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벽동이야기> 조손(祖孫)은 친구다`




조손(祖孫)은 친구다

 

어릴 적 내게도 왕초가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 위인 둘째댁 막내 당숙

목소리가 크고 체격도 좋아 동네나 시내 어디를 가든 왕초다.

왕초의 꼬붕이었던 나는 늘 목에 힘주고 다녔다.

어떤 날은 집 앞을 지나는 여학생 치마를 들추라하면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어김없이 임무를 수행해 냈다.

 

객지에서 10여 년 전 고향으로 돌아오신 당숙께서

강백이 저 놈이 옛날에 어쩌구저쩌구

그 옛날 일들을 하나씩 얘기하시면

기억나는 것도 있지만 기억에도 없는 것들도 있다.

어느 날 말씀하시던 당숙께서 한참동안 웃음이 터지시더니

그 옛날이야기를 꺼내셨다.

 

세계 각지의 동물에 관심 많으셨던 조부님께서

선교장 안채에 손주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아프리카의 사자나 코끼리, 원숭이 등

신기하고 재미있는 동물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면

우리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어 간다.

 

한번은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데

밖에서 조부님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훼방꾼이 나타난 것이다.

쫓아버려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미닫이문은 잘 열리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가느다란 미닫이 창살을 머리로 받고

머리를 쑥 내밀어 누구야? 하고 소리를 쳤다.

 

하인을 불러 문짝을 다시 만들라고 시키시고는

남들은 해보지 못한 별난 짓 다하고 다니니

너는 나중에 한은 없겠구나 하시며 웃으시던 조부님 말씀이 생각난다.

당숙께서는 지금도 가끔 그 일이 생각나 혼자서도 웃으신다고 한다.

나도 함께 따라 웃었지만 정말 기막힌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손은 친구라 하는 것 같다.

 

-碧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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