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멈추었던 하늘이 일렁거리고, 햇살에 차렷 해 있던 들판이 일제히 쑤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드문 가뭄 끝에 흠뻑 내렸다. 목동이 양떼를 몰아오듯, 바람이 비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왔다. 방울방울 앞서거니 뒷서거니 내려왔다. 풀 뜯는 양떼마냥, 그러나 바쁠 것도 없이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굴러 내렸다.
비는 지나가고 바람만 남아 산에서 들로, 들에서 산으로 서성거린다. 그래서 산들산들, 산들바람인가 보다. 바람 한 올을 목덜미에 두르고, 바람의 길을 걸어본다. 마음을 온전히 놓기 위해 바람에 몸을 맡기는지, 바람에 몸을 맡기니 마음이 온전히 놓이는지...
바람결을 타고 가면 바람보다 더 빨리 가지도, 더 멀리 가지도 못한다. 하지만 요즘 나의 상념은 바람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옛날로 돌아가버리곤 한다. 어릴 적에는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었다. 손가락에 침을 흠뻑 발라 머리 위로 곧추세운다. 차가운 쪽이 바람이 오는 방향이다. 그곳을 알아내도 그냥 그만이다. 괜스레 물어본 것이다. 이 바람은 어디서 올까? 바람은 왜 불까?
바람이 마냥 헛되이 부는 것만은 아니었다. 자연에 헛된 것은 없다니까. 할머니는 마당에 찾아오는 바람에 때맞춰 멍석을 펴고, 알곡 갈무리하는 일을 하시곤 했다. 갈무리해야 하는 가을이니까. 타작한 수수나 콩을 한 바가지씩 떠서 눈높이 정도로 올려 바람에 태운다. 그러면 하늬바람이 알아서 갈라놓는다. 쭉정이는 멀리 보내고, 알곡은 가까이 놓는다. 그러면 쭉정이는 소여물통에 담고, 알곡은 항아리에 담으면 된다. 바람은 어디에도 담을 수 없다. 떠나던 바람이 말했다. 텅 빈 것은 멀리, 알찬 것은 가까이. 가벼운 것은 멀리, 무거운 것은 가까이. 비천한 것은 멀리, 고귀한 것은 가까이, 나쁜 것은 멀리, 좋은 것은 가까이. 악은 멀리, 선은 가까이. 바람의 길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바람 자신은 잘못 불지도 않고 잘 불지도 않는다. 좋은 바람도 없고 나쁜 바람도 없다. 갈바람은 선과 악의 저편에서 다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줄 뿐이다.

이번엔 바람이 단비를 데려 왔지만, 다음엔 태풍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바람은 그냥 불어오고 불어갈 뿐이다. 오늘은 순풍이 불고, 내일은 역풍이 불지도 모른다. 그래도 바람은 그냥 불어갈 뿐이다. 다만 사람이 가는 길로 불면 순풍이라 부르고, 반대로 불면 역풍이라 부를 뿐이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바람에게 물어보았나 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바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돛대를 다르게 맞출 수는 있다.”
그러니 순풍과 역풍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줄기 같은 바람에 순하게 가는 사람이 있고 역으로 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각자가 나서는 방향에 따라 순풍도 만나고 역풍도 만나는 것이다. 바람이 아니라 각자 사는 길이 순방향일 때도 있고, 역방향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바람을 탓하지는 말아야지.
그래도 바람은 어디서 올까? 바람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숨결이요, 향기요 그리고 결국엔 들이쉬고 내쉰 흔적의 계단이요, 우연의 다발이다. 지금 살아있는 것들은 먼저 죽은 것들이 내쉰 그 바람을 가르며 다닌다. 바쁘게 또는 느리게, 잰걸음으로 또는 양반걸음으로, 도망 다니듯 또는 어슬렁거리며 자신의 길을 간다. 살아 숨 쉬는 것이 존재하는 한, 그 숨결이 모인 바람도 끝없이 불어간다. 그러나 바람이 되는 모든 숨결에는 마지막이 있다. 날숨이 바람 되어 더 이상 들숨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것이 마지막 숨결이다. 그러나 바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 일 없는 듯 바람의 길을 갈 것이다. 바람을 만든 모든 것들이 숨결을 멈출지라도, 그들이 만들었던 바람은 여기저기 손을 내밀며, 이리저리 찾아다닐 것이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식어버린 찻잔에 적신 손가락을 하늘로 곧추세워본다. 서늘한 습기를 담은 남동풍이다. 내가 가는 길은 순풍일까, 역풍일까? 그러나 문득 한마디가 뒤통수를 때린다. “아직 돌아가야 할 항구를 찾지 못한 배라면, 순풍이 무슨 소용일까?”

