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宗廟)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과 함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제례 공간으로 조선 시대 역대 왕·왕비·공신 등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유교사당이다.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는 종묘에는 정전(正殿, 국보 제227호),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821호), 전사청, 재실, 향대청, 공신당, 칠사당 등이 있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 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 정전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종묘 정전 신위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선 시대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인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시대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에 착공하여 다음 해인 1395년에 완공을 하고 개성에서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셔와 이곳에 모셨다. 하지만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에 타서 광해군 1년(1608)에 다시 고쳐지었으며, 그 후 영조 와 헌종 때 증축하였다.
<종묘 정전 전경>
우리나라 단일 건물로는 가장 긴 정전은 매 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 19칸, 감실 양 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묘 영녕전 겨울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종묘 내부 가구 사진제공=문화재청>
종묘 정전의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영녕전은 돌아가신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세종 3년(1421)에 새로 지었다. 영녕전 역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1년(1608)에 새로 지었으며 그 후 계속 증축하였다.
<종묘 영녕전>
16칸 규모의 영녕전은 정전과 신실의 구성은 같지만 부재의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전체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매년 춘하추동과 섣달에 종묘에서 국가제사로 종묘제례(宗廟祭禮,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를 지냈으나 현재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을 정하여 종묘제례를 거행하고 있다.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樂)과 노래(歌)·춤(舞)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라 한다.
<종묘제례 사진제공=문화재청>
<헌가 사진제공=문화재청>
500년 이상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종묘제례는 선행절차, 취위(就位, 제사가 시작하기 전에 제관들이 정해진 자리에 배치됨), 영신(迎神, 조상신을 맞이함), 신관례(神관禮, 왕이 제실까지 가서 향을 피워 신을 맞아들임), 진찬(進饌, 음식과 고기를 드림), 초헌례(初獻禮, 초헌관이 술을 올리고 절하며 축문을 읽음), 아헌례(亞獻禮, 신에게 둘째 술잔을 올림), 종헌례(終獻禮, 마지막 술잔을 올림),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음), 철변두(撤변豆, 제상에 놓인 고기나 과일을 거둠), 송신(送神, 조상신을 보냄), 망료(望燎,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움),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된다.
<종묘 정전으로 들어가는 길>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종묘
종묘(宗廟)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과 함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제례 공간으로 조선 시대 역대 왕·왕비·공신 등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유교사당이다.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는 종묘에는 정전(正殿, 국보 제227호),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821호), 전사청, 재실, 향대청, 공신당, 칠사당 등이 있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 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 정전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종묘 정전 신위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선 시대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인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시대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에 착공하여 다음 해인 1395년에 완공을 하고 개성에서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셔와 이곳에 모셨다. 하지만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에 타서 광해군 1년(1608)에 다시 고쳐지었으며, 그 후 영조 와 헌종 때 증축하였다.
<종묘 정전 전경>
우리나라 단일 건물로는 가장 긴 정전은 매 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 19칸, 감실 양 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묘 영녕전 겨울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종묘 내부 가구 사진제공=문화재청>
종묘 정전의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영녕전은 돌아가신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세종 3년(1421)에 새로 지었다. 영녕전 역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1년(1608)에 새로 지었으며 그 후 계속 증축하였다.
<종묘 영녕전>
16칸 규모의 영녕전은 정전과 신실의 구성은 같지만 부재의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전체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매년 춘하추동과 섣달에 종묘에서 국가제사로 종묘제례(宗廟祭禮,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를 지냈으나 현재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을 정하여 종묘제례를 거행하고 있다.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樂)과 노래(歌)·춤(舞)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라 한다.
<종묘제례 사진제공=문화재청>
<헌가 사진제공=문화재청>
500년 이상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종묘제례는 선행절차, 취위(就位, 제사가 시작하기 전에 제관들이 정해진 자리에 배치됨), 영신(迎神, 조상신을 맞이함), 신관례(神관禮, 왕이 제실까지 가서 향을 피워 신을 맞아들임), 진찬(進饌, 음식과 고기를 드림), 초헌례(初獻禮, 초헌관이 술을 올리고 절하며 축문을 읽음), 아헌례(亞獻禮, 신에게 둘째 술잔을 올림), 종헌례(終獻禮, 마지막 술잔을 올림),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음), 철변두(撤변豆, 제상에 놓인 고기나 과일을 거둠), 송신(送神, 조상신을 보냄), 망료(望燎,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움),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된다.
<종묘 정전으로 들어가는 길>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종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