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봉화 만산 고택 (晩山 古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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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고택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현판에 시선이 머물 때가 많다. 우리 고택의 건물에 붙여진 현판들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집주인의 호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옛날 우리 선조들은 집과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그곳에 사는 주인의 인품이나 사상까지 담아놓았던 것이다.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만산 고택(晩山 古宅,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1호)의 솟을대문 앞에 선다. 1878년(고종 15)에 만산 강용(姜鎔, 1846~1934) 선생이 지은 이 집은 지금까지 5대에 걸쳐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는 생활공간이자, 130년간 그곳에서 살아간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집안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봉화 만산고택을 지은 만산 선생은 아버지 강하규(姜夏奎)와 어머니 안동 권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백부 강한규와 역서 유치유 양 문하에서 수학하고 영릉 참봉, 천릉도감 감조관을 거쳐 통정대부에 올라 당상관인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그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만산 선생은 이곳에서 자연과 친화하면서 자정(自靖)하시겠다는 뜻으로호를 만산에서 정와(靖窩)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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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산>


그 후 만산 선생은 집 옆에 태고정(太古亭)을 짓고 주위의 바위와 소를 만취암(晩翠岩), 세심소(洗心沼)라 이름 붙이고 망미대(望美臺)를 쌓아 망국 노신의 설움을 달랬다. 만산의 이러한 선비 정신을 이어받은 아들들은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독립유공자로 표창을 받았다.

 

  11칸의 긴 행랑채를 마주하고 사랑채가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면서 당당하게 서 있다. 넓은 앞마당에는 정 성 들여 가꾼 화초들이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에서 만산 선생의 4대손이신 강백기(66세) 선생이 반가운 얼굴로 내려오신다. 비 소식으로 약속을 확실하게 잡지도 못했는데, 선생께서는 출타를 미루고 기다리고 계셨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을 가리키며 일일이 설명을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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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호>

晩山’이라 쓰인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작호 한 것으로 친히 편액을 내려보내신 것이라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어 원본을 볼 수 없었지만, 만산 선생과 흥선대원군의 친밀한 관계를 엿볼 수가 있었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 사대부 집의 구조가 잘 나타나 있는 만산 고택은 사랑채 한쪽엔 소박한 서실이, 다른 한쪽엔 담장으로 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별당이 있고, 사랑채 뒤로 안채가 앉아 있다. 사랑채는 5칸의 ‘一’자형 구조로 대청, 사랑방, 마루방, 골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 마당 한쪽에 있는 서실은 마루 한 칸, 방 한 칸으로 아담하게 지었는데 여기에 걸려 있는 현판도 눈여겨볼 만하다. ‘翰墨淸緣’, 한묵청연―종이나 책은 먹과 깨끗한 연분이 있다―이라 씌어 있는 이 현판은 영친왕(이은)이 8세에 쓴 것이라 한다. 
 사랑채 오른쪽으로 돌아 중문을 통과하면 아담한 안채가 나온다. 안채는 작은 마당을 둘러싼 ‘?’자형으로 안방, 상방, 마루방, 광 등이 있다. 안 대청마루 한쪽에는 집안 식구들의 안녕을 비는 성주단지가 있다. 매년 5월 보름이 되면 이곳에서 신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살아가는 성주신에게 정성을 다해 음식을 차려 차사(茶祀)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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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

 

 다시 사랑채 앞마당으로 나와 담장으로 분리된 접빈객을 위한 공간인 칠류헌(七柳軒)으로 오른다. ‘七柳軒’이라 쓴 현판 글씨는 구한말의 오세창 선생의 친필 편액이다. 활짝 들어 올린 문 너머 기둥을 액자 삼아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돌아온다. 아름드리 춘양목으로 지어진 칠류헌의 기둥, 대청마루와 대들보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옛 정취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대청마루에 앉아 보니 과연 소문대로 칠류헌은 만산고택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칠류헌에는 조선 왕조의 국운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만산 선생의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고, 이 집안사람들과 교류했던 구한말 쟁쟁한 문사들이 머물렀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칠류헌 대청마루에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니신 강백기 선생과 마주하고 앉았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만산 선생의 4대손인 강백기 선생은 서울에서 공부를 마치고 이곳으로 내려와 부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집안 곳곳에 야생화로 잘 가꿔진 정원이며 도자기들은 종부 류옥영 여사의 솜씨라고 은근슬쩍 자랑하신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한집안의 종부로, 며느리로 그리고 아내로, 어머니로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생활한 부인 류옥영 여사가 요즘은 도자기 빚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며,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하신다.

 

  봉화 만산 고택은 몇 년 전부터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고택으로 개방하면서 많은 체험객들이 찾아오고 있단다. 강백기 선생은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체험객이나 방문객에게 지역의 역사를 비롯해 이 집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곳에 머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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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역사가 깊은 고택에는 소중한 유물들이 많을 텐데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강백기 선생은 이 집안의 유물들은 국사편찬위원회와 안동 국학진흥원 그리고 연세대 박물관에 분산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기관에서 보관하면 잘 관리해 줄뿐더러 전시도 해서 많은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되물으신다. 강백기 선생께 그동안 고택에서 살면서 느꼈던 어려운 점이나 개선할 점이 있으면 한마디만 더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강백기 선생은 “우리 집이 유명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보니 점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지고 있다. 예의를 잘 지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고택은 주인이 사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사생활은 보호되어야만 한다”라며 기본적인 예의를 잘 지켜달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그동안 문화부나 문화재청, 지자체 담당기관에서 관심을 기울여 보수·관리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앞으로는 우리 한옥을 브랜드화해서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데 더욱 힘써 달라는 당부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강백기 선생은 서울에서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수고했다며 오늘 하루 여기서 머물다 가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신다. 각화산이 보이는 안채의 아담한 방에서 한여름 밤 풀벌레 소리도 들으며. 다음을 기약하며 그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차가 떠나는데도 선생은 그 자리에 서서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인사하게 한다. 긴 세월 집과 함께 살아와서인지 선생의 모습은 집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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