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청도 운강고택 (雲岡 故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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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사랑채>

 

 봄꽃들의 반란이었을까. 예년보다 늦게 꽃망울을 터뜨린 꽃들은 한꺼번에 우루루 피더니만 한꺼번에 후다닥 져버렸다. 올봄 전국 꽃축제장을 그리도 애간장을 태우던 봄날은 그렇게 가버렸다. 점점 짙어져가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날, 경상북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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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고>

  

 청도 운강고택(雲岡故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06호)이 있는 신지리는 운문산과 억산 줄기가 뻗어있고 낙동강의 지류인 동창천이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른다. 낮은 구릉을 이루면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 이곳은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을 만큼 살기에 좋은 곳이다. 당시 ‘섶마을’이라고도 불렀던 신지마을은 1520년(중종15) 조선의 성리학자 소요당 박하담(朴河淡, 1479~1560)이 입향해 터를 잡으면서 밀양 박씨의 집성촌을 이뤘다. 사림파였던 소요당 선생은 무오사화(1498년, 연산군 4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사림파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에게 화를 당한 사건)를 겪은 뒤 중앙의 벼슬을 마다하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이후 후손들의 가산이 점점 늘어나자 후손들은 고택 주변에 집을 지었고, 성경당 박정주(朴廷周, 1789~1850)에 이르러 서당이 있던 터에 살림집을 건축한 것이 운강고택의 시작이다. 1824년(순조24) 운강 박시묵(朴時默, 1814~1875)이 사랑채를 신축하고 안채를 중수하였으며, 별서(別墅)인 만화정(萬和亭)을 세웠다. 그 이후부터 이 고택은 운강고택(雲岡故宅)이라 불리게 되었다. 1905년 청초 박순병(朴淳炳, 1893~1944)이 현재 모습으로 크게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마을로 들어서면 돌담을 사이로 운강고택, 성암고택, 운남고택, 명중고택 등 몇 개의 고택들이 함께 모여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운강고택. 조심스레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운강고택은 5천 800여㎡의 넓은 대지위에 두개의 튼 ‘?'형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넓은 사랑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 중사랑채, 대문채, 고방채가 서로 마주보며 서 있다. 사랑채는 위엄이 서린 바깥주인의 당당한 모습을 닮아 있다. 큼직한 기단석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에 사랑방 뒤로 2칸이 덧붙어 있는 'T'자형 건물로 대청, 사랑방, 집사방, 뒷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녀들의 공간이자 마을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중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ㅡ’자형 건물로 대청, 중사랑방, 서고로 구성되어 있다.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가묘는 중사랑채 후원 뒤편에 대나무 숲을 배경삼아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길, 사랑채와 중문채 사이 기와조각으로 길(吉)자와 꽃무늬를 새겨놓은 벽이 눈길을 끈다. 중문채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건물 앞으로 펼쳐진 넓은 안마당에 다들 한번쯤은 놀라게 된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 중문채, 고방채, 행랑채가 있다. 이 고택에서 가장 큰 건물인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5칸의 ‘ㅡ’자형 건물로 왼쪽부터 부엌, 큰방, 대청, 작은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실 뒤쪽으로 내방, 차방, 찬방, 고방이 달려 있는 남부지방 민가의 형식을 띠고 있다. 중문채는 정면 4.5칸, 측면 1칸으로 창고 3실과 중문이 있다. 고방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창고로 사용하고,. 고방채에 달린 대문은 주로 사랑채를 거치지 않고 외부로 나갈 때 주로 이용했다. 행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왼쪽부터 방앗간, 곳간, 대청, 행랑방,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고, 뒤편에 화장실이 달려 있다. 안채 뒤로 돌아가면 널찍한 후원에 칠성바위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여인네들이 집안의 안녕과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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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정>


 운강고택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 동창천을 끼고 있는 울창한 숲 언덕 위에 운강고택의 별서인 ‘만화정(萬 和亭)’이 자리 잡고 있다. 원래 만화정 터는 소요당 선생이 남명 조식 선생과 삼족당 김대유 선생이 도의지교(道義至交)를 이루었던 곳으로 운강 선생이 1856년 만화정을 건립하여 수학하고 강론하던 곳이다. 주변 바위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은 만화정은 ‘?'자형 누정 건물로 누마루에 오르면 묵객들의 편액들이 가득 걸려 있다. 기둥과 기둥사이 풍경화가 걸린 듯하고, 아름드리 고목들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물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누정은 운강고택과 조금 떨어져 있어 별도의 관리사를 두고 관리하도록 했다. 특히 이곳 만화정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피난민을 격려하기위해 이 지역을 방문하였다가 하루를 묵어간 곳이기도 해 그 의미가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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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정>


<만화정>

 전화 목소리를 통해서는 전혀 연세를 가늠할 수 없었던 운강 선생의 5대손 박성욱 선생(1939년생)은 벌써 오셔서 고택을 둘러보고 계셨다.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25년을 넘게 생활하시다가 대구로 나가 직장생활을 하셨고 지금은 근처 경산에서 살고 계신다. 집안의 종손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너무 멀게는 떠날 수 없었다고 하신다. 고택에서 생활하기 불편해 지금 이곳에서 살지는 못하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들리신다. 선생은 이곳 토박이고, 고향집이기에 형제, 친척, 친구들이 있는 이곳에 오시면 편안하다고 하셨다. 선생께 이 집은 어떤 곳이냐고 여쭈었더니 그저 웃으시며 “특별한 것은 없어요. 이 집은 태어나서 자란 곳, 그저 보통 집처럼 내가 살아온 집인데 뭘…….”이라고.

 

 선생의 설명과 함께 다시 한 번 집안 곳곳을 돌아보는데 갑자기 분주해진다. 군청 담당공무원과 보수공사 업자가 방문을 했다. 중문채 대문이 약간 기울고 있다고 한다. 고택은 늘 그렇듯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써서 관리를 해야만 한다. 선생은 집 주인도 관리를 위해 늘 신경 쓰지만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서 좀 더 관리를 해주고,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수를 해 주었으면 하셨다. 바쁜 시간 내어주신 선생께 인사를 건네고 돌담너머 세월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다른 고택들을 보며 고샅길을 걸어 나오는데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도 이곳엔 옛 모습을 간직한 고택들이 모여 있어 외롭지 않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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