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
남파고택 그리고 조부님

강정숙~3.JPG
강정숙
나주 남파고택 종부
한별고등공민학교의 교사가 되어 남파고택(南坡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263호)의 문을 들어선 때가 바로 엊그제 같다. 그런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파고택 하면 가장 먼저 조부님이 생각난다. 작은 키에 흰머리가 많으신 조부님. 마당의 잡풀을 손수 뽑으실 만큼 검소하신 분이다. 화장지도 부드러운 종이를 반듯하게 잘라놓고 쓰게 하셨고, 일과를 메모하신 것은 물론 고택의 자료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으셨다. 살아생전 기록해 두신 모든 것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청마루에 앉아 글을 쓰시던 조부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조부님은 배움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하셨다. 건강한 사람이 구걸을 오면 “육신이 멀쩡한데 일을 하지 왜 얻으러 다니느냐?”라고 나무라시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고학생이 “학비가 없어 그러니 도와주세요.” 하면 공부 열심히 하라며 학비를 보태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남파고택 밀양 박씨 종부의 길은 가문의 예법을 익히고 조상을 섬기며 가문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지만 이는 조부님을 통해 고스란히 생활이 되었다. 조부님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정하시고 고축과 훈계라는 글을 써 조상님께 고하시며 종부로서 책무를 일러주신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형제간에 우애해라.”, “절약하되 꼭 필요할 때는 크게 써라.”,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당부하시던 조부님의 삶의 철학.
고택 여기저기에 조부님의 손길이 녹아 있다. 고택을 관리하는 일은 이젠 나의 일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마당을 정리하고 풀을 뽑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루를 닦고 거미줄을 걷어내고 기둥을 갉아먹는 벌레를 잡고 고택을 찾는 손님을 맞아 내력을 소개한다. 이렇게 하루가 간다.
조부님이 나에게 남기신 것이 또 있다. 종부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조부님께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시작한 고등공민학교를 잘 운영하는 것도 고택 관리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학생들과 모를 심고 보리를 베고 벼를 베며 인간관계를 가르쳤고, 경제를 알게 하고 모은 돈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추억이 그것이다. 조부님이 세운 고등공민학교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1982년부터는 국가 정책으로 영세민 교육비가 지원되어 고등공민학교가 폐교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교한 그 자리에 유치원을 설립하여 그 맥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에 고택이 함께 숨 쉬는 걸 느낀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남겨주고 접하게 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복잡한 문화재보호법은 원형 보존을 위해 고치지도 못하게 되어 있다. 저만큼 떨어져 있는 화장실, 그래도 재래식이 아니라 다행이다. 비가 오면 제일 불편하고. 재래식 부엌은 난방 불을 피우는 어려움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 한쪽에 만들어 쓰는 입식 부엌. 식사할 때는 이동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음식을 만들어 대청으로 옮겨 제사를 지낸다. 문중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잔칫집이 된다. 잔치는 종부의 몫이다.
이제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까지 자라서 고택을 떠났다. 일손이 없어 고택 관리가 힘이 든다. 2009년부터 시행된 고택문화재 보존 관리를 위한 관리 인력 지원으로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지원의 손길이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다. 현재 고택 체험을 하고 있으나 방문객이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가끔 외국에서 방문한 손님들이 고택의 아름다움을 극찬할 때는 마치 애국자가 된 듯싶어 가슴이 뿌듯하다. 또한, 고택의 건축양식을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을 만날 때는 보존 관리를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한옥에 하룻밤을 묵으며 머리를 식히러 오신 손님들을 만나면 그래도 내가 한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가 싶어 힘들다는 것을 잊는다.
