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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독립문 (서울 獨立門)

1897년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면서 세운 문

입력 : 2018년03월22일 13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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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독립문(서울 獨立門, 사적 제32호,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941)이 건립된 지 120년을 맞이하였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면서 세운 독립문은 조선 시대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을 허물고 1897년에 건립하였다. 이 문은 서재필(徐載弼, 1864~1951) 박사가 조직한 독립협회가 주축이 되어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모금행사를 통해 모은 자금으로 건립되었다.
 

서울 독립문    사진제공=문화재청 서울 독립문 사진제공=문화재청

 높이 14.28m, 너비 11.48m 크기의 독립문은 1896년 11월에 시작해 1897년 11월 20일, 1년 만에 완공되었다. 이 문은 파리 개선문을 본뜬 모습으로, 독일공사관의 기사가 설계를 하고 공사는 심의석(沈宜碩)이 담당하였다.

 정육면체 화강석으로 쌓아올리고, 가운데 홍예문이 있다. 문 왼편 안쪽으로는 꼭대기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고 맨 꼭대기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다. 홍예문의 이맛돌에는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고, 그 위의 앞뒤 현판석에는 각각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쓴 글씨와 그 좌우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서울 독립문 서울 독립문

 독립문은 일제강점기 때 두 차례 수리를 한 적이 있고, 한국전쟁으로 일부가 파괴되어 1966년에 보수공사가 하였다. 그 후에도 한 두 차례 수리한 적이 있으며, 1979년에는 성산대로의 고가도로 공사로 인해 원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70m 떨어진 곳으로 이전되었다.

 

 독립문 바로 앞에는 서울 영은문 주초(서울 迎恩門 柱礎, 사적 제33호) 2개가 남아있다. 영은문 주춧돌은 모화관 앞에 세웠던 문으로, 현재 독립문이 있는 곳의 바로 앞에 있었다. 
 

서울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 서울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모화관은 1407년(태종 7)에 서대문 밖에 모화루를 세웠다가 1430년(세종 12)에 모화관으로 명칭을 바꿨다. 그 후 모화관 앞에 세웠던 홍살문을 개축하여 영조문(迎詔門)이라는 세웠다. 1539년 영조문을 영은문으로 이름을 고쳤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울 독립문 뒤편으로는 서재필 동상을 비롯해 당시 모화관을 허물고 지은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3.1독립선언기념탑,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이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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