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중 정원가 예찬 26] 물길로 예술과 원림을 연결한 작원(勺園)의 미만종 편



역사상 한족의 마지막 통일을 이룬 명조는 두 번에 걸쳐 수도를 옮기면서 원림분야에도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됐다.  당시에는 원나라 수도 대도(現 북경)를 중심으로 황가원림이 있었고 강남일대를 중심으로는 사가원림이 편중되어 발달되어 왔다. 명조에 와서는 남경에서 북경으로의 천도 즉, 남-북 이동현상으로 사가원림의 고른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농민출신인 주원장은 1368년 국호를 명(明)이라 칭한 후 응천부(應天府:남경)에 수도를 정하고 특히 문화발전에 힘을 쏟았다. 이후 1420년 주체(朱棣:영락제)가 황제에 등극한 후 순천부(順天府: 북경)로 천도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북방 사가 원림이 성행하기 시작한다. 특히 수도인 북경의 사가 원림은 권력의 중심인 외척, 공신, 문인들 위주의 원림경영이 주를 이루었으며 성내에는 구획화된 원림이 조성되었고, 교외에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화려한 원림을 조영하는 특징을 가진다. 

<미만종 자화상>


 유동(劉侗)의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는 북경지역 명원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 시기 원림 조영자 중 대표적 인물로는 단연코 미만종(米萬鍾, 1570~1628 호: 友石、湛園)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관직생활 덕분에 중국대륙의 남북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쌓은 경험과 산지식을 바탕으로 북경에 와서 원림을 조영하게 된다. 당시 운하가 발달하여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북경으로 운송 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더욱 풍성한 원림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미만종은 협서 사람으로 북경 완평현(宛平縣: 현 북경 서성구, 풍대구, 석경산구, 해정구, 문두구구 에 해당함) 으로 이주하여 살았으며, 그는 명대 저명한 서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원림 조영에 있어 이론과 실무능력 이외에도 전문적 예술성을 보유한 보기 드문 원림 조영가로 손꼽힌다. 미만종은 북경 성 인근 세 곳에 원림을 조영하였다. 이들은 바로 유명한 만원(漫園), 담원(湛園), 작원(勺園)이다.
 

<북경대 작원 일부>


 이 원림들은 물을 공통으로 이용한 산수원으서 산수화적 의경을 설계의 기본으로 삼은 대표적 북방 사가원림이다. 세 곳의 원림은 미만종의 다양한 예술활동이 이루어진 본거지였으며, 문인들의 교류의 장으로서 이용되어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장소성을 지니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작원(勺園)은 미만종이 조영한 이 세 곳의 원림 중 가장 뛰어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현 북경시 해정구 북경대학 서문 내에 위치하고 있다. 건축물은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원림 내 수체계와 문헌을 통하여 그 규모와 조영 방식을 엿볼 수 있게 됐다. 작원은 원래 약 70,000㎡의 면적에 자리하였고 26곳의 경점(景点)이 조성되어 있었다. 해정(海淀) 지역 수변 서편에 산을 끼고 지당, 계곡, 천(泉)과 다리가 주된 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원림의 대표적 경관연출기법인 허(虛)와 실(實)의 미학, 즉 비어있고 가득 차있는 공간들을 원림설계의 기본으로 삼아 공간창조에 다양성을 두었으며 물(水)과 산(山), 수(樹)와 석(石), 옥(屋)과 교(橋)의 대비를 통하여 다채로운 경관을 구성하고 있다. 원림 내 곳곳에는 동천(洞天)과 구릉이 숨겨진 듯 보이는 반은반현(半隱半現)의 수법이 절묘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꽃, 죽림, 소나무 등을 곡수(曲水), 곡교(曲橋)의 곳곳에 배치하였고, 정자와 주랑의 차폐효과를 통하여 위요된 느낌을 자아냈으며 은일사상을 원림 내 전체적 분위기로 자아냈다.


<작원 평면도>


 작원은 미만종을 중심으로 당대 황건(黃建), 려구현(呂九玄), 원중도(袁中道), 왕역(王繹), 왕사임(王思任) 등의 걸출한 문인들과 더불어 원림감상과 음주를 통한 풍류적 아취를 즐겼으며, 더불어 이곳을 제재로 삼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였다. 미만종은 작원수계도(勺園修禊圖)를 그려 작원의 풍광을 묘사하였다, 이 그림은 현재 북경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 만원(漫園)은 북경 덕승문(德勝門) 적수담(積水潭) 동쪽인 십찰해(什剎海) 변에 위치하고 있다, 만원에 관한 내용은 청대에 북경의 명승고적 등을 기술해 놓은 신원식략(宸垣識略), 미만종의 만원초성시(漫園初成詩), 이지춘의 신미 입춘사집 만원(辛未立春社集漫園) 등을 통하여 원림 구성 요소의 경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만원(漫園)은 산·호·루·정·사·각·재·류·매·포·학·등의 원림 요소와 지당과 수체계(水體系)가 계획적으로 연결된 수경원(水景園) 으로 강남 사가 원림의 설계방식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담원(湛園)은 북경 서쪽 장안(长安:현 동성구)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담원화경시(湛園花徑詩) 및 담원잡영(湛園雜詠) 을 통해 볼 때 곡수(曲水), 수함(水檻), 유상정(流觴亭), 서화선(書畫船), 판교(板橋)를 비롯한 다양한 원림 요소로 인하여 많은 문인의 제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만종 서법>


 미만종은 당송 이래 원림 조영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은 산수원의 전통 방식을 이어 받아 중국의 남·북방의 원림조영 방식을 반영한 명대 최고의 걸작을 탄생시킨 원림가다. 미만종의 작원은 중국 고전 예술의 발전 및 창작의 산실이었으며 현재 까지도 문학, 회화, 원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굳건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2013년부터 북경대는 작원의 수체계를 복원하고자 사업을 시행하였고 고증을 통해 일부 물길을 복원한 바 있다.

 작원은 청나라 초 국가에 환속되었고 청나라 강희제가 정친왕(鄭親王)에게 하사 한 후, 북경대의 전신인 연경대학이 학교 부지로 매입한 후 현재에 이르면서 미만종의 예술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곳 학생들은 캠퍼스 내에서 중국 최고 원림의 흔적을 함께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지만 작원의 복원을 통해 중국원림의 옛모습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본다.

 

신현실

중국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

(사) 한국전통조경학회 집행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출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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