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학습중독증


김 방 식

안동 군자마을 관장

 

   언제부터인가 ‘체험’이라는 말 뒤에 ‘학습’이라는 말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체험학습’이 나쁜 말은 아니니 굳이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체험을 통해서 얻는 지식이야말로 살아 있는 지식이 아니던가?

 

“여보세요 군자마을이죠?”

휴대전화를 통해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초등학교에 다닐 정도 나이의 아이가 있는 젊은 엄마의 목소리다.

“예, 그렇습니다.”

“거기 고택 체험하는 곳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어떤 체험이 있어요?”

“글쎄요…… 고택에 묵는 것 자체가 소중한 체험이지요.”

“잠자고 밥 먹는 것 말고 체험 말이에요.”

“잠자고 밥 먹는 것도 체험이고 노는 것도 체험이지요.”

이쯤 해서 퉁명스럽게 들리는 나의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대화는 엉키기 시작한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셈이다.

“그게 아니고 ‘체험학습’이요오~”

젊은 엄마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꼬리를 늘인다.

“어떤 체험학습 말인가요?”

“예를 들면 서당체험이라던가 예절체험 같은 거 있잖아요. 참 답답하시네~”

어느덧 대화는 반 시비조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일찌감치 감을 잡고 있으면서도 짐짓 딴청을 피운다.

“그러지 말고 그냥 아이 손잡고 오세요.”

“거기 체험학습 안 하는 곳인가요?”

“그냥 체험하는 곳은 맞는데 학습하는 곳이라기에는…….”

“그러면 어떤 곳인데요?”

“게으름 피우면서 쉬는 곳이지요.”

 

어찌어찌 해서 이 젊은 엄마는 아이들 손을 잡고 군자마을에 왔다. 자연과 어우러진 집과 정원을 보면서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지만, 아직도 엄마는 자신의 선택이 불안하다. 교사가 있어서 줄 맞추어 앉혀 놓고 어떤 내용이든 수업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초롱초롱 눈망울을 굴리면서 열심히 듣고 있어야 하는데, 관장이라는 사람이 그냥 같이 앉아서 차나 마시자고 하니 말이다.

한편, 아이들 역시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까닭 없이 불안해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차를 마신 뒤 아이들을 불러 함께 마을을 산책한다. 애 엄마는 자기 아이들을 앉혀 놓고 인사하는 법 등의 예절이라도 제대로 가르쳐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데 나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건 연꽃이고 저건 수련이지. 너, 연꽃과 수련이 어떻게 다른지 아니?”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그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자고로 아이들은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빠르다.

“알아요. 연꽃은 크고 수련은 작아요.”

“맞아. 그런데 또 다른 게 있는데 물 위로 잎과 꽃대가 솟아오른 것은 연꽃이고, 수련은 물 바로 위에 잎과 꽃이 피어 있지.”

아이들과 나는 연꽃과 백일홍, 청개구리, 잠자리, 무당벌레 같은 것들을 보고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싫증을 낼 때쯤이면 굴렁쇠 몇 개를 던져준다. 굴렁쇠를 넘어뜨리지 않고 굴리는 법을 가르치다 보면 그들은 스스로 깨달아 도리어 내게 물리법칙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아이들과 나는 툇마루에 누워 하늘을 본다. 아이들은 아무 말이나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것 같지만, 이곳의 붉은 노을이 도시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고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애 엄마가 식사시간임을 알려줘도 쉽사리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된 마루가 주는 나뭇결의 감촉을 즐기려고 일부러 딴청을 피우기도 한다.

밤이 되면 별자리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카시오페이아자리이며 북두칠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복습을 한다.

 

“요즘 아이들 불쌍하잖아요? 학교에 갔다가 오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태권도에, 암기학원에, 영어회화에, 수학, 글쓰기, 웅변학원 등 아침부터 밤까지 학습만 있네요. 아이들을 좀 쉬게 하면 어떨까요? 여기까지 와서 또 줄 맞추어 놓고 예절이며, 한자며 그런 것들을 한두 시간 가르친다고 한들 그걸 다 담고 갈 수 있겠어요? 바깥에는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새소리도 들리고, 아까 보았던 그 연잎 위에는 청개구리란 놈이 아직도 꼼짝 않고 있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실내에 앉아서 예절 바르게 행동하는 시늉(?)을 해야만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놀면서 모든 걸 터득해 나가는 것 같아요.”

 

이런 내 이야기를 듣고도 즐겁게 놀고 깨달으며 스스로 알아서 하루를 보낸 아이들이 불만스러운 엄마라면 ‘학습중독증’은 아닌지 분명히 한 번쯤은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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