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794년에 건설된 헤이안 시대(平安 時代, 794~1192)의 수도로 1천 년 동안 일본의 정치·문화적 중심지였다.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모방해서 건설된 이곳은 목조 건축, 종교 건축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정원 예술은 전 세계의 조원술(造園術)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9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교토는 옛 왕궁인 교토고쇼(京都御所)와 도쿠가와가(德川家)의 재경거관(在京居館)인 니조성(二條城)·가쓰라이궁(桂離宮:別宮)를 비롯해 히가시혼간사(東本願寺)·니시혼간사(西本願寺)·로쿠온지(鹿苑寺)·긴카쿠사(銀閣寺)·난젠사(南禪寺)·도사(東寺)·고류사(廣隆寺)·류안사(龍安寺)·기요미즈사(淸水寺) 헤이안신궁(平安神宮) 등 1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찰과 신사가 2,000여 개가 남아있는 국제적인 관광도시이다.

<기요미즈사, Author.. Vesna Vujicic-Lugassy>
400년 동안 헤이안 경(京)이었던 교토는 동서 4.5km, 남북 5.1km에 이르는 규모로, 귀족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곳에는 왕실사원이었던 교오고코쿠지(敎王護國寺)인 도지(東寺)와 사이지(西寺)를 제외하고, 도시 안에 불교 사원의 건축이 금지되었다. 대형 불교 사찰인 다이고지(醍醐寺)와 닌나지(仁和寺)는 헤이안 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사원이고, 불교 사원인 뵤도인(平等院)과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는 1052년경에 창건되었다.
1185년에 무신 정권인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유물로는 고잔지(高山寺)에 있는 세키스이인(石水院)이 남아있는데 이곳에서 당시의 주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1332년 무로마치(室町) 시대의 유물로는 덴류지(天龍寺)와 같은 임제종(臨濟宗)의 대형 사찰이 있다. 무로마치 막부의 세력이 절정에 달하는 14세기 말에는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쇼군(將軍)이 저택을 짓는데, 이 저택은 나중에 불교 사찰인 로쿠온지(鹿苑寺)가 되었다.

<로쿠온지, Author.. Vesna Vujicic-Lugassy>
금박을 입혀 ‘긴카쿠사(金閣寺)’라고도 불리는 로쿠온지는 3층으로 각층마다 건축양식의 시대가 다르다. 1층은 후지와라기, 2층은 가마쿠라기, 3층은 중국 당나라 양식으로 각 시대의 양식을 독창적으로 절충하였다. 이 건물은 1950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55년 재건되었다.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쇼군은 15세기 중반 더욱 세련된 양식으로 저택을 지었는데, 이 역시 나중에 불교 사찰인 지쇼지(慈照寺)가 되었다. 조원(造園) 양식은 순수 예술로 발전했으며, 료안지(龍安寺) 방장(方丈)의 정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교토는 1467년~1477년에 일어난 오닌(応仁)의 난(亂) 때 거의 대부분 파괴되었다.
157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실권을 잡은 모모야마 시대(桃山時代, 1573~1614)에는 교토 주위에 23km에 이르는 성벽을 쌓고 평화와 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화려하고 자유분방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다이고지(醍醐寺)의 주거 건물인 산보인(三宝院)과 정원, 오사카에서 옮겨온 혼간지(本願寺)의 건축양식에서도 나타난다.

