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김대균 선생>
“줄에 오르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그저 행복합니다”

하늘 아래 높은 곳, 한 가닥 가는 줄 위를 사뿐사뿐 걷고, 뛰고, 날아오르며 신명 나는 줄타기놀음 한판을 벌인다. 줄 위에서 더욱 신명이 나는 줄광대는 하늘을 나는 날렵한 제비 같기도, 우아하게 날갯짓하는 나비 같기도 하다. 과거 우리네 최고의 놀이판이었지만, 서서히 외면받으며 잊혀가던 줄타기. 다행스럽게도 줄타기 광대의 삶을 다룬 영화 <왕의 남자>가 인기를 끌면서 그 존재를 다시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신록 아름다운 5월, 우리나라 유일의 줄타기(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예능 보유자이자 최연소 중요무형문화재인 김대균 선생을 찾았다.
김대균 선생이 맨 처음 줄 위에 오른 것은 어린 나이인 아홉 살 때였다. 경기도 용인의 민속촌에서 일하게 된 아버지 덕에 민속촌을 놀이터 삼아 지내던 중, 당대 최고의 줄광대였던 김영철 선생의 눈에 띄어 입문하게 된 것이다. 줄타기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김영철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위기를 맞게 됐지만, 편찮은 몸을 이끌고 말로써 설명하며 엄하게 지도해준 스승 덕분에 15살 되던 1982년 5월 1일, 선생은 줄광대로서 처음으로 관중 앞에 서게 된다. 선생은 아직도 15살 때 했던 첫 공연을 잊을 수가 없단다.

줄타기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줄 위에서의 ‘기예’뿐 아니라 음악, 소리 등 놀이판에 필요한 모든 것에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한 선생은 마지막 재인청 창우(倡優·광대)였던 이동안 선생에게서 ‘아니리(사설)’를,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인 성유향 선생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그랬기에 김대균 선생은 놀이판에서 단순한 기예가 아닌 43가지의 재주와 함께 소리, 춤, 아니리 등을 두루 섭렵한 ‘줄타기놀음’을 한다.
“날아가는 제비와 같이 가볍게 줄 위에서 돌아간다(走索還同飛燕輕).” 이는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성현(成俔)의 ‘구나시(驅儺詩)’ 중 줄 타는 광대의 모습을 표현한 시구(詩句)로, 여기에선 줄타기 광대를 ‘날아가는 제비’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선생은 피리 명인 김용택 선생이 하신 말씀을 광대를 일컫는 최고의 표현으로 꼽는다.
“백정은 썩은 기둥에서 나오는 노래기고, 광대는 똥에서 나온 파리다. 노래기는 사람 눈에 띄면 밟아 죽이지만, 파리는 임금님 용안에도 앉을 수 있다.”
그 옛날 광대는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이 그랬듯 줄타기놀음판에서는 줄광대가 대장이다. 선생은 이것을 줄타기 광대의 가장 큰 매력이라 했다. 풍자하는 대상의 지위나 신분에 상관없이 줄광대 마음대로 어르고 구슬리며 신명 나게 한판 갖고 놀 수 있는, 놀음판에서만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최고의 대장인 것이다.
선생은 줄타기와 전통 민속 문화의 보존과 전승, 대중화를 위해 1991년 ‘줄타기 보존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이후 사라졌던 줄타기 판줄의 원형도 복원해 사라졌던 줄타기의 명맥을 이어 나간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선생은 주말에는 공연, 평일에는 공부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한 시간을 할애하는 데는 절대 주저하지 않는다.
