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해 주길"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이끈 장본인 (故) 박병선 박사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말에 국사를 지냈던 백운스님이 선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으로, 현재 세계에 남아 있는 금속활자 인쇄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이다. 이 책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금속활자 본으로 알려졌었다. “종이와 인쇄가 있는 곳에 혁명이 있다”라는 말처럼 세계 인류 문화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 ‘금속활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빛을 잃고 잠자던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 것은 프랑스에 유학하고 있던 한국의 여성이었다. 바로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
박병선 박사는 1928년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태어난 박병선 박사는 진명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국내 민간 여성으로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은 첫 사례였다. 박사는 프랑스에 건너가 소르본 대학과 프랑스 고등 교육원에서 역사학, 종교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 세상에 알려진 동베를린 공작단사건(동백림사건) 이후 프랑스로 귀화하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며 한국 자료 연구에 몰두 했다.
그리고 그 해 수많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품 중 먼지에 쌓여 보관돼 오던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다. 이 후 철저한 고증을 거쳐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 도서 전시회’에 직지심체요절을 출품, 동양학회에서 고증사실을 발표함으로써,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던 ‘구텐베르크 성서(1455년)’보다 78년 빠른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이 사건은 당시 세계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박사의 피나는 노력으로 국제적 공인을 받아 세계 인쇄사에 ‘직지심체요절’을 그리고 ‘한국’을 남기게 된다.
그 뒤 박사는 프랑스 도서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고종3년)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발견하고, 목록을 정리해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박물관에서는 직원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열람을 신청한 박사의 의궤 열람을 계속 거절했지만, 박사는 끈질기게 찾아갔고, 한 달 만에 허가를 받아 냈다.

이 후 한국에서 의궤 반환 운동이 일자 파장을 우려한 도서관 측으로부터 해고도 당했지만 그 뒤로도 10여년 간이나 개인 자격으로 도서관을 찾아 외규장각 의궤의 내용을 정리했고, 의궤 반환의 기틀을 마련해 냈다.
박사는 이 외에도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찾았던 김규식 일행이 머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표방한 건물을 찾아냈고, 2006년에는 1900년 전후 프랑스 문서를 발굴 정리해 <프랑스 소재 한국독립운동자료집 Ⅰ>을 출판했다. 또, 2008년에는 외규장각도서 약탈 과정을 정리한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1권을 출판했다.
“외규장각 의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해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대여’라는 말이 사라질 때까지 모두 합심합시다”
2011년 6월 ‘대여’ 형식이지만, 외규장각 의궤가 한국에 반환됐다. 박사의 평생 노력의 결실이 이루어졌지만, 박사는 ‘대여’라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2011년 11월 22일 오후 10시 40분(현지시간) 파리 시내 병원에서 박병선 박사는 직장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박사는 병석에서도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2권을 준비하고 있었고, 외규장각 의궤 반환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9월 국민훈장 모란장이 수여됐을 때, 병원에서 훈장을 건네받고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도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프랑스로 넘어간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워온 박병선 박사. 죽으면 화장해서 노르망디 해안에 뿌려달라며, 물길을 따라 한국에 오겠다 했던 박사. 프랑스 국적이지만,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립 현충원에 안장돼 꿈에 그리던 조국에서 편안히 쉴 수 있게 됐다.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해 주길"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이끈 장본인 (故) 박병선 박사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말에 국사를 지냈던 백운스님이 선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으로, 현재 세계에 남아 있는 금속활자 인쇄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이다. 이 책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금속활자 본으로 알려졌었다. “종이와 인쇄가 있는 곳에 혁명이 있다”라는 말처럼 세계 인류 문화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 ‘금속활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빛을 잃고 잠자던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 것은 프랑스에 유학하고 있던 한국의 여성이었다. 바로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
박병선 박사는 1928년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태어난 박병선 박사는 진명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국내 민간 여성으로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은 첫 사례였다. 박사는 프랑스에 건너가 소르본 대학과 프랑스 고등 교육원에서 역사학, 종교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 세상에 알려진 동베를린 공작단사건(동백림사건) 이후 프랑스로 귀화하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며 한국 자료 연구에 몰두 했다.
그리고 그 해 수많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품 중 먼지에 쌓여 보관돼 오던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다. 이 후 철저한 고증을 거쳐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 도서 전시회’에 직지심체요절을 출품, 동양학회에서 고증사실을 발표함으로써,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던 ‘구텐베르크 성서(1455년)’보다 78년 빠른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이 사건은 당시 세계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박사의 피나는 노력으로 국제적 공인을 받아 세계 인쇄사에 ‘직지심체요절’을 그리고 ‘한국’을 남기게 된다.
그 뒤 박사는 프랑스 도서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고,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고종3년)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발견하고, 목록을 정리해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박물관에서는 직원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열람을 신청한 박사의 의궤 열람을 계속 거절했지만, 박사는 끈질기게 찾아갔고, 한 달 만에 허가를 받아 냈다.
이 후 한국에서 의궤 반환 운동이 일자 파장을 우려한 도서관 측으로부터 해고도 당했지만 그 뒤로도 10여년 간이나 개인 자격으로 도서관을 찾아 외규장각 의궤의 내용을 정리했고, 의궤 반환의 기틀을 마련해 냈다.
박사는 이 외에도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찾았던 김규식 일행이 머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표방한 건물을 찾아냈고, 2006년에는 1900년 전후 프랑스 문서를 발굴 정리해 <프랑스 소재 한국독립운동자료집 Ⅰ>을 출판했다. 또, 2008년에는 외규장각도서 약탈 과정을 정리한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1권을 출판했다.
“외규장각 의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해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대여’라는 말이 사라질 때까지 모두 합심합시다”
2011년 6월 ‘대여’ 형식이지만, 외규장각 의궤가 한국에 반환됐다. 박사의 평생 노력의 결실이 이루어졌지만, 박사는 ‘대여’라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2011년 11월 22일 오후 10시 40분(현지시간) 파리 시내 병원에서 박병선 박사는 직장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박사는 병석에서도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2권을 준비하고 있었고, 외규장각 의궤 반환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9월 국민훈장 모란장이 수여됐을 때, 병원에서 훈장을 건네받고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도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프랑스로 넘어간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워온 박병선 박사. 죽으면 화장해서 노르망디 해안에 뿌려달라며, 물길을 따라 한국에 오겠다 했던 박사. 프랑스 국적이지만,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립 현충원에 안장돼 꿈에 그리던 조국에서 편안히 쉴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