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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정원가 예찬 37] 한국정원의 품격을 한층 높인 상상 속의 정원가 홍길주(洪吉周) 편

입력 : 2018년06월28일 18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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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내노라하는 사대부 문인 중에서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정원을 글로 짓는 독특한 정원가들도 있었다. 이름하여 ‘의원기(意園記)’라는 종류의 글인데 조선 후기 정원조성 붐에 힘입어 유행했다.
 사실 ‘의원기’라는 장르는 중국 명나라 때 소대총서 갑집에 수록된 황주성의 <장취원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황주성은 명나라가 망한 후 세상을 비관하여 상상 속에 뜻을 두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대부 출신이면서 부와 권력의 길에서 비껴있었던 문인들에게 ‘의원기’는 당시 정원조성 유행에 동참하지 못했던 이들이 위로받는 대리만족의 수단이었다. 아울러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정원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청빈한 사치’로 통했다.

 ‘원림’이라는 실체가 조영자 개인의 취향이나 추구하는 바를 그곳에서 실현하고 누리고자 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이상향이 반영된 물리적 결과물이라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물리적 결과물은 ‘의원’이라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면 만족됐을 것이니 어쩌면 이 둘은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할 조선 최고의 상상 속 정원을 꿈꾸었던 정원가는 형 홍석주와 김매순과 함께 고문의 3대가로 불리던 문인 홍길주다. 

 홍길주(洪吉周, 1786-1841)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헌중(憲仲), 호는 항해(沆瀣)로 19세기를 대표하는 경화세족(京華世族)이자 문한가의 후예다. 그는 일찍이 과거를 포기하고 평생 동안 문인(文人)을 자처하며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최식, 2005:187).

 홍길주의 상상 속 글들은 대부분 유교의 영향으로 명명한 근거를 밝히고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원리와 엮어서(안대회, 2017), 공간과 부여된 의미 그리고 삶의 태도를 나타내고자 했다. 

 어쩌면 홍길주의 상상 속 공간은 사물들이 그 의미 부여단계에서 벗어나 실제 사물을 경영한 것과 다르지 않은 치밀한 현실감각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그가 꿈꾸던 장소는 실제로 소유하는 물리적 실체만 없을 뿐, 현실과 전혀 다를 것 없는 것이었다. 그의 글 중 한 대목에는 “예전에는 글을 잘 짓지 못한 이유가 더 배워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지만 이제는 글을 잘 짓지 못하는 이유가 배울 만한 옛 것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쓰고 있다(안대회, 2017). 

 홍길주에게는 정원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처음에는 모든 것에 집착하고 욕심이 있지만 방대한 공부와 인격이 완성되고 난 다음에는 모든 것이 초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꽃이 지지 않고 모습이 변하지 않는 정원이야 말로 상상속의 정원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의미도 하나 변할 것이 없다. 그의 이러한 태도를 잘 말해주고 있는 또 다른 대목이 있다.

 

 “선생은 형상으로 구하는 것은 있는 듯하나 없고, 뜻으로 깨달은 것은 없는 듯하나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명승을 차지하고 호사를 다투는 자는 지금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고 구름이 걷히듯이 없으니, 의거하여 전하는 것은 종이 위의 빈 말일 뿐이다. 설령 내가 진실로 이것을 소유하더라도 천백 년 후에는 모두 없는 데로 돌아갈 것이니, 어찌 반드시 종이 위의 것이 나의 것이 아니겠는가? 정경은 마음속에서 생겨나고 형상은 붓 끝에 달려 있어, 홀연히 완성하여 公費를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 비바람으로 꺾을 수 없고 물과 불로도 무너뜨릴 수 없으니 가령, 자손이라도 초목하나 남에게 줄 수 없을 것이다. 사람 중에 이곳을 유람하는 자는 발로 밟을 수 없지만 눈으로 그려볼 수 있으며,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상상 할 수는 있을 것이니 궤상에 앉아서도 두루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한씨문고본의 題辭 발췌- (國譯 최식, 2005:208).
 