스승이었던 김영철 선생이 작고한 후 김대균 선생이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 보유자가 없는 상태로 한때 ‘전승 취약 종목’으로 선정될 만큼 잊혀가던 줄타기였지만, 지금은 선생의 사무실이 있는 과천에서 열댓 명의 아이들이 줄타기를 배우고 있단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라며 환하게 웃는 선생의 모습에서 세세연년 이어 나가는 전통 연희 줄타기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김대균 선생>
“줄에 오르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그저 행복합니다”
하늘 아래 높은 곳, 한 가닥 가는 줄 위를 사뿐사뿐 걷고, 뛰고, 날아오르며 신명 나는 줄타기놀음 한판을 벌인다. 줄 위에서 더욱 신명이 나는 줄광대는 하늘을 나는 날렵한 제비 같기도, 우아하게 날갯짓하는 나비 같기도 하다. 과거 우리네 최고의 놀이판이었지만, 서서히 외면받으며 잊혀가던 줄타기. 다행스럽게도 줄타기 광대의 삶을 다룬 영화 <왕의 남자>가 인기를 끌면서 그 존재를 다시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신록 아름다운 5월, 우리나라 유일의 줄타기(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예능 보유자이자 최연소 중요무형문화재인 김대균 선생을 찾았다.
김대균 선생이 맨 처음 줄 위에 오른 것은 어린 나이인 아홉 살 때였다. 경기도 용인의 민속촌에서 일하게 된 아버지 덕에 민속촌을 놀이터 삼아 지내던 중, 당대 최고의 줄광대였던 김영철 선생의 눈에 띄어 입문하게 된 것이다. 줄타기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김영철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위기를 맞게 됐지만, 편찮은 몸을 이끌고 말로써 설명하며 엄하게 지도해준 스승 덕분에 15살 되던 1982년 5월 1일, 선생은 줄광대로서 처음으로 관중 앞에 서게 된다. 선생은 아직도 15살 때 했던 첫 공연을 잊을 수가 없단다.
줄타기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줄 위에서의 ‘기예’뿐 아니라 음악, 소리 등 놀이판에 필요한 모든 것에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한 선생은 마지막 재인청 창우(倡優·광대)였던 이동안 선생에게서 ‘아니리(사설)’를,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인 성유향 선생에게서 소리를 배웠다. 그랬기에 김대균 선생은 놀이판에서 단순한 기예가 아닌 43가지의 재주와 함께 소리, 춤, 아니리 등을 두루 섭렵한 ‘줄타기놀음’을 한다.
“날아가는 제비와 같이 가볍게 줄 위에서 돌아간다(走索還同飛燕輕).” 이는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성현(成俔)의 ‘구나시(驅儺詩)’ 중 줄 타는 광대의 모습을 표현한 시구(詩句)로, 여기에선 줄타기 광대를 ‘날아가는 제비’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선생은 피리 명인 김용택 선생이 하신 말씀을 광대를 일컫는 최고의 표현으로 꼽는다.
“백정은 썩은 기둥에서 나오는 노래기고, 광대는 똥에서 나온 파리다. 노래기는 사람 눈에 띄면 밟아 죽이지만, 파리는 임금님 용안에도 앉을 수 있다.”
그 옛날 광대는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이 그랬듯 줄타기놀음판에서는 줄광대가 대장이다. 선생은 이것을 줄타기 광대의 가장 큰 매력이라 했다. 풍자하는 대상의 지위나 신분에 상관없이 줄광대 마음대로 어르고 구슬리며 신명 나게 한판 갖고 놀 수 있는, 놀음판에서만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최고의 대장인 것이다.
선생은 줄타기와 전통 민속 문화의 보존과 전승, 대중화를 위해 1991년 ‘줄타기 보존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이후 사라졌던 줄타기 판줄의 원형도 복원해 사라졌던 줄타기의 명맥을 이어 나간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선생은 주말에는 공연, 평일에는 공부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한 시간을 할애하는 데는 절대 주저하지 않는다.
스승이었던 김영철 선생이 작고한 후 김대균 선생이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 보유자가 없는 상태로 한때 ‘전승 취약 종목’으로 선정될 만큼 잊혀가던 줄타기였지만, 지금은 선생의 사무실이 있는 과천에서 열댓 명의 아이들이 줄타기를 배우고 있단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라며 환하게 웃는 선생의 모습에서 세세연년 이어 나가는 전통 연희 줄타기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