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바위의 추억

 

 좋은 생각만 갖게 하는 바위가 있다.

 

생활인으로 살아온 수십 년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고향집(장흥존재고택) 뒷산의 병풍바위가 바로 그곳이다. 나의 유년시절 추억이 가득 담긴 곳이며, 정조 시대 실학자이셨던 존재 위백규 할아버지께서도 즐겨 찾으셨다는 곳이다.

 

 

 병풍바위는 그 모양이 병풍을 펼쳐 놓은 것과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억새풀과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방촌마을의 한가로운 풍경이 바로 아래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병풍바위 뒤편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지금의 정남진인 신동마을의 푸른 바다위로 한 척의 돛단배를 품고 끝없이 이어진 풍경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그날 쌓였던 짜증나고 좋지 않은 생각들은 어느덧 바람을 타고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나는 취학 전부터 중학교 때까지 거의 매일 이곳을 찾았다. 소를 몰고 오기도 하고, 땔감을 구하기 위해, 때로는 남들이 나무베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뒷산에 올랐다. 그때마다 이곳이 나의 종착점이었다. 지금 와서 그 이유를 돌이켜보면, 병풍바위 근처에서만 볼 수 있는 탁 트인 경치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기고 했지만, 병풍바위와 그 근처에 모여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바위를 타고 노는 재미가 더 컸던 것 같다.

 

 가장 뒤쪽에 있는 병풍바위가 바람을 막아주고, 그 앞으로는 초등학교 교실에 있을 법한 풍금처럼 생긴 바위, 편안히 쉴 수 있게 놓여진 평평한 바위, 뾰족하고 기다란 생긴 바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모여 있다.

 

 나는 이곳을 주로 혼자서 찾았지만 가끔은 동네꼬마들과 함께 바위들을 아슬아슬하게 옮겨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곳은 우리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던 셈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곳을 잊고 살았다.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구불구불 이어졌던 마을길과 정겹게만 보였던 초가집들이 반듯하고 깨끗하게 바뀌면서 우리 마을도 변해갔다. 젊은이들은 도회를 꿈꾸며 하나 둘 떠나 마을이 비어 가면서 병풍바위를 오르는 길도 그렇게 없어져 갔다.

 

 올봄 시골집에 들렀을 때, 그동안 잊고 지냈던 병풍바위의 풍경이 문득 떠올라 뒷산으로 향했는데 빽빽하게 자란 잡목들과 그것을 휘감은 가시덩굴 때문에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참으로 아쉬웠다. 올가을에는 낫과 톱을 준비하여 이곳을 다시 찾으려 한다. 풍금바위 앞에 앉아 나의 흉내반주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고, 새마을 노래를 목청껏 불렀던 동무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 병풍바위가 새삼 그립다. 존재 할아버지께서도 이곳 병풍바위에 올라 천관산을 바라보면서 지제지(천관산에 관한 책)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고, 가난한 마을을 내려 보면서 현실을 중시하고 개혁을 강조하는 실학에 전념하셨을 것이라 생각하니, 나도 하루 빨리 이곳을 다시 찾아 찌든 때를 씻고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 보고 싶다.

위재현

장흥 존재고택 소유자



 News & Company

법인명 : 주식회사 리몽 | LEEMONG corp.

등록번호 : 강원 아00093 |  발행일자 : 2011. 9. 5

발행인 :  이원석 | 편집인 : 이진경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미 기사배열 책임자 : 이원석

[25464]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강릉선교장

63, Unjeong-gil, Gangneung-si, Gangwon-do,[25464] Republic of Korea

Email : kchnews@naver.com T : 02-733-5270 F : 02-6499-9911

 ⓒ문화유산신문 당사의 기사를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링크, 게재하거나 배포하실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19 KCHN All rights reserved. Hosting &  Powered by Leemong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