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산운(山雲)마을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자리 잡은 전통마을로 마을 북쪽에는 금성산이, 옆으로는 비봉산이 솟아 있는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산운’이란 명칭은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름으로 마을 뒤편의 금성산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산운(山雲)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의성 산운마을 전경>
산운마을은 조선 명종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鶴洞 李光俊, 1531~1609)이 이곳에 입향하면서 영천이씨(永川李氏)의 집성촌이 되었다. 400년간 영천이씨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 모여 사면서 과거시험 급제자와 인재를 다수 배출하여 ‘양반마을’ 혹은 ‘대감마을’로도 불렸다.

<의성 산운마을 전경>
산운마을에서 의성 소우당 고택(義城 素于堂 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37호,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55)을 비롯해 학록정사(鶴麓精舍, 시도유형문화재 제242호),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 시도민속문화재 제165호) 등 1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
산운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의성 소우당 고택은 현 소유자의 6대조인 소우 이가발(素于 李家發)이 19세기 초에 지었다고 전해지는 조선 후기 사대부가 주택이다. 이 고택은 대문채,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며 튼 'ㅁ'자형 살림채, 안사랑채, 별서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1880년대 이장섭(李章燮)이 고쳐지었다고 한다.

<의성 소우당 고택 입구>
'一'자형의 문간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가운데 솟을대문을 두고 양쪽에 광, 문간방, 고방을 두었다.
‘ㄴ'자형의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오른쪽에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을 두었다. 사랑채는 왼쪽부터 사랑마루, 사랑방을 배치하였고, 사랑마루 뒤편으로 연결된 날개채에는 사랑부엌과 작은사랑을 각각 두었다.

<안채 전경>
'ㄱ'자형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5칸 반 규모로 왼쪽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이 이어져 있고, 건넌방 앞쪽으로 연결된 날개채에는 중간방, 마루, 방을 배치하였다. 안채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두었고, 뒤편으로는 쪽마루를 달아내었다.

<별서정원으로 나가는 협문>

<안사랑채인 별당>
안채 서쪽에는 별도의 담장을 두른 별서정원에 안사랑채인 별당이 있다. 별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一'자형 건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을 두었다. 건물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두고, 뒤편과 측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고즈넉한 운치와 사대부가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별서정원은 살림영역과 구분할 수 있도록 담장을 두고 안채와 사랑채에서 출입할 수 있는 협문을 각각 두었다. 이곳은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된 연못과 소나무, 백일홍, 대나무, 편백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심어 놓았다.

<별서정원 사진제공=문화재청>
현재 의성 소우당 고택은 우리 고택의 멋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명품고택과 한옥스테이로 선정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의성 산운(山雲)마을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자리 잡은 전통마을로 마을 북쪽에는 금성산이, 옆으로는 비봉산이 솟아 있는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산운’이란 명칭은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름으로 마을 뒤편의 금성산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산운(山雲)마을’이라 불렀다고 한다.
<의성 산운마을 전경>
산운마을은 조선 명종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鶴洞 李光俊, 1531~1609)이 이곳에 입향하면서 영천이씨(永川李氏)의 집성촌이 되었다. 400년간 영천이씨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 모여 사면서 과거시험 급제자와 인재를 다수 배출하여 ‘양반마을’ 혹은 ‘대감마을’로도 불렸다.
<의성 산운마을 전경>
산운마을에서 의성 소우당 고택(義城 素于堂 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37호,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55)을 비롯해 학록정사(鶴麓精舍, 시도유형문화재 제242호),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 시도민속문화재 제165호) 등 10여 채의 전통가옥이 있다.
산운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의성 소우당 고택은 현 소유자의 6대조인 소우 이가발(素于 李家發)이 19세기 초에 지었다고 전해지는 조선 후기 사대부가 주택이다. 이 고택은 대문채,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며 튼 'ㅁ'자형 살림채, 안사랑채, 별서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1880년대 이장섭(李章燮)이 고쳐지었다고 한다.
<의성 소우당 고택 입구>
'一'자형의 문간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가운데 솟을대문을 두고 양쪽에 광, 문간방, 고방을 두었다.
‘ㄴ'자형의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오른쪽에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을 두었다. 사랑채는 왼쪽부터 사랑마루, 사랑방을 배치하였고, 사랑마루 뒤편으로 연결된 날개채에는 사랑부엌과 작은사랑을 각각 두었다.
<안채 전경>
'ㄱ'자형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5칸 반 규모로 왼쪽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이 이어져 있고, 건넌방 앞쪽으로 연결된 날개채에는 중간방, 마루, 방을 배치하였다. 안채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두었고, 뒤편으로는 쪽마루를 달아내었다.
<별서정원으로 나가는 협문>
<안사랑채인 별당>
안채 서쪽에는 별도의 담장을 두른 별서정원에 안사랑채인 별당이 있다. 별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一'자형 건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을 두었다. 건물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두고, 뒤편과 측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고즈넉한 운치와 사대부가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별서정원은 살림영역과 구분할 수 있도록 담장을 두고 안채와 사랑채에서 출입할 수 있는 협문을 각각 두었다. 이곳은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된 연못과 소나무, 백일홍, 대나무, 편백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심어 놓았다.
<별서정원 사진제공=문화재청>
현재 의성 소우당 고택은 우리 고택의 멋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명품고택과 한옥스테이로 선정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