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택]영광 연안김씨 종택 (靈光 延安金氏 宗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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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삼효문에서 내려다 본 사랑채>

 

 하늘을 감동시키는 효도가 아니면 효자상을 받기 어려웠던 시절, 한 집안에서 세 사람이나 나라에서 내린 효자상을 받은 집안이 있다. 영광 연안김씨종택(靈光 延安金氏宗宅, 전남 영광군 군남면 동간길 중요민속문화재 제234호)은 매화낙지(梅花落地, 매화꽃이 떨어진 형국의 길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불갑천의 물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마을 고샅물이 안들에서 서로 만나 서쪽으로 흘러나가는 길지에 자리하고 있다. 북향으로 당당하게 앉아있는 종택은 지리적인 측면에서도, 규모면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품격을 갖추고 있다.

 

 영광 연안김씨 직강공파 4대손인 김영(金榮)은 16세기 중엽 영광군수로 부임하는 숙부 김세(金世)를 따라 영광으로 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동간리에는 김영의 셋째 아들인 인택(仁澤)이 정착하여 외간종중(外澗宗中)을 이뤘으며, 현 종택은 직강공파 외간종중 15대손인 김성호(1934년생) 선생이 종부 김소희 여사와 함께 돌보고 있다. 옛날에는 이 자리에 초가 한 채만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김성호 선생의 6대조 할머니와 7대조께서 근검절약해 가세를 일으켜 집을 지었다. 이 종택을 언제 지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안채는 고종 5년(1868년)에 상량한 기록이 남아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안채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불에 타 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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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광주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김성호 선생과 영광에 있는 종택에서 뵙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맛비가 아침이 되니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에 내려오라는 선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단 출발했다. 서울에서 영광까지 4시간, 조금 먼 길을 와서일까 비가 잠시 그쳐준 탓일까. 선생께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며 건물들과 먼저 눈인사를 건넸다. 푹푹 마당에 신발자국을 내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선생부부는 가만히 기다려주신다. 선생께서 삼효문 2층 누각으로 필자를 안내하신다. 마을 전경과 주변 모습, 종택의 건물들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2층 누각으로 된 삼효문은 고종 5년(1868년)에 건립된 것으로 솟을대문 위에 효자각을 올렸다. 
 삼효문의 아랫부분은 둥글게 휘어진 기둥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고, 이층 효자각의 네 귀퉁이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이 형상화된 용두와 구름모양의 공포가 결구되어 있다. 절이나 궁궐이 아니면 함부로 용두를 올릴 수 없었던 시절인데 당시 이 집안의 세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된다. 이 효자각은 김성호 선생의 14대조 김진(金辰, 1599년생), 9대조 김재명(金載明, 1738년생), 8대조 김함(金含, 1760년생) 이 세분의 효성이 지극하다고 정려되어 마을 어귀에 효자각을 지으려 했던 것을 문중회의를 거쳐 대문위에 누각을 짓게 되었다. 내부에는 세분의 정려 편액이 각각 걸려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층은 목재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유리샷시로 막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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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효문>


<삼효문>

  삼효문이 있는 문간채를 들어서면 바로 사랑채 영역이다. 작은 화단을 중심으로 사랑채, 중문간채, 마부간, 서당과 방지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전면에는 梅磵堂(매간당), 益壽濟(익수제), 龜澗濟(구간제)의 3개의 편액이 걸려있다. 김성호 선생은 ‘매간’은 5대조, ‘익수’는 고조, ‘구간’은 증조의 호라고 하신다. 사랑채는 자연석으로 되어 있는 4단의 기단위에 정면 7칸, 측면 3칸의 ‘ㅡ’자형으로 대청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건넌방, 다른 한쪽에는 큰사랑방과 부엌이 있고, 그 앞뒤로 목욕간과 작은방이 있다. 사랑채는 뒷면을 제외하고 툇간을 두르고 있으며, 뒷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특히 복도를 통해 부엌과 연결되어 있는 목욕간과 화장실은 다른 고택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공간이다. 무쇠로 만들어진 목욕통은 아궁이를 통해 물이 데워지면 남자어른부터 차례로 손자까지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고 한다. 김성호 선생께서도 5살 무렵 이곳에서 목욕을 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신다. 근대 시기에 다시 지어서일까. 집안 곳곳에서 가족들을 배려한 합리적인 공간구성이 돋보인다. 큰 연지를 옆으로 두고 있는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ㅡ’자형 건물로 대청을 사이에 두고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역시 후면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툇간으로 둘렀다. 이곳은 선생을 초빙해 집안의 자제나 마을의 학동들을 교육하기도 하는 등 학문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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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안채>

  안채로 들어가는 길은 사랑채에서 중문채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사랑채 뒤로 나 있는 협문을 통해 사랑채 마당을 지나지 않고도 안채로 드나들 수 있다. 안채 영역은 넓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자연석으로 된 5기단 높이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한 안채와 커다란 곳간채, 부속채로 이뤄져 있다. 안채는 ‘ㅡ’ 자형 건물로 정면 2칸, 측면 1칸 반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작은방이 있고 왼쪽으로 큰방과 부엌, 다락이 있으며, 앞쪽으로 모든 공간이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다. 안채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낮게 4칸 규모의 뒤주간과 2칸 반 규모의 창고 건물이 덧붙여져 있으며, 부엌 뒤로는 6칸 크기의 정지간, 찬방, 소금창고로 쓰였던 건물이 덧붙여져 있다. 작은방을 설명해 주시던 설명은 잠시 미소를 띠며 이 방에서 신혼을 보냈다고 하신다. 
 안채 맞은편에 있는 큰 곳간채는 정면 9칸, 측면 2칸 반의 ‘ㅡ’자형 건물로 방앗간, 창고, 행랑간과 창고 뒤편으로 비밀창고가 숨겨 있다. 일제강점기 때 곡식을 공출해가는 것을 대비해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비밀창고는 쌀 100가마니는 족히 들어갈 수 있으며, 한쪽 윗부분은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창살로 지었으며, 겉에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공간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 뒤편 약간 경사진 곳에 사당이 있고, 그 뒤로 높은 둘러진 담장을 끼고 종택의 호지집이 있다. 호지집은 집 밖에 있는 노비집으로 지금은 2채가 남아있다. 몇몇 건물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고 하셨는데도 김성호 선생과 함께 집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5.000㎡의 넓은 대지위에 12채, 125칸의 건물은 80세를 바라보는 노부부가 관리하기엔 너무 벅차고 힘들어 보이지만 주말마다 오셔서 돌봐서인지 구석구석 쓸고 닦은 손길이 느껴진다.

 

 선생은 이 종택에서 태어나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신다. 건물 하나하나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어서인지 집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힘들다기보다는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애착과 이런 집을 남겨주신 조상에 감사한 마음이 앞서기에 재미있게 일을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정정하신 모습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선생은 문화재청이나 자치단체에서 지금도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지만 더 바램이 있다면 최근 들어 고택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이곳을 찾는 관람객이 늘어나면서 고택 규모에 따른 관리인력지원이 꼭 필요하고, 또한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을 마련해 주길 바라고 계셨다.

 

 김성호 선생 부부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아쉬움과 함께 미소가 그려진다. 삼효문을 내려서니 신고 갔던 구두 대신 하얀 고무신이 놓여있다. 비온 뒤 질척해진 마당을 이리저리 피해 다닌 모습을 눈 여겨 보셨던 모양이다. 김소희 여사의 따뜻한 배려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 시원한 대청마루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 오늘도 그런 고택에서의 하룻밤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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