<기요미즈사, Author.. Vesna Vujicic-Lugassy>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통일을 이룬 에도시대(江戶時代, 1615~1867)에 들어서면서 교토는 일본의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에 건립한 니조성(二條城)은 교토 궁궐 수호를 위해 만든 성으로, 동서로 500m, 남북으로 400m 규모의 성벽을 쌓고, 그 둘레에는 해자를 축조하였다. 일본의 다른 성들과 달리 내부가 화려하다. 또한 778년에 창건된 기요미즈사(淸水寺)를 1633년에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재건하였다.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면서 수도와 왕실이 도쿄로 옮겨지면서 교토는 근대화 정책이 채택되어 이로 인해 도시의 대부분의 문화유산들이 방치되었다. 1871년 정부에서 고대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최초의 조례가 발표하고, 1897년에는 고대의 절과 사찰을 보호하는 고사사보존법(古社寺保存法)으로 대체되어 유물 보호정책이 시작되었다.
자료제공= 유네스코와 유산,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1992-2016
교토는 794년에 건설된 헤이안 시대(平安 時代, 794~1192)의 수도로 1천 년 동안 일본의 정치·문화적 중심지였다.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모방해서 건설된 이곳은 목조 건축, 종교 건축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정원 예술은 전 세계의 조원술(造園術)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9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교토는 옛 왕궁인 교토고쇼(京都御所)와 도쿠가와가(德川家)의 재경거관(在京居館)인 니조성(二條城)·가쓰라이궁(桂離宮:別宮)를 비롯해 히가시혼간사(東本願寺)·니시혼간사(西本願寺)·로쿠온지(鹿苑寺)·긴카쿠사(銀閣寺)·난젠사(南禪寺)·도사(東寺)·고류사(廣隆寺)·류안사(龍安寺)·기요미즈사(淸水寺) 헤이안신궁(平安神宮) 등 1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찰과 신사가 2,000여 개가 남아있는 국제적인 관광도시이다.
<기요미즈사, Author.. Vesna Vujicic-Lugassy>
400년 동안 헤이안 경(京)이었던 교토는 동서 4.5km, 남북 5.1km에 이르는 규모로, 귀족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곳에는 왕실사원이었던 교오고코쿠지(敎王護國寺)인 도지(東寺)와 사이지(西寺)를 제외하고, 도시 안에 불교 사원의 건축이 금지되었다. 대형 불교 사찰인 다이고지(醍醐寺)와 닌나지(仁和寺)는 헤이안 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사원이고, 불교 사원인 뵤도인(平等院)과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는 1052년경에 창건되었다.
1185년에 무신 정권인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유물로는 고잔지(高山寺)에 있는 세키스이인(石水院)이 남아있는데 이곳에서 당시의 주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1332년 무로마치(室町) 시대의 유물로는 덴류지(天龍寺)와 같은 임제종(臨濟宗)의 대형 사찰이 있다. 무로마치 막부의 세력이 절정에 달하는 14세기 말에는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쇼군(將軍)이 저택을 짓는데, 이 저택은 나중에 불교 사찰인 로쿠온지(鹿苑寺)가 되었다.
<로쿠온지, Author.. Vesna Vujicic-Lugassy>
금박을 입혀 ‘긴카쿠사(金閣寺)’라고도 불리는 로쿠온지는 3층으로 각층마다 건축양식의 시대가 다르다. 1층은 후지와라기, 2층은 가마쿠라기, 3층은 중국 당나라 양식으로 각 시대의 양식을 독창적으로 절충하였다. 이 건물은 1950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55년 재건되었다.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쇼군은 15세기 중반 더욱 세련된 양식으로 저택을 지었는데, 이 역시 나중에 불교 사찰인 지쇼지(慈照寺)가 되었다. 조원(造園) 양식은 순수 예술로 발전했으며, 료안지(龍安寺) 방장(方丈)의 정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교토는 1467년~1477년에 일어난 오닌(応仁)의 난(亂) 때 거의 대부분 파괴되었다.
157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실권을 잡은 모모야마 시대(桃山時代, 1573~1614)에는 교토 주위에 23km에 이르는 성벽을 쌓고 평화와 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화려하고 자유분방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다이고지(醍醐寺)의 주거 건물인 산보인(三宝院)과 정원, 오사카에서 옮겨온 혼간지(本願寺)의 건축양식에서도 나타난다.
<기요미즈사, Author.. Vesna Vujicic-Lugassy>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통일을 이룬 에도시대(江戶時代, 1615~1867)에 들어서면서 교토는 일본의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에 건립한 니조성(二條城)은 교토 궁궐 수호를 위해 만든 성으로, 동서로 500m, 남북으로 400m 규모의 성벽을 쌓고, 그 둘레에는 해자를 축조하였다. 일본의 다른 성들과 달리 내부가 화려하다. 또한 778년에 창건된 기요미즈사(淸水寺)를 1633년에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재건하였다.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면서 수도와 왕실이 도쿄로 옮겨지면서 교토는 근대화 정책이 채택되어 이로 인해 도시의 대부분의 문화유산들이 방치되었다. 1871년 정부에서 고대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최초의 조례가 발표하고, 1897년에는 고대의 절과 사찰을 보호하는 고사사보존법(古社寺保存法)으로 대체되어 유물 보호정책이 시작되었다.
자료제공= 유네스코와 유산,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1992-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