밖으로 나라에 공적을 쌓으면서도 안으로는 한거업종화인(閑居業種花人)‘한거하면서 꽃 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꿈꾸던 소박함을 지녔었다.

 

 우리의 옛 선비들은 책을 벗 삼고 자연과 가까이 살며 일생을 보냈다. 조선 시대 유행했던 유학적 사고의 근본 또한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에서 출발했으니 정원은 선비들의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최적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남긴 정원에 대한 취미와 감상을 다룬 문장을 보면 단순한 일상이나 경치에 대한 감회를 적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으로 정원에 빗대어 세상의 이치와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을 보여주려 했던 의도가 드러난다. 정원조성과 감상은 또 다른 차원에서 선비가 갖춰야할 소양교육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이 앞다투어 정원경영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번암집 표지 번암집 표지

 그는 《영조실록》《국조보감》 편찬 작업에 참여했으며 개인 저서로는 《번암집(樊巖集)》59권이 전하는데, 권두에 정조의 친필어찰 및 교지가 실려 있어 정조의 총애를 실감할 수 있다. 이 문집을 보면 정원에 관한 그의 활동과 식견도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다. 채제공은 서울 보은동에 있었던 자신의 집 ‘매선당’, 홍상서의 ‘견산루’, 윤이중의 ‘분호정’ 등 이제는 사라진 약 20여곳 정원의 상세한 모습을 기록으로 담았다(세계일보 2016.8.11일자). 

 그 중 정원비평가로서의 전문성이 엿보이는 대목이 눈에 띤다. <유이원기(遊李園記)>에 보면 

 “다만 지세가 좁아서 널찍한 품이 좀 모자라는 것이 한스러우니 사물이 미를 온전히 다 갖추지 못하는 것은 이치인 법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 말하길 지난날에는 복숭아나무가 다발로 엮은 듯이 무리를 이루고 있어서 오늘의 장관 정도가 아니었는데 최근 권귀(權貴)가 새로 정자를 지어 아예 배 한척에 전부 실어 내어 제거하고 계구에 심을 것을 문수에 대나무 숲에 심어 버렸으니 지금의 화원은 옛날 화원과 다르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천지의 도는 변하고 바뀌는 법이지요 하물며 늘상 같은 주인이 있을 수는 없는 사물의 경우에야 어떻겠소? 저쪽이 번성하면 이쪽이 쇠퇴하고 동쪽이 넉넉하면 서쪽이 기울어지는 법이요 비록 종정과 옥백같이 귀한 것이라도 본래 혼자 가지고 놀 것이 못되지요. 그렇게 늘 어리석은 자가 부귀하여 못된 욕심을 마음껏 부려서 그 정자를 본래부터 소유한 것이라 여기고는 더 나아가 물(物)을 옮겨 심어 억류하여 영구한 별업으로 삼으려 할 뿐 그것이 오래지 않아 또 누구에게 귀속될지를 모르는 군요. 사람으로서 태어나 어찌 이다지도 어둡단 말인지(심경호, 2001)!

채제공의 친필 채제공의 친필

 흔히 한국정원의 특징을 거론할 때 “자연에 순응한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인간의 솜씨가 가해져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정원임에도 자연과 가깝다는 의미는 유교에서 말하는 자연과 하나 되려는 노력을 이야기 한다. 채제공은 이 글에서 정원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서 만물과 일치되는 인간의 태도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채제공과 정원에 관해 관심이 유달랐던 심경호 교수의 글에 보면 채제공이 정원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는 화원을 소재로 하거나 도성 안팎의 화원을 유람하고 지은 글을 여럿 남겼다. 화암수록으로 유명한 유박이 금곡에 화원을 조성하고 지인들을 초청했을 때 채제공이 <우화재기(寓花齋記)>를 지어주고 유박을 예찬하기도 했다. 

 대개 물(物) 가운데 사람이 감상하는 것은 그 성쇠가 극심하다. 꽃은 천지가 아주 아끼는 것 이여서 ‘늘 있게는 하지 않는다’. 꽃이 피면 비바람이 뒤를 따를 것이니 이것은 조화옹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불가피한 일이다. 사물의 성쇠는 조화옹이라 하여도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런데 유박은 꽃을 재배하여 높고 낮음과 형과 색을 주재하고 갖가지 꽃을 한데 두어 “이것이 퇴색하면 저것이 아름답고 이것이 쇠하면 저것이 피어나 눈이 쌓이고 얼음이 켜로 언 계절이라도 그대 앞에서 꽃은 그대로 자약(自若)하다. 또한 정성스럽게 꽃을 구하는 습성을 확장하여 천하사물의 참 이치를 구하라”고 충고를 덧붙였다.

번암집 원문 중의 일부 번암집 원문 중의 일부

 조원기(曹園記)에서는 세상에 정도가 무시되는 현상을 비판하여 주인의 성은 조 씨로 한거하면서 꽃 심는 것을 업으로 한 사람이다. 거문고 연주를 즐겼으며 바깥세상의 일 때문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으니 오늘날의 사대부 가운데 혹 몸을 환신 자신의 본질을 바꾸어 세속의 가치에 몸을 맡기는 일 시키거나 혹 친구를 팔아서 밤낮으로 영리를 꾀하고 도박하여 일신의 생계로 삼는 자에 비한다면 현명하지 아니한가? 세상 사람들의 그릇된 행위를 정원 일과 비교하여 통쾌하게 꾸짖은 대목이다. 

 채제공은 꽃구경을 특히 즐겼는데 정원의 감상이 양반들의 소유물이 되는 것을 꺼려 여항의 서민까지도 꽃구경 즐기기를 권장하였다. 그가 속한 남인계열은 특히 정원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장안에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의 정원에 초대받고 그곳에서 정원기를 써주곤 했다. 그가 평소 가진 정원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한 선비들이 앞다투어 그들의 정원을 선보이고 기꺼이 품평과 자문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정원에 특히 관심을 보였던 조선선비들에게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려 정원기를 썼던 채제공은 세상에 물질적으로 보여진 정원의 꽃들이 아닌 인간의 내면적 정원의 꽃들을 가꾸도록 한 조선시대 정원의 진정한 철학자로 예찬하기에 충분하다.

 

<참고문헌>

번암집

세계일보 공감 문화재(2016.8.11.)

심경호(2001)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소명출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현실

중국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

(사) 한국전통조경학회 집행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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