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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석의 문화사색] 향나무는 늙지 않는다

입력 : 2018년07월04일 12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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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나 가끔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공기 말고 다른 공기를, 이 하늘 말고 다른 하늘을, 이런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을, 이 세상 말고 딴 세상을 꿈꿀 때가 있다. 특별히 어떤 순간이 닥치면 이런 곳이 사람 사는 세상인가? 땅바닥을 발로 차며 딴 세상으로 넘어가보려고 한다. 이 세상을 넘기만 한다면 낙원일 테니까.  

 

 살다보면 이 세상을 딴 세상이라 여길 때도 있다. 혹시 기쁨에 넘치는 순간이면 지금 들이쉰 숨이 공기가 맞는지, 저기 쪽빛 하늘이 달력에 찍힌 오늘의 하늘이 맞는지 의아할 때도 있다. 어쩌다 사람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이 세상을 동행하는 모든 이들이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을 때도 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기쁜 순간은 곧 낙원일 테니까.

 

 그러고 보면 사람은 이미 살아 있는 동안에 두 개의 낙원을 오가며 살고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딴 세상의 낙원을, 기쁘고 즐거울 때는 이 땅의 낙원을 숨 쉰다. 어쩌면 이 세상과 딴 세상의 공기를 번갈아 숨 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게 아닐까. 가끔씩 가고 싶은 낙원도 있고, 가끔씩 발 디딘 여기를 낙원으로 착각한다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아타나시우스 키르헤르(Athanasius Kircher)의 지상낙원 지도 아타나시우스 키르헤르(Athanasius Kircher)의 지상낙원 지도

 낙원은 “파라다이스”를 번역한 말이다. 파라다이스는 원래 페르시아(Persia)에서 온 말로, “정해진 영역”(pairi-daēza)을 의미했다. 영역(daēza)이란 “딴 세상”을 의미했다고도 한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런 영역을 정해서 동물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정원이나 공원을 조성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파라데이소스(Paradeisos)라 부르면서 “왕의 영역”으로 삼았고, 기독교는 이를 “신의 영역”으로 삼았다. 이런 파라다이스의 원형이 에덴(Eden)이라는 정원이요, 동산이다. 어원으로만 본다면, 페르시아의 사막에 사막이 아닌 특정 영역이 “동물정원”으로, 그리스문화로 와서는 파라데이소스라는 “왕의 영역”으로 승격되었다. 기독교문화에서는 “신의 영역”으로 올라가 에덴동산이 되었다. 결국 사람은 “동물정원” 밖에 살았으니 동물도 아니요, 신과 함께 살던 신의 영역 에덴동산에서도 추방되었으니 천사도 아니다. 사람의 낙원은 어디일까. 

 

 에덴이라는 낙원은 야생의 들판이 아니라, 잘 가꾸어진 정원이었다. 에덴은 동물들의 사파리가 아니라 나무들의 정원이었다. 에덴은 땀 흘릴 일 없는 오로지 기쁨과 환희의 정원이었다. 에덴(Heden)은 말 그대로 기쁨을 의미한다. 기쁨의 한 가운데 “선악의 나무”가 있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지기 이전에 누리던 기쁨이 진정한 기쁨이리라. 아담이 선악의 열매를 깨무는 순간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눈을 뜨게 되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차별하게 되었고, 좋은 것을 가지면 좋았지만, 나쁜 것을 가지면 나빠졌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 웬젤 피터 작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 웬젤 피터 작

 선악의 나무 옆에 또 한 그루의 소중한 나무가 있었다. 그것은 “생명의 나무”였다. 그 열매를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릴 만큼 좋은 것이었으니, 에와가 먼저 노렸을 것이다. 낡지 않는 젊음, 이지러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래서 신은 불칼을 휘두르는 천사들로 하여금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고, 아담과 에와를 낙원에서 추방시켜버렸다. 사람은 기쁨의 정원에서 쫓겨나 고통의 들판으로, 나무의 정원에서 추방되어 동물의 들판으로 방생되었다. 사람들은 서로 이빨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하는 동물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 이래로 사람들은 낙원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힘들 때는 낙원을 그려보고, 너무 기쁜 순간에는 낙원이라 착각하나보다.  

