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 1806?)는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초상화, 산수화, 불교 그림 등 모든 분야의 그림을 잘 그렸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거문고, 당비파 등 연주도 잘하고, 글씨를 잘 쓰는 서예가이기도 하다.
중인 출신의 집안에서 태어난 김홍도는 어린 시절 경기도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20대 초반에 강세황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으며, 29세의 젊은 나이로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뒤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김홍도는 명나라 문인화가 이유방(李流芳)의 호를 따서 자신도 '단원(檀園)'이라고 칭하였으며, 단원화풍으로 원숙기에 접어든 51세에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으로 행차하는 광경을 그린 대작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그렸다.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씨름 사진제공=문화재청>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길쌈 사진제공=문화재청>
단원 김홍도의 대표작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보물 제527호)'은 단원이 그린 풍속화 25점이 들어있는 그림집이다. 이 화첩은 각 장의 크기가 가로 22.4㎝, 세로 26.6㎝ 정도의 그림첩 형태로 종이 바탕에 수묵과 옅은 채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1745∼1816년(영조21년∼순조16년)에 그린 이 풍속도 화첩에는 대부분 소탈한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씨름>, <대장간>, <글방>, <빨래터>, <우물가> 등 서민사회의 일상생활 모습과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표현된 그림들이 실려 있다.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빨래터 사진제공=문화재청>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의 그림과 많이 비교되는 김홍도의 그림은 주변의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을 중심으로 그렸다. 인물에 대한 묘사는 선이 거칠고 굵으며, 힘찬 붓질로 그렸다. 특히 인물은 웃음 띤 둥근 얼굴을 많이 그려 익살스러움을 한층 더하였다.
단원 김홍도는 긍재 김득신(兢齋 金得臣), 혜원 신윤복을 비롯해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 보물로 지정된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이외에도 <삼공불환도>, <기노세련계도>, <마상청앵도>, <풍속도첩> 등이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 후기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 1806?)는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초상화, 산수화, 불교 그림 등 모든 분야의 그림을 잘 그렸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거문고, 당비파 등 연주도 잘하고, 글씨를 잘 쓰는 서예가이기도 하다.
중인 출신의 집안에서 태어난 김홍도는 어린 시절 경기도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20대 초반에 강세황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으며, 29세의 젊은 나이로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뒤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김홍도는 명나라 문인화가 이유방(李流芳)의 호를 따서 자신도 '단원(檀園)'이라고 칭하였으며, 단원화풍으로 원숙기에 접어든 51세에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으로 행차하는 광경을 그린 대작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그렸다.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씨름 사진제공=문화재청>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길쌈 사진제공=문화재청>
단원 김홍도의 대표작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보물 제527호)'은 단원이 그린 풍속화 25점이 들어있는 그림집이다. 이 화첩은 각 장의 크기가 가로 22.4㎝, 세로 26.6㎝ 정도의 그림첩 형태로 종이 바탕에 수묵과 옅은 채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1745∼1816년(영조21년∼순조16년)에 그린 이 풍속도 화첩에는 대부분 소탈한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씨름>, <대장간>, <글방>, <빨래터>, <우물가> 등 서민사회의 일상생활 모습과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표현된 그림들이 실려 있다.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빨래터 사진제공=문화재청>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의 그림과 많이 비교되는 김홍도의 그림은 주변의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을 중심으로 그렸다. 인물에 대한 묘사는 선이 거칠고 굵으며, 힘찬 붓질로 그렸다. 특히 인물은 웃음 띤 둥근 얼굴을 많이 그려 익살스러움을 한층 더하였다.
단원 김홍도는 긍재 김득신(兢齋 金得臣), 혜원 신윤복을 비롯해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 보물로 지정된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이외에도 <삼공불환도>, <기노세련계도>, <마상청앵도>, <풍속도첩> 등이 있다.
자료제공=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