숙수념 제1관 규장각 소장 숙수념 제1관 규장각 소장

 홍길주 집안은 대대로 세력가로서 활동했고 그의 형제인 석주와 현주는 문인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어머니 손 씨는 당대 여성 중 계수학에 뛰어났다. 홍길주가 모친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것은 그의 저작인 《수여방필》에서 역사기록상 연월의 오류 등을 지적하고 있고 당시 집안과 친분이 두터웠던 역관과 학문적 교류를 지속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홍 씨 집안 삼형제들은 다양한 서적을 수집하고 독서를 폭넓게 함으로써 신지식과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수용하였다. 이들은 학술과 문예를 소통하여 지식과 정보의 폭을 넓혀나갔으며, 점차 조선의 한양과 중국 연경의 학술과 문예에 대해 정통하게 되었다. 이들은 가문의 장서를 바탕으로 폭넓은 독서체험과 다독을 했으며 비평을 즐겼다. 특히 홍길주는 산문에서 높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의 저작들은 《현수갑고》,《표롱을첨》,《항해병함》을 비롯하여 상상속의 정원 오로원을 다룬 《숙수념》과 《서림일위》 등을 남겼다.

 

 홍길주의 글쓰기는 기존 문인들에 비해 자유로웠고 당시 중국의 영향으로 보편화 되었던 출전에 얽매여 반복하는 용사(用事)의 폐단을 지적하였으며,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문장을 구사했다. 특히, 그는 중국의 사대부 문인들의 성향을 그대로 답습하는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그의 산문 형식이 항상 꿈속이나 상상 속에 있는 것으로 상황을 제한하는 것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괴리감이 저변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홍길주는 꿈속에서 본 자신의 영상을 글로 기록하는 것을 즐겼는데 정원이나 경관에 대한 성향 역시 상상 속에서 활개를 친다. 그는 《수여방필》에서 꿈에서 막 깨어나는 순간 기억나는 한두 가지를 글로 적곤 하였는데 꿈속에서 종종 시문을 짓곤 한다고 했다. 《숙수념》의 ‘질빙’ 편은 모두 꿈속에서 지은 것이라 밝히고 있다. 

 홍길주의 상상 속 정원에 대한 실체가 담겨있는《숙수념》은 그가 이상적으로 사유하는 사대부문인의 거주환경, 대인법, 예절법, 독서, 물품, 취미와 여행수칙, 학문관, 등을 다양한 필치로 보여준 저작물이다(최원경, 2002:21). 책은 총 16관으로 짜여져 있고 甲에서 癸까지 10념으로 구성되었는데 , 제 1념인 원거념에 이상적 주거공간을 계획하면서 상상 속의 정원을 조성했다. 원거념은 상상속의 주택 및 정원을 형상화하고 그 경관을 독창적인 필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정원은 저택을 중심으로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데 크게 북산일대의 오로원과 저택 주변의 동계, 남강, 서호 일대로 구분된다. 

 홍길주는 ‘원거념’에서 자신이 상상 속에 설계한 저택을 내거와 외거로 구분하고 당시 주변에 ‘오로원’이라는 정원을 조성하게 된다. 이는 경화세족의 주거문화를 일정부분 반영한 것으로 보여 지는데 도성에 가까운 북한산 주변에 승경을 찾아 정원을 꾸미는 당시 상류층의 세태와 유사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당시 홍길주는 종로구 재동에 살았었다고 전한다.
 

