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양반
김문준
건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충청도’ 하면 흔히 ‘양반(兩班)’을 떠올린다. 언제부터인가 충청도를 양반의 고장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양반은 일상생활의 수양으로 자신을 절제하고 예의염치를 바탕으로 국가와 지역사회의 지도자로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양반이라고 하면, 말투와 행동이 느릿느릿하고 자기 이익이 첨예하게 달린 문제도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응이나 주장을 잘 하지 않고, 당사자가 아닌 듯 행동하는 태도를 하는 답답한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70~80년대의 급속한 산업사회의 격변 속에서 과거 전통 사회의 양반이 지닌 가치는 나날이 떨어졌으며 양반은 오늘날의 이익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덧붙여졌다.
양반은 물론이고 조선 시대에는 아무에게나 붙일 수 없었던 대단한 존경을 표하던 ‘선생’이란 말도 오늘날에는 ‘김선생’ ‘박선생’이라는 말로 일반 호칭이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양반’도 구한말에 이르러 ‘이 양반’ ‘저 양반’ 이라고 하는 말로 전락해버렸다. 이러니 이제는 ‘양반의 고장’이라고 하면 그다지 그 지역민의 높은 자존감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진정한 양반이란 평생 진리와 절의를 책임지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 충청도는 진정한 양반이며 선생이 될 만한 큰 인물들이 연이어 나온 지역이다. 조선 전기에 성삼문, 박팽년, 조선 후기에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윤증 등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연이어 나왔고, 일제 강점기에는 한용운, 김좌진, 유관순, 윤봉길 등 당대의 한국사를 대표하는 인재들을 대거 배출한 고장이다.
진정한 양반이란 학문을 통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나라와 지역사회에 끊임없이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백성의 생활이 도탄에 빠진 조선 후기에 상하 신분이 존재하던 시절에 지배층 신분을 지칭하는 말이 되고, 학문과 절의와 염치를 의미하는 고귀한 인격이라는 의미가 탈각되었다. 그리하여 요즘에는 양반을 대체하여 선비란 말이 부각되어 학문과 행실이 바른 선비를 존숭하는 말로 쓰고 있다.
고지식하게 반상(班常)의 신분질서를 고집하며 기득권을 누리고 학문이나 국가의 위급한 일에는 꽁무니를 빼는 모리배가 양반일 수는 없다. 진정한 양반은 염치로 자기를 절제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역사적 책임에 인생을 다하는 일을 자기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충청도의 인물들은 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인 기호유학의 본령으로서 강직한 인의의 정신으로 조선 시대 내내 중앙 정계와 학계를 이끌어간 주도자들이었다. 이러한 정신적 역사적 바탕 위에 충청인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가볍게 여기고 진리와 국가의 큰 이익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앞장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호연지기의 고고한 선비 정신을 숭상하고 추구해 왔다. 이러한 정신적 역사적 자원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지적 전통이다.
충청 유학은 기호유학을 대표하는 지역으로서 한국의 정신적 자긍심과 가치를 어느 곳보다 강력하게 지닌 곳이며 이러한 정신적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책임 또한 가벼운 일이 아니다.
안동에서는 ‘퇴계학’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한국 문화를 선양하며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지역 경제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충청도 역시 율곡학이나 사계학을 특징화하여 충청의 기호유학의 의미와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여 한국인의 자부심과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야 할 것이며, 국가적 차원에서 그 가치를 보존하고 되살려 현대적으로 개발하여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이다.
충청도 양반
김문준
건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충청도’ 하면 흔히 ‘양반(兩班)’을 떠올린다. 언제부터인가 충청도를 양반의 고장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양반은 일상생활의 수양으로 자신을 절제하고 예의염치를 바탕으로 국가와 지역사회의 지도자로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양반이라고 하면, 말투와 행동이 느릿느릿하고 자기 이익이 첨예하게 달린 문제도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응이나 주장을 잘 하지 않고, 당사자가 아닌 듯 행동하는 태도를 하는 답답한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70~80년대의 급속한 산업사회의 격변 속에서 과거 전통 사회의 양반이 지닌 가치는 나날이 떨어졌으며 양반은 오늘날의 이익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덧붙여졌다.
양반은 물론이고 조선 시대에는 아무에게나 붙일 수 없었던 대단한 존경을 표하던 ‘선생’이란 말도 오늘날에는 ‘김선생’ ‘박선생’이라는 말로 일반 호칭이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양반’도 구한말에 이르러 ‘이 양반’ ‘저 양반’ 이라고 하는 말로 전락해버렸다. 이러니 이제는 ‘양반의 고장’이라고 하면 그다지 그 지역민의 높은 자존감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진정한 양반이란 평생 진리와 절의를 책임지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 충청도는 진정한 양반이며 선생이 될 만한 큰 인물들이 연이어 나온 지역이다. 조선 전기에 성삼문, 박팽년, 조선 후기에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윤증 등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들이 연이어 나왔고, 일제 강점기에는 한용운, 김좌진, 유관순, 윤봉길 등 당대의 한국사를 대표하는 인재들을 대거 배출한 고장이다.
진정한 양반이란 학문을 통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나라와 지역사회에 끊임없이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백성의 생활이 도탄에 빠진 조선 후기에 상하 신분이 존재하던 시절에 지배층 신분을 지칭하는 말이 되고, 학문과 절의와 염치를 의미하는 고귀한 인격이라는 의미가 탈각되었다. 그리하여 요즘에는 양반을 대체하여 선비란 말이 부각되어 학문과 행실이 바른 선비를 존숭하는 말로 쓰고 있다.
고지식하게 반상(班常)의 신분질서를 고집하며 기득권을 누리고 학문이나 국가의 위급한 일에는 꽁무니를 빼는 모리배가 양반일 수는 없다. 진정한 양반은 염치로 자기를 절제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역사적 책임에 인생을 다하는 일을 자기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충청도의 인물들은 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인 기호유학의 본령으로서 강직한 인의의 정신으로 조선 시대 내내 중앙 정계와 학계를 이끌어간 주도자들이었다. 이러한 정신적 역사적 바탕 위에 충청인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가볍게 여기고 진리와 국가의 큰 이익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앞장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호연지기의 고고한 선비 정신을 숭상하고 추구해 왔다. 이러한 정신적 역사적 자원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지적 전통이다.
충청 유학은 기호유학을 대표하는 지역으로서 한국의 정신적 자긍심과 가치를 어느 곳보다 강력하게 지닌 곳이며 이러한 정신적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책임 또한 가벼운 일이 아니다.
안동에서는 ‘퇴계학’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한국 문화를 선양하며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지역 경제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충청도 역시 율곡학이나 사계학을 특징화하여 충청의 기호유학의 의미와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여 한국인의 자부심과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야 할 것이며, 국가적 차원에서 그 가치를 보존하고 되살려 현대적으로 개발하여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