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풍에는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을 복원해 놓은 곳이 있다. 1978년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제천시 청풍면 주변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61개 마을이 수몰되었다. 그러자 충청북도 도청에서는 망월산 기슭 청풍호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수몰지역에 있던 각종 문화재를 한 곳에 모아 청풍문화재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내려다 본 청풍호>

<청풍문화재단지 사진제공=제천문화관광>
청풍문화재단지는 1983년부터 3년 간 수몰 지역에 있던 문화재를 원형 그대로 이전 복원해 놓은 곳이다. ‘작은 민속촌’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에는 보물로 지정된 제천 청풍 한벽루(堤川 淸風 寒碧樓, 보물 제528호)와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堤川 勿台里 石造如來立像, 보물 제546호)을 비롯해 지방유형문화재인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과 생활 유품 2,000여 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제천 청풍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승격하자, 이를 기념해 지은 관아 부속건물이다. 원래 청풍면 읍리에 있던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2층 누각건물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 사방이 난간으로 이루어진 한벽루는 내부에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사진제공=문화재청>
보물인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은 수몰된 청풍면 읍리에서 이전해 왔다. 10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입상은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매우 작아서 우뚝해 보이며 사각형의 얼굴은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 불상은 당당한 어깨, 양감 있는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목의 형식화된 주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신체 등을 볼 때 고려 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제천 청풍 응청각(堤川 淸風 凝淸閣,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은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다. 조선 시대 관아의 누각건물인 응천각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퇴계 이황(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응천각은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놓았으며, 2층 누각은 기둥과 판문을 달고 난간을 둘로 놓았다.

<제천 청풍 금병헌>
그밖에 관아 건물로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인 제천 청풍 금병헌(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과 관아 정문인 제천 청풍 금남루(堤川 淸風 錦南樓,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등과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교육을 담당하던 국립교육기관인 제천 청풍향교(堤川 淸風鄕校,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제천 청풍 팔영루(堤川 淸風 八詠樓,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 등이 있다.
청풍문화단지에는 수몰지역에서 이건해 복원해 놓은 민가도 볼 수 있다.

<제천 도화리 고가 사진제공=제천문화관광>
제천 도화리 고가(堤川 桃花里 古家, 시도유형문화재 제83호)는 제천 도화리에 있던 옛집으로, 지금의 살림채는 ‘ㄷ’자형이나 앞쪽에 건물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바깥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안방과 건넌방을 두었으며, 건넌방 앞으로 부엌과 상방을 덧붙였다. 상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놓아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창 옆의 코쿨(관솔을 지펴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제천 황석리 고가 사진제공=제천문화관광>
제천 황석리 고가(堤川 黃石里 古家, 시도유형문화재 제84호)는 본래 청풍면 황석리에 있던 민가로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앞면 4칸 규모로, 오른쪽 앞에 퇴칸을 두었다. 부엌·안방·웃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안방과 웃방 앞에는 마루를 놓았고, 사랑방 앞에는 마루 없이 옥외 취사공간인 부엌을 두고 머리퇴에 툇마루를 놓아 손님을 맞을 수 있게 하였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이다.

<제천 후산리 고가 사진제공=제천문화관광>
제천 후산리 고가(堤川 後山里 古家, 시도유형문화재 제85호)는 청풍 후산리에 있던 옛집으로, 지금은 ‘ㄱ’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있지만 일반적인 예로 보아 안마당 앞에 사랑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을 따르고 있는 이 집은 안방 뒤에 수납공간인 웃방을 둔 점과 대청 한 구석에 상제례를 위한 상청을 두었다.
제천 지곡리 고가(堤川 池谷里 古家. 시도유형문화재 제89호)는 제천 지곡리에 있는 옛집으로, 안채, 곳간채,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 뒤에 사랑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있으며, 건넌방이 사랑채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부엌 앞에는 고방을 두어 식료품을 저장하는데, 부엌과 고방 사이에는 판자벽을 둘렀다. 문간채 주위에는 담장을 둘러 바깥마당과 구분하고, 대문간에도 담을 설치하여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청풍문화단지가 있는 망월산 정상에는 돌로 쌓은 제천 청풍 망월산성(堤川 淸風 望月山城, 시도기념물 제93호)이 있다. 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망월산성은 둘레가 495m이며, 현재 성벽은 서남면에 너비 16m, 높이 3m와 남쪽에 너비 15m, 높이 4.6m가 완전한 모습으로 잘 남아 있다.

