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해경의 특별기고] 우리 주변 꽃과 나무의 숨겨진 이야기, 무궁화



 우리나라가 대한제국이 되자 국가를 표상하는 시각적인 도상은 더욱 중요해졌다. 국내외의 외교적 또는 정치적 관계에서 문서, 국기, 의상 등에 사용되는 도상은 국가의 지향점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대표적 상징도상은 태극(太極), 오얏꽃(李花), 무궁화(槿花), 매(鷹)이다. 

<무궁화 사진제공=김해경>


 오래토록 우리네 삶터에서 무궁화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처음으로 1892년 발간된 주화에서 무궁화 잎과 가지가 등장했다. 잠시 대한제국의 서구식 문관복에 무궁화를 수놓기도 했다. 이랬던 무궁화가 나라꽃을 상징하게 된 배경에는 독립문이 있었다. 독립협회의 조직 목적에는 독립문, 독립관, 독립공원 조성을 당당하게 명시했다. 독립협회 운영은 당시 왕실의 후원금도 있었지만 백성의 모금이 절실했다. 당연히 그들이 진행하는 행사는 백성의 주목을 끌어야 할 당위성이 필요했고, 그 첫 행사는 1896년 11월 21일의 ‘독립문 정초식’이었다.


<1892년 발간된 주화>

<대한제국의 서구식 문관복 사진제공=김해경>


 독립문 정초식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은 신식노래인 ‘무궁화가’였다. 배재학당 선생인 번커가 스코틀랜드 민요인 ‘Auld Lang Syne'에 멜로디를 붙이고 윤치호가 작사를 담당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죠선사람 죠선으로 길이 보죤합세’라는 후렴구는 지금의 애국가까지 맥을 잇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궁화가 예수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윤치호가 남감리교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무궁화를 노랫말에 넣었다는 설도 있다. 


<국토모양으로 자수한 수예품 사진제공=김해경>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게 되자 무궁화는 국토의 상징으로 확장되었다. 1920년에 남궁억은 무궁화 심기운동을 벌였고, ‘무궁화 동산’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당시 여학생들은 무궁화꽃을 국토모양으로 자수한 수예품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무궁화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우리 민족의 꽃, 즉 나라꽃에서 더 나아가 겨레의 꽃으로 각인되었다. 

 

 무궁화는 아욱과로 동아시아 일대가 원산지이다. 인도와 중국에는 자연 상태의 집단 자생지가 있지만 한국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대다수 식물학자들은 귀화식물로 본다. 지금의 우리는 무궁화를 국화로 당연하게 여기지만 1956년 이후의 신문에는 무궁화가 국화로 적당한지에 대한 제법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진딧물이 많고, 꽃은 계속 피지만 하루만에 지고, 꽃 떨어진 모습이 지저분하니 우리 산하에 곱게 피는 진달래를 국화로 하자는 의견이 등장했다.
 

<1964년 2월 12일 경향신문>


 아직도 무궁화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국화로 인식하고 있는 무궁화는 지금까지 실제로 법제화된 것은 아니다. 지난 십여년동안 정치권에서는 무궁화를 법적인 국화로 정하여 관리하자고 주장한다. 그들의 정치 목적을 무궁화에 투영한 것이다. 김슨상 생각은 나라꽃을 꼭 법으로 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한번쯤, 우리에게 왜 국화(國花)가 필요한지는 격렬한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쓴이.. 김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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