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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속에서 찾은 어머니의 품
저는 강릉 오죽헌 옆에 있는 동양자수박물관에서 박물관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옛 어머니들이 한땀 한땀 정성을 담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놓았을 자수를 설명할 때마다 친정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숨결이 느껴져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곤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마흔이 갓 넘으신 어머니의 작은 어깨위에는 여든이 넘으신 홀시어머니와 어린 육남매가 달려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희들을 키우시느라 고생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어느 날,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께서는 어린 제 손을 꼭 잡으며 “처음 시집와서는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한복 바느질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 하는구나” 하시며 아버지 없다하여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늘 우리들 앞에서는 힘든 내색 한번 안하시고 아버지의 몫까지 넘치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바느질 솜씨 좋은 어머니는 언제나 저희 육남매 옷은 직접 시장에서 천을 떠와 그때그때 유행에 맞게 예쁘게 만들어 입혔고, 교복은 비록 물려 입었지만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몸에 맞게 고쳐주셨습니다. 늘 한복을 만들고 남은 조각은 모아두셨다가 조각조각 여러 빛깔 곱게 맞추어가며 조각보와 밥상보를 만들어서 너희들 시집갈 때 주겠다며 장롱 깊숙이 넣어 주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보 앞을 지날 때면 한참동안 머물러 있곤 합니다. 그때는 어머니라서 강해야하고, 우리를 키워주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줄 알았는데 내 나이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어머니도 여자였고, 얼마나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며 참고 견뎌냈는지 자수를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읽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강릉에 사는 김아지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는 자수 책을 읽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자수는 쇠절구공이를 갈고 갈아 바늘을 만드는 것과 같은 고행이라며 때론 아프고 쓰린 시집살이를 인고하며 삭힐 수 있는 것도 강릉 수보자기를 만들던 끈기와 참을성 때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우리 어머니께서 자신보다는 가족부양을 위해 흘렸을 땀방울과 눈물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육남매 모두를 건강하게 잘 키워내신 어머니는 효도 한번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항상 자식을 위한 마음의 보자기에 정과 사랑을 가득 담아 주시고 고생만 하시다가 일흔에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자수를 설명할 때마다 어머니의 고단함과 아픔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래서인지 박물관에 있는 자수는 그냥 인위적인 작품이 아니라 우리들 어머니의 고단한 삶과 인고의 세월을 참고 견디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더욱 더 소중하고 애착이 많이 갑니다.
지난해 4월경 미국에서 30년을 사셨다는 노부부가 모란꽃 자수를 보시고 그 자리에 한참 멈춰 서서 어린 아이처럼 울먹거리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께서 시집갈 때 부자 되고 행복하라고 비단 천에 곱게 수를 놓아 주신 것이 모란꽃이었다며 지금도 어머니가 그립거나 고향이 그리울 때면 꺼내보곤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모란꽃 자수를 보니 친정어머니가 더욱 그립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머니 품에 안긴 것 같다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지금은 인정이 점점 메말라 가고 속도와 경쟁만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족 공동체마저 점차 허물어져가는 시대입니다. 우리 가슴속에서 늘 그리운 어머니,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하시고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하셨던 그 어머니의 모습을 저는 우리 전통 자수 속에서 발견합니다. 옛 어머니들이 남긴 자수는 보면 볼수록 발효가 잘 되어 곰삭은 젓갈처럼 세월의 정겨움이 느껴지고, 돌아가면 언제나 반겨주는 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생각나게 합니다.
김미숙 (강릉 동양자수박물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