신창석 교수
국가민속문화재 제282호 청송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과 분가 고택 소유자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딱 멈추었던 하늘이 일렁거리고, 햇살에 차렷 해 있던 들판이 일제히 쑤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드문 가뭄 끝에 흠뻑 내렸다. 목동이 양떼를 몰아오듯, 바람이 비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왔다. 방울방울 앞서거니 뒷서거니 내려왔다. 풀 뜯는 양떼마냥, 그러나 바쁠 것도 없이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굴러 내렸다.
비는 지나가고 바람만 남아 산에서 들로, 들에서 산으로 서성거린다. 그래서 산들산들, 산들바람인가 보다. 바람 한 올을 목덜미에 두르고, 바람의 길을 걸어본다. 마음을 온전히 놓기 위해 바람에 몸을 맡기는지, 바람에 몸을 맡기니 마음이 온전히 놓이는지...
바람결을 타고 가면 바람보다 더 빨리 가지도, 더 멀리 가지도 못한다. 하지만 요즘 나의 상념은 바람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옛날로 돌아가버리곤 한다. 어릴 적에는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었다. 손가락에 침을 흠뻑 발라 머리 위로 곧추세운다. 차가운 쪽이 바람이 오는 방향이다. 그곳을 알아내도 그냥 그만이다. 괜스레 물어본 것이다. 이 바람은 어디서 올까? 바람은 왜 불까?
바람이 마냥 헛되이 부는 것만은 아니었다. 자연에 헛된 것은 없다니까. 할머니는 마당에 찾아오는 바람에 때맞춰 멍석을 펴고, 알곡 갈무리하는 일을 하시곤 했다. 갈무리해야 하는 가을이니까. 타작한 수수나 콩을 한 바가지씩 떠서 눈높이 정도로 올려 바람에 태운다. 그러면 하늬바람이 알아서 갈라놓는다. 쭉정이는 멀리 보내고, 알곡은 가까이 놓는다. 그러면 쭉정이는 소여물통에 담고, 알곡은 항아리에 담으면 된다. 바람은 어디에도 담을 수 없다. 떠나던 바람이 말했다. 텅 빈 것은 멀리, 알찬 것은 가까이. 가벼운 것은 멀리, 무거운 것은 가까이. 비천한 것은 멀리, 고귀한 것은 가까이, 나쁜 것은 멀리, 좋은 것은 가까이. 악은 멀리, 선은 가까이. 바람의 길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바람 자신은 잘못 불지도 않고 잘 불지도 않는다. 좋은 바람도 없고 나쁜 바람도 없다. 갈바람은 선과 악의 저편에서 다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줄 뿐이다.
이번엔 바람이 단비를 데려 왔지만, 다음엔 태풍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바람은 그냥 불어오고 불어갈 뿐이다. 오늘은 순풍이 불고, 내일은 역풍이 불지도 모른다. 그래도 바람은 그냥 불어갈 뿐이다. 다만 사람이 가는 길로 불면 순풍이라 부르고, 반대로 불면 역풍이라 부를 뿐이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바람에게 물어보았나 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바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돛대를 다르게 맞출 수는 있다.”
그러니 순풍과 역풍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줄기 같은 바람에 순하게 가는 사람이 있고 역으로 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각자가 나서는 방향에 따라 순풍도 만나고 역풍도 만나는 것이다. 바람이 아니라 각자 사는 길이 순방향일 때도 있고, 역방향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바람을 탓하지는 말아야지.
그래도 바람은 어디서 올까? 바람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숨결이요, 향기요 그리고 결국엔 들이쉬고 내쉰 흔적의 계단이요, 우연의 다발이다. 지금 살아있는 것들은 먼저 죽은 것들이 내쉰 그 바람을 가르며 다닌다. 바쁘게 또는 느리게, 잰걸음으로 또는 양반걸음으로, 도망 다니듯 또는 어슬렁거리며 자신의 길을 간다. 살아 숨 쉬는 것이 존재하는 한, 그 숨결이 모인 바람도 끝없이 불어간다. 그러나 바람이 되는 모든 숨결에는 마지막이 있다. 날숨이 바람 되어 더 이상 들숨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것이 마지막 숨결이다. 그러나 바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 일 없는 듯 바람의 길을 갈 것이다. 바람을 만든 모든 것들이 숨결을 멈출지라도, 그들이 만들었던 바람은 여기저기 손을 내밀며, 이리저리 찾아다닐 것이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식어버린 찻잔에 적신 손가락을 하늘로 곧추세워본다. 서늘한 습기를 담은 남동풍이다. 내가 가는 길은 순풍일까, 역풍일까? 그러나 문득 한마디가 뒤통수를 때린다. “아직 돌아가야 할 항구를 찾지 못한 배라면, 순풍이 무슨 소용일까?”
신창석 교수
국가민속문화재 제282호 청송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과 분가 고택 소유자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