상상 속의 오로원 상상 속의 오로원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입지 한 것, 동천(洞天)이라는 명명, 수변과 정자의 조성 등의 패턴은 당시와 동일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정원분야의 사료적 가치도 높다. 《숙수념》 속의 주택 구성은 내사, 외사, 연못의 정자, 공부방, 서재, 그리고 서쪽에 별원 세 개가 있고 남쪽에도 또한 별원이 세 개가 더 있다. 다음으로, 행랑과 창고 등의 집안 부속건물을 서술하고, 여기에 구체적으로 기문을 붙였다. 그가 붙인 기문은 해당공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동쪽 담 밖에 있는 용수원에는 양의를 머무르게 하고 의약재를 두어, 집안사람들과 동네의 가난한 백성들의 병을 치료해 준다. 진체관은 많은 서적을 구비하고 학자들이 저술을 하고 책을 만드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최원경, 2002:11). 그러면 《숙수념》에 기록된 상상 속 정원에 대한 경관묘사부분을 살펴보자.

 

 집의 북쪽에는 북산이 있는데, 그 일대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동산이다(吾老圓記). 근처에 서담폭포와 동담폭포가 있고(西潭詩, 東潭詩), 양 못에는 정자가 있는데, 서쪽에는 장재정, 동쪽에는 소송정이 있다. 그리고 서담에 못 미쳐 기이한 산봉우리가 둘러진 가운데 석벽이 있고, 그 앞에는 작은 동굴이 있어 출입할 수 있다. 그 동굴 앞에는 기묘한 색깔의 돌집이 있으니 이른바 태허부이다. 근처에 높은 돈대를 쌓아 그 위에 올라가 보면, 북산의 일대를 조망할 수가 있다. 동굴 밖에 대나무 숲 안에는 도교사원이 있고 동담에서 흘러나온 물이 큰 시내를 이루니 동계이다. 그 시냇가에 고인처사가 살고 있어, 자주 질빙을 다닌다. 시내의 북쪽에 정자를 하나 짓고, 시내가 서남쪽으로 흘러간 곳은 남강을 이룬다. 강의 북쪽에 한 누각을 세워 항해루라고 이름 붙인다. 이 누각은 내사․외사를 모두 갖추어 때때로 이곳으로 옮겨와 거처할 수도 있다. 집의 서쪽으로 2리쯤에 큰 보가 있어서 저수지를 만들었다. 호수 가에 누각이 있는데 이 역시 내․외사를 모두 갖추고 있다. 호수의 북쪽 북산 끝자락에 오래된 절이 있는데, 절의 누각에 오르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최원경, 2002:12)

 

 홍길주와 그의 형제들은 경관에 관한 인식도 남달라 자연승경에 대한 감상태도 및 인식의 표현에 있어서도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명망 있는 문사들과 교우하고 때로는 형제들과 대담하며, 저작에 대한 논의와 품평을 즐겼다. 아우 현주와 산장 열 곳을 두어 아름다운 화훼와 이름난 나무를 심으려하기도 했다.

 홍길주의 저술에서 보여지는 경관의 아름다움은 중국의 명사들이 수려한 자연경관에 문장을 통해 불어넣었던 의미론적 상징과 접목하면서도 자신의 의도를 반영하여 비로소 심미적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또한 화목과 경관에 관한 높은 안목이 있었음을 그의 저작 곳곳을 통해 짐작 할 수 있고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서 오는 심적 고충을 저작활동을 통해 해소했다. 그가 상상의 공간을 빌려 조성한 정원은 중국의 장취원과는 달리 자연풍경식 정원양식의 한국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생활에서 접하는 산수의 미적 대상을 인식의 사유로 끌어 올려 정원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시킨 것으로 홍길주는 상상 속 정원을 조성한 최고의 정원가라 예찬할 만하다.

 

<참고문헌>

안대회 이현일 편(2017), 한국산문선 신선들의 도서관, 민음사.

최식(2005), 홍길주의 복거와 숙수념. 동방한문학회. 제28권.

최원경(2002), 홍길주의 숙수념에 대한 일고찰, 성균관대 석사논문.

홍형순, 이원호(2006), 19세기 문인 항해(沆瀣) 홍길주의 「숙수념(孰遂念)」에 관한 조경학적 고찰, 한국전통조경학회지. 24(3).



신현실

중국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

(사) 한국전통조경학회 집행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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