<연자방아>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제천시청
충청북도 제천,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풍에는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을 복원해 놓은 곳이 있다. 1978년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제천시 청풍면 주변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61개 마을이 수몰되었다. 그러자 충청북도 도청에서는 망월산 기슭 청풍호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수몰지역에 있던 각종 문화재를 한 곳에 모아 청풍문화재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내려다 본 청풍호>
<청풍문화재단지 사진제공=제천문화관광>
청풍문화재단지는 1983년부터 3년 간 수몰 지역에 있던 문화재를 원형 그대로 이전 복원해 놓은 곳이다. ‘작은 민속촌’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에는 보물로 지정된 제천 청풍 한벽루(堤川 淸風 寒碧樓, 보물 제528호)와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堤川 勿台里 石造如來立像, 보물 제546호)을 비롯해 지방유형문화재인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과 생활 유품 2,000여 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제천 청풍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승격하자, 이를 기념해 지은 관아 부속건물이다. 원래 청풍면 읍리에 있던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2층 누각건물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 사방이 난간으로 이루어진 한벽루는 내부에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사진제공=문화재청>
보물인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은 수몰된 청풍면 읍리에서 이전해 왔다. 10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입상은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매우 작아서 우뚝해 보이며 사각형의 얼굴은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 불상은 당당한 어깨, 양감 있는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목의 형식화된 주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신체 등을 볼 때 고려 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제천 청풍 응청각(堤川 淸風 凝淸閣, 시도유형문화재 제90호)은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다. 조선 시대 관아의 누각건물인 응천각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퇴계 이황(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응천각은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놓았으며, 2층 누각은 기둥과 판문을 달고 난간을 둘로 놓았다.
<제천 청풍 금병헌>
그밖에 관아 건물로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인 제천 청풍 금병헌(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과 관아 정문인 제천 청풍 금남루(堤川 淸風 錦南樓,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등과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교육을 담당하던 국립교육기관인 제천 청풍향교(堤川 淸風鄕校,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제천 청풍 팔영루(堤川 淸風 八詠樓,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 등이 있다.
청풍문화단지에는 수몰지역에서 이건해 복원해 놓은 민가도 볼 수 있다.
<제천 도화리 고가 사진제공=제천문화관광>
제천 도화리 고가(堤川 桃花里 古家, 시도유형문화재 제83호)는 제천 도화리에 있던 옛집으로, 지금의 살림채는 ‘ㄷ’자형이나 앞쪽에 건물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바깥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안방과 건넌방을 두었으며, 건넌방 앞으로 부엌과 상방을 덧붙였다. 상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놓아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창 옆의 코쿨(관솔을 지펴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제천 황석리 고가 사진제공=제천문화관광>
제천 황석리 고가(堤川 黃石里 古家, 시도유형문화재 제84호)는 본래 청풍면 황석리에 있던 민가로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앞면 4칸 규모로, 오른쪽 앞에 퇴칸을 두었다. 부엌·안방·웃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안방과 웃방 앞에는 마루를 놓았고, 사랑방 앞에는 마루 없이 옥외 취사공간인 부엌을 두고 머리퇴에 툇마루를 놓아 손님을 맞을 수 있게 하였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이다.
<제천 후산리 고가 사진제공=제천문화관광>
제천 후산리 고가(堤川 後山里 古家, 시도유형문화재 제85호)는 청풍 후산리에 있던 옛집으로, 지금은 ‘ㄱ’자 모양의 안채만 남아있지만 일반적인 예로 보아 안마당 앞에 사랑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유형을 따르고 있는 이 집은 안방 뒤에 수납공간인 웃방을 둔 점과 대청 한 구석에 상제례를 위한 상청을 두었다.
제천 지곡리 고가(堤川 池谷里 古家. 시도유형문화재 제89호)는 제천 지곡리에 있는 옛집으로, 안채, 곳간채,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 뒤에 사랑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있으며, 건넌방이 사랑채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부엌 앞에는 고방을 두어 식료품을 저장하는데, 부엌과 고방 사이에는 판자벽을 둘렀다. 문간채 주위에는 담장을 둘러 바깥마당과 구분하고, 대문간에도 담을 설치하여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청풍문화단지가 있는 망월산 정상에는 돌로 쌓은 제천 청풍 망월산성(堤川 淸風 望月山城, 시도기념물 제93호)이 있다. 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망월산성은 둘레가 495m이며, 현재 성벽은 서남면에 너비 16m, 높이 3m와 남쪽에 너비 15m, 높이 4.6m가 완전한 모습으로 잘 남아 있다.
<연자방아>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제천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