2008년 대통령이 주셨던 문화유산상이 부끄럽지 않도록 밀양 박씨 종부로서 온 힘을 다할 것이다. 고택이 사람의 손길을 느끼고, 활기 넘치는 고택으로 남기를 우리 사회가 원하고는 것처럼 고택 관리에 대한 지원이 지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약력>
교육학 석사
한별유치원 원장
전 나주시의원
<자유기고>
남파고택 그리고 조부님
강정숙~3.JPG
강정숙
나주 남파고택 종부
한별고등공민학교의 교사가 되어 남파고택(南坡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263호)의 문을 들어선 때가 바로 엊그제 같다. 그런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파고택 하면 가장 먼저 조부님이 생각난다. 작은 키에 흰머리가 많으신 조부님. 마당의 잡풀을 손수 뽑으실 만큼 검소하신 분이다. 화장지도 부드러운 종이를 반듯하게 잘라놓고 쓰게 하셨고, 일과를 메모하신 것은 물론 고택의 자료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으셨다. 살아생전 기록해 두신 모든 것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청마루에 앉아 글을 쓰시던 조부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조부님은 배움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하셨다. 건강한 사람이 구걸을 오면 “육신이 멀쩡한데 일을 하지 왜 얻으러 다니느냐?”라고 나무라시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고학생이 “학비가 없어 그러니 도와주세요.” 하면 공부 열심히 하라며 학비를 보태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남파고택 밀양 박씨 종부의 길은 가문의 예법을 익히고 조상을 섬기며 가문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지만 이는 조부님을 통해 고스란히 생활이 되었다. 조부님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정하시고 고축과 훈계라는 글을 써 조상님께 고하시며 종부로서 책무를 일러주신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형제간에 우애해라.”, “절약하되 꼭 필요할 때는 크게 써라.”,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당부하시던 조부님의 삶의 철학.
고택 여기저기에 조부님의 손길이 녹아 있다. 고택을 관리하는 일은 이젠 나의 일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마당을 정리하고 풀을 뽑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루를 닦고 거미줄을 걷어내고 기둥을 갉아먹는 벌레를 잡고 고택을 찾는 손님을 맞아 내력을 소개한다. 이렇게 하루가 간다.
조부님이 나에게 남기신 것이 또 있다. 종부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조부님께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시작한 고등공민학교를 잘 운영하는 것도 고택 관리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학생들과 모를 심고 보리를 베고 벼를 베며 인간관계를 가르쳤고, 경제를 알게 하고 모은 돈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추억이 그것이다. 조부님이 세운 고등공민학교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1982년부터는 국가 정책으로 영세민 교육비가 지원되어 고등공민학교가 폐교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교한 그 자리에 유치원을 설립하여 그 맥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에 고택이 함께 숨 쉬는 걸 느낀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남겨주고 접하게 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복잡한 문화재보호법은 원형 보존을 위해 고치지도 못하게 되어 있다. 저만큼 떨어져 있는 화장실, 그래도 재래식이 아니라 다행이다. 비가 오면 제일 불편하고. 재래식 부엌은 난방 불을 피우는 어려움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고 한쪽에 만들어 쓰는 입식 부엌. 식사할 때는 이동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음식을 만들어 대청으로 옮겨 제사를 지낸다. 문중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잔칫집이 된다. 잔치는 종부의 몫이다.
이제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까지 자라서 고택을 떠났다. 일손이 없어 고택 관리가 힘이 든다. 2009년부터 시행된 고택문화재 보존 관리를 위한 관리 인력 지원으로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지원의 손길이 언제 끊어질지 알 수 없다. 현재 고택 체험을 하고 있으나 방문객이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가끔 외국에서 방문한 손님들이 고택의 아름다움을 극찬할 때는 마치 애국자가 된 듯싶어 가슴이 뿌듯하다. 또한, 고택의 건축양식을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을 만날 때는 보존 관리를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한옥에 하룻밤을 묵으며 머리를 식히러 오신 손님들을 만나면 그래도 내가 한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가 싶어 힘들다는 것을 잊는다.
2008년 대통령이 주셨던 문화유산상이 부끄럽지 않도록 밀양 박씨 종부로서 온 힘을 다할 것이다. 고택이 사람의 손길을 느끼고, 활기 넘치는 고택으로 남기를 우리 사회가 원하고는 것처럼 고택 관리에 대한 지원이 지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약력>
교육학 석사
한별유치원 원장
전 나주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