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이상하다. 꽃만 먼저 피고 불어오는 것은 여전히 겨울바람이다. 못다핀 꽃잎들이 눈발 섞인 바람에 사그라지고 있다. 이상기온 탓만은 아니리라. 북녘 하늘이 요동을 치니, 오던 봄도 편할 수만은 없었으리라. 70년대 봄바람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때는 날씨 탓이 아니었다. 우리 자신이 너무나 헐벗었기에 봄바람도 매섭기 그지없었다. 배고프고 입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봄바람은 소문을 타고 먼저 불어왔다.

 

 아직도 아랫목이 더 좋은 봄날 저녁이라 말똥거리고 누워있으면, 이런저런 마을 소문이 꿈결에 들려왔다. 윗동네 처녀가 봄바람이 났다고. 아랫동네 처녀는 건너 마을 총각하고 같이 봄바람난 모양이라고. 누구는 부르는 배를 더는 못가려서 어쩔 수 없이 바람이 났고, 누구는 동생들 배곯지 않게 하려고 작심하고 나갔단다. 옆집에 알던 누나까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나니, 찾는 이도 더 묻는 이도 없었다. 이런 저런 봄바람 소문이 다 난 다음에야 앞산은 진달래로 붉게 물들었다.

 

 앞집 뒷집 할 것이 대개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듣지도 못한 ‘춘궁기’였으니……. 봄이 와봤자 다 큰 애들을 상급학교 보낼 형편도 아니었고. 시집·장가보낼 형편은 더 더욱 아니었으리라. 그 시절의 큰 형님들과 큰 누님들은 봄바람이라도 나는 것이 자신이 살 길이요, 집을 돕는 것이요, 줄줄이 동생들을 돕는 것이요, 결국에는 ‘잘살아 보자’던 나라를 돕는 일이 되었다. 그 봄바람의 주인공들은 그 때 정말 바람나지 않았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아찔하리라.

 

 각자는 날마다 저마다의 기로에 선다. 서야 할까 가야할까?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이것이 인생이다. 각 시대는 시대마다 다른 바람이 불어와 그 시대의 기로에 선다. 역풍을 갈라야 하나 순풍을 타야 하나? 이것이 먼저인가 저것이 먼저인가? 이것이 문화요, 문화는 늘 봄바람에서 시작한다. 잎이 흔들리면 이미 바람이 불고 있듯이, 시대적 사태가 불거지면, 이미 새로운 문화가 출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의 어원은 라틴어 쿨투스(cultus)다. 쿨투스는 경작하다, 살다를 뜻하는 콜레레(colere)에서 파생한다. 즉 문화(cultus)란 원래 인간이 원시림을 조금씩 밀어내고 경작지를 만들며 살아가는 인간적 삶의 방식을 일컫는다. 그러나 원시림을 밀어낸 자리에서 인간은 곡식만 거두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전통, 학문과 도덕도 함께 가꾸고 거두었다. 그래서 문화는 거대한 그릇이다. 문화는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전통의 물결, 예술의 영감, 학문의 고귀성, 도덕의 품격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릇을 먹는 사람이 없듯이, 문화를 바로 먹는 사람도 없다. 인간은 전통의 물결을 타면서 예술의 영감을 느끼고, 학문의 고귀함을 추구하면서 도덕의 품격을 누리는 삶을 문화의 그릇에 담아낸다. 인간은 문화를 통해 비로소 인간임을 누린다. 그래서 비문화는 원시가 아니라 인간성의 상실을 뜻한다.

 

 인류 최상의 문화를 꽃피운 그리스문화의 대표적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문화 가운데 예술의 힘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예술을 통하여 우리의 청년들은 건강한 땅위의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만물의 선(善)을 인정할 줄 알게 된다. 훌륭한 작품이 주는 아름다움의 영향이란 맑고 신선한 공기를 몰고 와 건강을 주는 바람처럼, 청년들의 눈과 귀에 흘러들어 은연중에 그들로 하여금 정신의 아름다움에 호감과 동경을 갖도록 할 것이다’

 

 그렇다! 문화는 신선한 공기를 몰고 오는 바람이요, 정신의 아름다움을 자각하도록 하는 봄바람이다. 문화는 병들거나 고질화된 체제를 치료할 수 있는 봄바람이다. 문화는 바람이 되어 불어가는 곳마다 향기를 품어내기 때문이다.

 

 북녘에서 몰아친 찬바람 탓이었을까. 올봄의 날씨는 봄 같지 않다. 핵이나 미사일이 오더라도 결국 바람을 타고 오겠지만, 그 해결도 결국은 바람에 달려 있다. 제대로 된 눈을 가져야만 ‘눈에는 눈으로’를 넘어설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이를 가지고 있어야만 ‘이에는 이로’ 대하는 오랜 법칙을 깰 수 있다. 도전과 응전, 위협과 반격이라는 오랜 대결의 구조적 모순을 추월할 수는 있는 제3의 길은 문화의 바람이다. 붓만 든 자는 칼에 맞기 마련이고, 칼만 든 자는 결국 붓 끝에 스러지기 때문이다. 기나긴 겨울을 밀어내고 소리 없이 불어드는 봄바람은 그 누구도, 그 어떤 장막으로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창석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약 력 ◆
중요민속자료 제172호 청송 성천댁 소유자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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