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서귀포 바다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중섭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는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이 가족과 살았던 주거지, 이중섭이 산책하던 산책로, 이중섭을 기념하기 위한 거리, 이중섭공원 등이 있다.
<이중섭 거주지>
서귀포시는 지난 1997년 강한 필치의 소 그림으로 유명한 한국 근대성양화의 대표 화가 이중섭을 기념하기 위해 서귀포에 이중섭거리를 조성하고, 이중섭이 살았던 집을 복원해 2002년 이중섭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이중섭 기념관 뒤편에 세운 이중섭 미술관은 2003년 가나아트갤러리로부터 예순여섯 점(이중섭 화가의 원화 작품 여덟 점을 포함)을 기증받아 2종 미술관으로 등록되었고, 2004년 갤러리현대로부터 54점(이중섭 화가의 원화 작품 한 점을 포함)을 기증받아 1종 미술관으로 등록되기에 이르렀다.
<제주 이중섭 미술관 전경>
돌담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 위의 이중섭 미술관은 연건평 589㎡의 2층 건물로,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기념품 판매코너, 3층 전망대 등이 있다.
<1층 기념품 판매코너>
1층 상설전시실에는 이중섭 화가의 원화작품과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하여 화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있고, 2층 기획전실에는 미술관 소장품과 제주 거주 작가 작품 중심의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3
층 전망대에서는 이중섭 화가의 작품 소재가 되었던 섶섬과 문섬, 새섬 등 아름다운 서귀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귀포 바다>
천재화가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에서 태어나 평양 종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를 나왔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여 재능을 닦은 후 미술창작가 협회상(1940), 미술창작가협회 태양상(1943) 등을 수상하였다. 1945년 일본 유학시절 사귀던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한국이름 이남덕)와 결혼을 하고, 원산 사범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였다. 해방 후 북한에서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제약을 받았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1월경 그는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북한 지역인 원산에서 살다가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중섭 거주지>
제주도에 도착한 이중섭 가족은 송태주 씨 부부가 내 준 작은 방 한 칸에서 살게 되었다. 전쟁 중이라 궁핍한 피난민 생활을 하였지만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중섭은 서귀포에 머물며 많은 명작들을 남기고 1951년 12월 경 부산으로 다시 떠나갔다.
제주도를 떠난 후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자주 대했던 섬·게·물고기·아이들·귤 등이 유화나 담배를 싼 종이에 그린 은지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이중섭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었다. 1953년 통영에 머물며 그의 대표적인 그림의 소재인 ‘소’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그 후 가족과의 단란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혼자 여러 곳을 전전하며 작품활동에 몰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요절하였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자료제공=이중섭미술관 홈페이지>
이중섭의 대표작으로는 <서귀포의 환상>·<섶섬이 보이는 풍경>·<바닷가의 아이들>·<길 떠나는 가족>·<싸우는 소>·<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어린이와 물고기와 게> 등과 다수의 은지화가 있다.
<작가의 산책길>
<주말마다 열리는 장터>
그밖에 이중섭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의 일혼으로 미술작가에게는 편리하고 안정된 작업여건을 제공하고, 지역주민에게는 문화예숭의 향유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만든 창작스토디오와 공예공방이 이중섭거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7-3
* 홈페이지 : http://culture.seogwipo.go.kr/jslee/
* 안내전화 : 064-760-3567
* 관람시간 : 오전9시 ~ 오후6시 (하절기 7월~9월 : 오전9시 ~ 오후8시)
* 관람료 : 어른(25~64세) 1,000 700 / 청소년(13~24세) 500 300 / 어린이(7~12세) 300 200
주 서귀포 바다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중섭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는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이 가족과 살았던 주거지, 이중섭이 산책하던 산책로, 이중섭을 기념하기 위한 거리, 이중섭공원 등이 있다.
<이중섭 거주지>
서귀포시는 지난 1997년 강한 필치의 소 그림으로 유명한 한국 근대성양화의 대표 화가 이중섭을 기념하기 위해 서귀포에 이중섭거리를 조성하고, 이중섭이 살았던 집을 복원해 2002년 이중섭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이중섭 기념관 뒤편에 세운 이중섭 미술관은 2003년 가나아트갤러리로부터 예순여섯 점(이중섭 화가의 원화 작품 여덟 점을 포함)을 기증받아 2종 미술관으로 등록되었고, 2004년 갤러리현대로부터 54점(이중섭 화가의 원화 작품 한 점을 포함)을 기증받아 1종 미술관으로 등록되기에 이르렀다.
<제주 이중섭 미술관 전경>
돌담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 위의 이중섭 미술관은 연건평 589㎡의 2층 건물로,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기념품 판매코너, 3층 전망대 등이 있다.
<1층 기념품 판매코너>
1층 상설전시실에는 이중섭 화가의 원화작품과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하여 화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있고, 2층 기획전실에는 미술관 소장품과 제주 거주 작가 작품 중심의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3
층 전망대에서는 이중섭 화가의 작품 소재가 되었던 섶섬과 문섬, 새섬 등 아름다운 서귀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귀포 바다>
천재화가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에서 태어나 평양 종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를 나왔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여 재능을 닦은 후 미술창작가 협회상(1940), 미술창작가협회 태양상(1943) 등을 수상하였다. 1945년 일본 유학시절 사귀던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한국이름 이남덕)와 결혼을 하고, 원산 사범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였다. 해방 후 북한에서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제약을 받았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1월경 그는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북한 지역인 원산에서 살다가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중섭 거주지>
제주도에 도착한 이중섭 가족은 송태주 씨 부부가 내 준 작은 방 한 칸에서 살게 되었다. 전쟁 중이라 궁핍한 피난민 생활을 하였지만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중섭은 서귀포에 머물며 많은 명작들을 남기고 1951년 12월 경 부산으로 다시 떠나갔다.
제주도를 떠난 후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자주 대했던 섬·게·물고기·아이들·귤 등이 유화나 담배를 싼 종이에 그린 은지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이중섭의 대표적인 소재가 되었다. 1953년 통영에 머물며 그의 대표적인 그림의 소재인 ‘소’가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그 후 가족과의 단란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혼자 여러 곳을 전전하며 작품활동에 몰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요절하였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자료제공=이중섭미술관 홈페이지>
이중섭의 대표작으로는 <서귀포의 환상>·<섶섬이 보이는 풍경>·<바닷가의 아이들>·<길 떠나는 가족>·<싸우는 소>·<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어린이와 물고기와 게> 등과 다수의 은지화가 있다.
<작가의 산책길>
<주말마다 열리는 장터>
그밖에 이중섭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의 일혼으로 미술작가에게는 편리하고 안정된 작업여건을 제공하고, 지역주민에게는 문화예숭의 향유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만든 창작스토디오와 공예공방이 이중섭거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7-3
* 홈페이지 : http://culture.seogwipo.go.kr/jslee/
* 안내전화 : 064-760-3567
* 관람시간 : 오전9시 ~ 오후6시 (하절기 7월~9월 : 오전9시 ~ 오후8시)
* 관람료 : 어른(25~64세) 1,000 700 / 청소년(13~24세) 500 300 / 어린이(7~12세) 300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