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해경의 특별기고] 그 때 그 시절, 직지사 대웅전 현판과 독립문 글씨를 이완용이 썼다는데



이완용이 1926년 사망하자 비서관이었던 김명수는 《일당기사(一堂紀事)》라는 그의 자서전을 발간한다. 746쪽을 보면 “1923년 1월11일 김천군(현재 김천시) 직지사에 2종의 편액을 써서 보내다. 직지사의 대웅전 및 천왕문의 판액이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동아일보 1926년 9월 12일 기사에 실린 직지사 대웅전 현판 사진이 현재와 거의 동일하여 이를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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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대웅전 사진제공=김해경>


 직지사 대웅전 현판 글씨는 2008년 보물 지정이 예정되자 이를 거론하는 작은 논쟁이 있었다. 어느 전문가는 우리나라 보물에 친일파 글씨가 있으니 교체해야 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건물과 현판이 무슨 상관이냐 라는 의견이었다. 결국 대웅전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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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대웅전 사진제공=김해경>

 우리나라 독립 상징물로 축조된 독립문의 글씨도 이완용이라고 동아일보 1924년 7월 15일 ‘내동리 명물’에 등장한다. 이또한 의견이 분분하다. 누구는 굳이 이완용글씨가 아니라고 반박을 하고, 또 누구는 단 한줄의 신문기사라도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지고 보면 독립문을 세울 당시 이완용은 ‘독립협회’의 회장단이었고, 독립협회 기금 모금 시 많은 돈을 기부했다. 독립관 현판은 순종의 글씨를 집자했지만, 독립문은 이완용의 글씨일 확률이 높다. 1924년은 이완용 아들이 남작에 임명되어 아직까지는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그 당시 신문기사에서 권력에 반하는 유언비어를 기사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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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사 캡쳐>


 우야든동 대웅전도, 독립문도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보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매국노 이완용의 흔적이기는 하나 그 또한 역사이다. 우리가 숙지해야 할 것은 사물에 친일이라는 굴레를 씌우기 보다 저 글씨들이 이완용의 흔적임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글쓴이.. 김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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