 그러고 보면 낙원에는 다른 소중한 나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낙원이라면 있어야 할 것 같은 그 모든 나무들이 있었으리라. 지혜의 나무, 사랑의 나무, 용기의 나무, 용서의 나무, 환희의 나무, 미안한 나무, 자비의 나무, 이해의 나무, 연민의 나무, 예의의 나무, 공손한 나무, 아름다운 나무, 명상하는 나무, 기도하는 나무, 유유자적하는 나무 등등... 이 모든 나무들이 어울려 싱그럽게 자라고 있다면, 낙원은 아마도 행복의 숲일 것이다. 

 

 나의 망각 속에도 낙원이 있었다. 거기에도 삶의 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졸업하지도 못한 초등학교 동창회에 들른 적이 있다. 그 옛날 그 교정에서 열 길래 더욱 반가웠다. 서로들 만나지 못한 세월이 너무 지나가버렸는지 아는 얼굴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익숙한 몇몇 얼굴도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 분장을 하고 나온 것 같았다. 세월의 분을 찍어 바르고, 세파의 주름살을 그려 넣고... 간혹 나를 알아보는 그들도 나를 늙은이로 보겠지. 그래도 모두들 “옛 모습 그대로”라고 위로하며, 세월 보다 더 깊은 연민을 나눈다. 태어나는 것이 죄지, 늙은 게 죄는 아니라고. 

 푸념들 사이로 향나무 한그루가 다가왔다. 나는 잊어버린 지 오랜 향나무 한그루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백발의 교장 선생님이 오르셔서 말씀을 내리시던 단상, 떠나가는 선생님이 작별을 고하고 새로 오신 선생님이 인사를 하던 운동장의 단상. 그 단상 앞에는 아이들이 줄지어 말씀을 들었고, 단상 옆에는 향나무 한그루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간 곳이 없지만, 향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아이들은 떠나서 시들어버렸지만, 향나무는 그곳에 늙지도 않고 서있다. 오히려 더욱 늠름하다. 세월의 흔적도 세파의 주름도 없이 푸르고 둥그렇게 잘 다듬어져 있다. 진짜 “옛 모습 그대로”다. 다만 싱그럽고 푸르른 잎새들 속으로 옹이진 가지들이 야무지게 얽히고설켜서 안으로 지나간 오랜 시간을 엿보게 할 뿐이다.     향나무 뒤편으로 조금 남은 건물과 교실은 더 작아 보였지만, 향나무는 어릴 때 보던 크기 그대로다. 아마도 내가 자랄 때 향나무도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나의 성장과 나무의 성장은 비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의 삶과 사람의 삶은 비례하기 때문이다. 향나무는 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면서. 

 

 향나무와 나는 다른 곳이지만 같은 시간을 함께 자란 것이 틀림없다. 향나무는 천천히 계절의 은혜를 나이테로 새기면서,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계절을 잊어버린 채로. 그래도 우리는 같은 햇볕을 받으며, 같은 바람을 나누며 자란 것이 틀림없다. 가지 사이로 손을 쑥 넣어보았다. 어릴 때 손을 밀어 넣던 그 높이 그대로다. 그런데 향나무는 지금 운동장에 뛰어 노는 아이들과도 잘 어울린다. 크기뿐만 아니라 싱싱한 빛깔까지도 서로 어우러져 발랄하고 푸르다. 이 아이들이 또다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돌아올 때에도 여전히 푸를 것이라고 장담하는 듯, 향나무는 푸르다. 

 

 단상 옆 향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기억해야 할 아이들도 많아질 것이다. 기억할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전해줄 이야기도 더욱 풍성하게 열릴 것이다. 바람이 바뀌고 해가 바뀔수록 그 이야기들을 나이테에 새길 것이다. 그래서 향이 나는 나무인가 보다. 반백이 되어 돌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도 나이테 깊숙이 향기로 새겨져 있을 것이다. 향나무와 우리는 운명의 동기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향나무에게 물어봐야겠다. 우리들의 인생에도 향기가 나느냐고.

 

신창석 교수 

국가민속문화재 제282호 청송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과 분가 고택 소유자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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