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여개가 넘는 붓통, 일명 필통이란 것들을 모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것들이 어느덧 문화재급이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생김새가 모두 각각 달라 똑같은 것이 없습니다. 필통이란 것이 거기서 거기겠거니 생각이 들지만, 재질이나 모양이 사람살이처럼 모두 제각각입니다.
재료가 나무이거나 점토, 단단한 돌 등이고, 그 형태가 흥미진진합니다. 구경을 온 사람들은 “어허, 흙으로 저렇게 만들어냈구나…” “어머나, 저것은 한복 저고리를 응용한 필통이네” “저것은 책등피를 이용했고, 또 요것은 청바지를 입은 형태네…” 라며 놀라워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매우 흥미로워합니다. 그러니까 흥미와 호기심은 창의성을 살려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박물관은 미술관이나 과학관, 문학의 집 등으로 그 기능이 전문화·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박물관이 물건을 전시하는 것으로만 여겨졌지만 오늘에는 체험이나 교육 및 참여하는 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문인들의 인장만이 아니라 200여개나 되는 필통들은 그냥 ‘보여주기’로서의 필통들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인들이 책상머리에서 필기구를 꽂아 놓았던 손 때 묻은 문화재들입니다. 이 유물은 단지 유물이란 차원을 넘어 작가들의 ‘분신’이기도 합니다.
소설가 김동리, 시조시인 김상옥, 여류 수필가 조경희, 농민소설가 이동희, 김현탁, 노장사상의 시인 박제천 등 한국 근현대 문학인들이 사용하던 것들이니, 이제는 시대를 뛰어 넘은 유물입니다. 때로는 값으로 이것들을 흥정해 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을 정도입니다.
나는 이러한 흥정꾼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분들도 이 유물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셈이며, 그것도 흥미의 한 분야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재라는 것은 돈으로만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누가 가지고 있고, 그것의 경제적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건 그것이 보존되고 있다면, 그것은 넓은 의미의 국민 전체의 재산이고, 더구나 그것들이 박물관에서 소장되고 전시되고 있다면 누구나 그것을 관람하고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려청자라든가 조선 백자 등 유물이 아주 희귀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의 가치가 가격으로 얼마인가에 따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유물이란 가깝게 누군가의 소지품과 그 시대의 정신과 정서를 담아내던 물건은 모두 유물인데도 그런 것을 소홀히 하여 내버리고, 박물관이나 각종 매체에서 귀하다고 해야만 인정하는 습관도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쓰던 고리짝이나, 할아버지들의 곰방대도 이미 훌륭한 유물이 되었으며, 선비들의 유품이나 농사에 쓰이던 물건들을 수집 전시하는 박물관도 국내에 여럿 됩니다. 심지어는 1950년대 물품은 물론이거니와 1970~80년대 물건들을 전시하는 박물관도 이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도 교육 기능을 담당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물건에는 기이한 향취가 담겨 있고, 다른 물건들에는 없는 특별하고도 기이한 ‘기운(aura)’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골동품의 아우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물건들은 지금 당장에는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을 모아 2~3세대만 흘러가도 꽤 값어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살이가 그것을 모아서 보관하기 쉽지 않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수십년간 필통들을 모아 작은 전시관 별실을 꾸미고 그곳에 필통들을 전시해두었습니다.
장소도 협소하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도 없이 관람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산촌에 위치한 우리 박물관을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우리 전시품들을 보면서 지난 유물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제가 자랄 때, 제 머리맡 연상 위에는 대포알 껍데기로 만든 필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필통은 한국 전쟁과 같은 참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은 필통이었는데, 그것을 끝내 보관하지 못하고 분실했습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물건들의 주기도 짧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의 물건들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고, 그것을 모아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이러한 때에 새 물건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용품 속에서도 유물의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곧 서리가 내리면, 한 해가 곧 또 저물 것입니다. 이렇게 해가 가고 또 오는 우리네 살이 속에서, 지난 것들을 기억하고, 후세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재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나는 200여개가 넘는 붓통, 일명 필통이란 것들을 모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것들이 어느덧 문화재급이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생김새가 모두 각각 달라 똑같은 것이 없습니다. 필통이란 것이 거기서 거기겠거니 생각이 들지만, 재질이나 모양이 사람살이처럼 모두 제각각입니다.
