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논산 명재 고택 (論山 明齋 故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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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17세기 조선의 격동기를 보낸 성리학자,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 불리는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 선생. 명재 선생은 아버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선거(尹宣擧, 1610~1669)와 어머니 공주이씨(公州李氏, 1607~1637)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던 명재 선생은 아버지 윤선거가 동문수학하던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 1574~1656),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1606~1672) 등과 자연스레 접촉할 수 있었다. 명재 선생은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朱子)를 배웠고, 28세가 되던 해 김집의 권유로 우암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朱子大全(주자대전)》을 배웠다. 이미 20대 후반부터 명재 선생은 학문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어 수차례 벼슬길에 제수되었지만 모두 사양하고 고결한 선비정신을 실천하면서 평생을 학문과 후학양성에 전념했다. 하지만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상소를 올리는 올곧은 학자이기도 했다. 청빈한 삶을 살았던 명재 선생은 자기 관리뿐만 아니라 집안의 법도에도 철두철미해 후손에게 제사나 가례 등에 검소함을 강조하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여기서 잠시 사제지간이었던 우암 선생과 명재 선생의 관계가 왜 소원하게 되었는지 궁금할 터. 명재 선생은 아버지 윤선거가 돌아가신 후 우암 선생에게 묘갈명(墓碣銘)을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절친한 사이였던 윤선거와 명재 선생이 윤휴(尹?, 1617~1680)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자 이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우암 선생은 묘갈명에 이러한 불편한 심기를 담아 써 보내왔다. 윤휴는 우암 선생과 한때는 서로 절친한 관계였지만 주자학을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혁신적인 면을 보여 우암 선생에게 이단으로 지목받은 사람이었다. 명재 선생은 몇 번에 걸쳐 아버지 묘갈명의 수정을 요구했지만 우암 선생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주자(朱子)를 최고로 여기고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던 우암 송시열 선생과 학문을 숭상하고 이를 실천하던 명재 윤증 선생의 관계는 이렇게 서서히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다. 결국, 조선 후기 학문과 이념의 차이로 생긴 4색당파(노론, 소론, 남인, 북인)로 갈라져 붕당정치를 이루던 시절, 두 사람은 같은 서인이었지만 서로 뜻을 달리하면서 또다시 분당되었다. 명재 선생은 소론의 영수로, 우암 선생은 노론으로 갈라져 스승이었던 우암 선생과 결별하였다.

 

 올 겨울 잦은 눈 소식으로 몇 번의 약속이 어긋났다. 드디어 논산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직접 운전할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겨울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공주에 도착, 그리고 다시 논산 노성까지 30분 정도 소요된다.

 

 논산 명재 고택(論山 明齋 故宅,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은 1709년에 명재 선생의 제자들이 십시일반 힘을 합쳐 스승을 위해 지은 집이다. 하지만 선생은 이 집은 자신에게 너무 과하다며 돌아가실 때까지 살고 있던 집을 떠나지 않았다. 마을 북쪽 야트막한 이산(尼山)자락 고즈넉한 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명재 선생의 정기(精氣)를 받아서일까. 검소하면서도 고고한 기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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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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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교촌리 풍경>

솟을대문도 담장도 없는 집. 집 전체가 멀리서도 훤히 다 보인다. 커다란 방지 연못 뒤로 사랑채를 앞면에 두고 왼쪽에는 문간채, 그 뒤로 안채와 곳간채, 오른쪽 뒷면에 사당이 각기 제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가지런한 장대석으로 쌓아올린 축대 위에 사랑채가 우뚝 서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사랑채는 오른쪽에 대청을 두고 가운데 사랑방이 있고, 그 옆으로 누마루와 중문칸, 작은 사랑방이 연결되어 있다. 감사하게도 방문객에게 사랑채 누마루 오르는 일이 허락된다. 한옥은 집주인의 시각으로 봐야만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법. 사랑채 누마루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고택에서 정점을 이룬다. 어디를 내다보든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다. 누마루 들창을 올리니 사각 프레임 안으로 멀리 계룡산의 산세부터 교촌리 마을 풍경, 바로 앞 연못의 배롱나무까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만약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선비였다면 시 한 수는 절로 나왔을 터.

 

 사랑채에서 꼭 눈여겨 봐야할 또 하나는 큰사랑방에 있는 문이다. 미닫이와 여닫이의 기능을 갖춘 이 문은 양쪽으로 문을 연 후 바깥으로 살짝만 밀면 여닫이문처럼 활짝 열려 공간을 넓게 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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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안채> 

 

 안채는 사랑채 서쪽에 있는 문간채를 통해 들어가면 넓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익랑채를 연결했다. 왼쪽 익랑에는 안방을 가운데 두고 윗방과 부엌을 배치하였고 앞뒤로 툇간을 두고 툇마루를 설치했다. 오른쪽 익랑은 윗방과 건넌방, 부엌을 두고 앞쪽으로 툇마루를 설치해 이동하기 편리하도록 했다. 넓게 앞뒤로 확 트인 대청마루, 후원으로 시원스럽게 난 세 개의 창, 화계단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은 건넌방 앞에 마련된 작은 정원. 사방이 막혀 있는 안채공간이지만 답답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던 여인들을 위한 선조의 작은 배려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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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


<베르누이의 정리를 적용한 공간> 

 

 설명으로만 듣던 ‘베르누이의 정리’를 적용해 놓은 곳을 찾아본다. 공기의 흐름은 넓은 통로를 지날 때는 공기의 속력이 감소해 내부 압력이 높지만 좁은 통로를 지날 때는 공기의 속력이 증가해 내부의 압력은 낮아진다는 과학의 원리를 이용했다. 안채와 곳간채 사이, 바로 이 공간이다. 통로 북쪽은 안채와 곳간채의 처마선이 거의 닿은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지만 남쪽은 안채의 채광에 전혀 방해 안될 만큼 충분한 거리를 두고 두 건물을 배치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배수도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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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들어서면 고택과 함께 가지런히 줄지어 선 장독대가 인상적인 고택, 지금 이곳에는 명재 선생의 13대손인 윤완식(尹完植, 1956년생) 선생이 살고 있다. 무슨 일이 그렇게나 많은지 언제나 공사다망한 선생과 이렇게 마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곳에서 태어난 선생은 상급학교 진학으로 상경했다가 1999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홀로 내려왔다. 처음엔 시골생활이 낯설고 힘들어 적응하기까지 4,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선생은 “이 집은 나한테 족쇄여”하며 호탕하게 웃고 있지만 서로 하나가 된 듯 닮아있다. 현재 선생은 (사)한옥체험업협회 회장직과 (사)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선생은 앞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한옥으로 거듭나고, 한옥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한 몫을 하고 싶다고 하신다.

 

 겨울 해는 짧다. 벌써 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논산, 지명의 유래도 노을이 아름답게 걸쳐있는 산이란다. 노을빛을 머금은 집은 또 다른 모습이다.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집을 나선다. 가슴이 뭉클하다.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곳, 우리 곁에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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