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북한산(北漢山, 837m)’이라고 부르는 북한산은  지형적인 특성으로 일찍부터 국방의 요지가 되었다. 백제는 개루왕 5년(132)에 고구려의 남진을 막고 도성인 위례성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북한산성(北漢山城, 사적 제162호)은 처음 축성하였다. 고려 우왕 13년(1387)에는 거란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을 다시 고쳤으며,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숙종 37년(1711년)에 다시 축조하였다. 


                                                          <북한산성 지형도>


 현재 북한산성은 삼국 시대 처음 축성 당시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조선 시대에 축성된 모습으로, 둘레가 12.7 km에 이르고 내부 면적은 6.2 km²이다. 이 산성에는 대서문(大西門)·동북문(東北門)·북문(北門) 등 14개의 성문이 있었으며, 동장대(東將臺)·남장대(南將臺)·북장대(北將臺)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 안에는 행궁(行宮)과 군창(軍倉)이 있었고, 12개의 사찰도 있었다.


 

                                                         <북한산성 성벽>


 북한산성의 성벽은 평지와 산지 등 지형에 따라 높이를 달리하여 쌓았다. 평탄한 평지부분은 비교적 높게 쌓고 산지의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높이를 낮추거나 자연암반에 그랭이질만 하여 성벽을 쌓았다. 자연암반을 그대로 활용해 성곽을 쌓지 않기도 하였으며, 정상부에는 여장만 설치하기도 하였다. 또한, 성벽은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이중성으로 축성하였다.


                                                         <대동문>


 성문의 구조는 북문(北門)ㆍ대동문(大東門)ㆍ대서문(大西門)ㆍ대성문(大成門)ㆍ중성문(中城門) 등 5개는 홍예식구조로 상부에 누(樓)가 설치되어 있고, 소동문(小東門: 일명 輔國門)ㆍ소남문(小南門: 일명 大南門) 등 9개의 성문은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다. 


                                                         <봉암문>


 장군의 지휘소인 장대(將臺)는 동장대(東將臺), 남장대(南將臺), 북장대(北將臺) 등 3개가 있으며 이중 동장대는 최고 지휘관이 사용하였다.


                                                        <동장대>


 국왕이 거동할 때 머무는 행궁(行宮)은 유사시 국왕의 피난처로 활용하기 위해 숙종 37년 8월에 시작되어 이듬해인 숙종 38년(1712) 5월에 마무리되었다. 완공된 행궁은 내전과 그 부속건물이 63칸, 외전과 그에 딸린 건물이 51칸 하여 거의 120칸에 이르렀다. 현재는 행궁지 터만 남아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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