재료가 나무이거나 점토, 단단한 돌 등이고, 그 형태가 흥미진진합니다. 구경을 온 사람들은 “어허, 흙으로 저렇게 만들어냈구나…” “어머나, 저것은 한복 저고리를 응용한 필통이네” “저것은 책등피를 이용했고, 또 요것은 청바지를 입은 형태네…” 라며 놀라워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매우 흥미로워합니다. 그러니까 흥미와 호기심은 창의성을 살려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박물관은 미술관이나 과학관, 문학의 집 등으로 그 기능이 전문화·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박물관이 물건을 전시하는 것으로만 여겨졌지만 오늘에는 체험이나 교육 및 참여하는 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문인들의 인장만이 아니라 200여개나 되는 필통들은 그냥 ‘보여주기’로서의 필통들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인들이 책상머리에서 필기구를 꽂아 놓았던 손 때 묻은 문화재들입니다. 이 유물은 단지 유물이란 차원을 넘어 작가들의 ‘분신’이기도 합니다.
소설가 김동리, 시조시인 김상옥, 여류 수필가 조경희, 농민소설가 이동희, 김현탁, 노장사상의 시인 박제천 등 한국 근현대 문학인들이 사용하던 것들이니, 이제는 시대를 뛰어 넘은 유물입니다. 때로는 값으로 이것들을 흥정해 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을 정도입니다.
나는 이러한 흥정꾼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분들도 이 유물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셈이며, 그것도 흥미의 한 분야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재라는 것은 돈으로만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누가 가지고 있고, 그것의 경제적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건 그것이 보존되고 있다면, 그것은 넓은 의미의 국민 전체의 재산이고, 더구나 그것들이 박물관에서 소장되고 전시되고 있다면 누구나 그것을 관람하고 감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려청자라든가 조선 백자 등 유물이 아주 희귀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의 가치가 가격으로 얼마인가에 따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유물이란 가깝게 누군가의 소지품과 그 시대의 정신과 정서를 담아내던 물건은 모두 유물인데도 그런 것을 소홀히 하여 내버리고, 박물관이나 각종 매체에서 귀하다고 해야만 인정하는 습관도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쓰던 고리짝이나, 할아버지들의 곰방대도 이미 훌륭한 유물이 되었으며, 선비들의 유품이나 농사에 쓰이던 물건들을 수집 전시하는 박물관도 국내에 여럿 됩니다. 심지어는 1950년대 물품은 물론이거니와 1970~80년대 물건들을 전시하는 박물관도 이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도 교육 기능을 담당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물건에는 기이한 향취가 담겨 있고, 다른 물건들에는 없는 특별하고도 기이한 ‘기운(aura)’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골동품의 아우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물건들은 지금 당장에는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을 모아 2~3세대만 흘러가도 꽤 값어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살이가 그것을 모아서 보관하기 쉽지 않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수십년간 필통들을 모아 작은 전시관 별실을 꾸미고 그곳에 필통들을 전시해두었습니다.
장소도 협소하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도 없이 관람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산촌에 위치한 우리 박물관을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우리 전시품들을 보면서 지난 유물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제가 자랄 때, 제 머리맡 연상 위에는 대포알 껍데기로 만든 필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필통은 한국 전쟁과 같은 참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은 필통이었는데, 그것을 끝내 보관하지 못하고 분실했습니다.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물건들의 주기도 짧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의 물건들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고, 그것을 모아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이러한 때에 새 물건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용품 속에서도 유물의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곧 서리가 내리면, 한 해가 곧 또 저물 것입니다. 이렇게 해가 가고 또 오는 우리네 살이 속에서, 지난 것들을 기억하고, 후세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재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