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c63812dc2c38.jpg

<성읍마>


  <성곽에서 내려다 본 성읍민속마을 전경>

 

 짙어지는 녹음 사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초가, 구불구불 돌담 사이로 나 있는 올레. 제주 성읍마을은 오백년의 긴 세월동안 문명의 이기는 비켜나간 듯 제주의 독특한 풍물과 옛 마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188호)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자 마을을 둘러싼 성곽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중산간에 위치한 성읍리는 1400년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제주도가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 3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었을 때 정의현이라 불렸던 곳의 도읍지였다. 도읍지였음을 말해주듯 정의현청이었던 일관헌(日觀軒), 정의향교(旌義鄕校)와 성곽(城)이 잘 복원되어 있으며, 수 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굳건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또한 성문 마다 돌하르방이 4기씩 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비롯해 유?무형문화재가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여유로운 마음으로 마을로 들어간다. 360여 채의 초가와 돌담, 이들과 어우러진 시간의 향기를 머금은 주변 풍경이 방문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제주도의 가옥은 기후와 생활이 육지와 다르기 때문에 그 배치도 다르고, 특이한 점이 많다. 돌담으로 에워싼 제주도의 전통가옥은 ‘외거리집’ ‘두거리집’ ‘세거리집’ 등으로 크게 나눠서 볼 수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모커리(별채) 등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있으며, 안거리와 밖거리에는 저마다 상방(마루), 구들(방), 정지(부엌), 고팡(곳간)이 있다. 안거리와 밖거리에서 부모와 자식 세대는 각각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가옥의 지붕은 논농사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볏집 대신 대부분 '띠'로 지붕을 얽어맨 초가이다. 띠는 밭에서 따로 키워서 지붕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초가처럼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이지 않고 지붕에 띠를 덮고 그 위에 띠줄을 꼬아 그물같이 얽어맨다. 줄로 지붕은 단단하게 동여매는 것은 바람이 많이 것을 이겨내기 위함이다. 가옥의 구조는 대부분 'ㅡ'자형 겹집이고, 'ㄱ'자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부엌이 원래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짓고 방을 따뜻하게 하는 곳이지만 따뜻한 제주에는 밥을 하는 아궁이와 난방을 하는 아궁이가 따로 있으며 굴뚝은 없는 게 특징이다


5c63814606911.jpg

<제주도의 화장실 '통시'>

5c638168a898b.jpg

<제주도의 대문 '정낭'>

 

 성읍마을에는 육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또 있다. 전시용이라 화장실 구실은 못하지만 점차 사라지고 있는 ‘통시’가 그것이다. 까칠까칠한 검은 털의 토종돼지와 돼지우리 겸 화장실인 통시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호기심 가득한 방문객의 발길을 이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제주의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거의 다 사라지고 성읍마을이 고이 간직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문화, ‘정낭’이 있다. 정낭은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긴 나무를 한 개 내지 두세 개를 양 옆 돌기둥의 구멍에 걸쳐 놓아 집에 사람의 유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나무막대가 세 개 다 내려져 있으면 주인이 집에 있음을 뜻하며, 나무 하나를 걸쳐 놓으면 집주인이 잠시 이웃에 갔다 온다는 표시이고, 나무막대 두 개를 걸쳐 놓으면 저녁때쯤 돌아온다는 표시이다. 나무막대 세 개를 모두 걸쳐 놓은 것은 장시간 외출한다는 의미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습이다.

 

 성읍민속마을은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제주도 가옥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5개 가옥이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먼저 조일훈 가옥(중요민속자료 제68호)은 고을 객사와 가깝게 있던 객주집이였다. 조선 후기에 지은 집으로 넓은 터에 안채, 바깥채, 창고, 대문간이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성읍마을 중심에 있는 전형적인 민가이지만 객주집과 농가시설의 일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고평오 가옥(중요민속자료 제69호)은 고을 면사무소 관원들이 숙식을 했던 곳이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이 집은 넓은 터에 안채, 바깥채와 안채와 바깥채 사이에 ‘모커리(수레간과 통나무로 만든 제주 고유의 절구 등을 보관하는 곳)’가 배치되어 있으며, 바깥채에는 제주도의 일반적인 집 구조와는 다르게 방이 두 칸 더 있다.

 이영숙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0호)은 정의향교에 가까이 있으며, 예전에 고을의 여인숙으로 사용하던 집이다. 안채와 헛간채를 둔 단출한 구성의 집으로 안채 부엌 앞에는 물동이를 넣는 물구덕(바구니)을 얹어드는 ‘물팡’이 있다.

 한봉일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1호)은 고을 중심가에서 동쪽에 있는 집으로 조선 후기에 지었다. 대문을 달지 않는 대문간, 안채,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는 제주도 산남 민가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고상은 가옥(중요민속자료 제72호)은 고을에서 대장간으로 사용하던 집이다. 안채와 헛간채로 구성된 단출한 집으로 ‘통시’가 잘 보존되어 있다.


5c63818921887.jpg

<팽나무>


<수 백 년된 팽나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성읍민속마을>

 

 수 백 년 세월 하늘을 향해 이리저리 뻗어난 팽나무와 함께 서로 조화를 이루며 얼기설기 엮어진 야트막한 처마의 초가, 현무암으로 그렁저렁 쌓아올린 해묵은 돌담, 직접 집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약간 휘어진 올래. 바람이 많은 섬에 살았던 옛 제주의 사람들이 살아온 삶이 남아있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읍민속마을은 이제 조금씩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현여송 성읍민 속마을보존회장을 만났다. 현여송 보존회장은 앞으로 제주만이 가지고

5c6381a5d6815.jpg


있는 전통과 문화를 발굴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관광객에 보다 나은 볼거리와 먹거리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민속마을에 비해 조금 늦긴 했지만 마을을 새롭게 정비하기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치단체와 주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함께 퇴락하고 훼손된 가옥을 복원하고 주민생활에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오롯이 남아 있는 이곳만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도록, 그렇게.




 News & Company

법인명 : 주식회사 리몽 | LEEMONG corp.

등록번호 : 강원 아00093 |  발행일자 : 2011. 9. 5

발행인 :  이원석 | 편집인 : 김은미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미 기사배열 책임자 : 이원석

[25464]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강릉선교장

63, Unjeong-gil, Gangneung-si, Gangwon-do,[25464] Republic of Korea

Email : kchnews@naver.com T : 02-733-5270 F : 02-6499-9911

 ⓒ문화유산신문 당사의 기사를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링크, 게재하거나 배포하실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19 KCHN All rights reserved. Hosting &  Powered by Leemong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