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한옥에서 눈뜨고 싶어라



어쩌다 한옥에서 잠들 때면 새소리에 눈을 뜬다. 제대로 자리 잡고 제대로 가꾸어진 한옥에서 하루 밤을 청한 날 아침이면, 잠을 깨우는 것은 어김없이 온갖 새소리이다. 제대로 자리 잡은 한옥이란 뒷산의 나무 둥치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너무 멀지도 않고 또 돌이 굴러 내릴 만큼 너무 가깝지도 않은 자리를 말한다. 또한 제대로 자리 잡은 한옥이란 집 앞을 흐르는 시내가 아낙들이 빨래감을 머리에 이고 가기에 너무 멀지도 않고 또 홍수에 물이 넘쳐올 만큼 너무 가깝지도 않은 자리를 말한다.

제대로 가꾸어진 한옥이란 지붕에는 비가 새지 않고, 온돌에는 늘 군불을 지피며 묵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습기가 차지 않는 한옥을 말한다. 제대로 가꾸어진 한옥이란 아이들의 책읽는 소리 노래 소리 그치지 않는 집을 말한다. 또 어떤 손님이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하여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치지 않는 한옥을 말한다.

 제대로 자리 잡고 제대로 가꾸어진 한옥 근처에는 참새며, 까치, 굴뚝새, 방울새, 딱따구리, 딱새, 멧비둘기, 종달이, 박새와 같은 텃새들이 다투어 지저귄다. 심지어 봄날이면 장끼가 내지르는 절정의 외마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또 철따라 제비, 꾀꼬리, 파랑새, 물떼새, 왜가리, 두루미 같은 철새들이 한옥이 있는 마을을 찾아 들기도 한다. 여름이 가까우면 한옥의 처마 끝을 울리는 뻐꾸기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새들은 왜 이른 아침부터 한옥 근처에서 지저귀는가? 새들도 사람들이 경작을 해야 먹을 것이 많고, 어느 정도는 우거진 숲이 정돈되어야 날아다니고 살아가기 좋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생명을 해치지 않는 예의와 교양을 갖춘 사람들 근처에 살면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옥의 아침은 새소리에 눈을 뜬다.

새소리에 눈을 뜨는 문화는 인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고도의 생활양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소리에 눈을 뜨는 사람은 낮 동안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베풀지언정 결코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함께 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웃을 생각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유복한 삶의 방식이 곧 문화요, 그것도 제대로 된 문화이다.
문화는 라틴어로 쿨투라cultura이다. 쿨투라는 잘 가꾸어진, 손질된, 고상하고 세련된, 기품 있는 것을 의미하는 형용사 쿨투스cultus의 명사형이다. 그러므로 쿨투라는 문화와 함께 경작, 재배, 수양, 문화, 교양, 수련 그리고 세련됨을 의미한다. 즉 세련된 삶이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 즉 쿨투라와 쿨투스라는 말은 원래 동사콜로colo에서 유래한다. 콜로는 일인칭 현재로, 나는 밭을 갈고, 정원과 들판을 가꾸고 경작하며, 나는 곡식을 재배하면서 살며,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덕을 닦고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의 의미이다.

이런 의미의 문화일지라도 그 실행은 다양하다. 현대 도시문화는 산을깍아 내리고, 숲을 깡그리 밀어내면서 그야말로 인간과 시멘트만의 거주공간을 만들면서“나는 거주한다”고 말한다. 즉 자연을 깍아내고 파헤쳐버린 공간에서 문화인이기를 바란다.
자연을 다 밀어내고 난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멘트벽에 갇힌 인간이 인간을 이리 치고 저리 치면서 살 수 에 밖에 없지 않겠는가?
전통한옥을 보건데 우리 조상들이 추구한 문화란 자연에 대한 인간다운 삶의 대답이다.
한옥문화란 거칠 것이 없고 끝까지 인간 맘대로 할 수 없는 대자연의 물음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대답이다.
자연에 대한 한옥문화의 대답은 자연을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새소리에 잠을 깰 만큼의 지척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공간을 나누며 살자는 것이다. 문화란 결국 한 시대, 한나라, 한 민족이 자연과 마주 앉아 스스로 선택하고 지켜가는 삶의 양식이요, 정신적 소산이다.
그 누구도 영원히 살지 않고 그 어떤 문화도 영원하지는 않다. 어떤 선택이었든 삶의 바톤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삶의 바톤을, 문화의 바톤을 받았을 때보다는 보다 잘 가꾸어지고 세련된 삶의 양식을 다음 주자에게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영원히 눈을 감아야 할 날은 누구에게나 온다. 나에게도 그날이 온다면, 그리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새소리에눈을 뜬 잘 가꾸어진 한옥에서 눈을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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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석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약 력 ◆
중요민속자료 제172호 청송 성천댁 소유자
1985년 경북대 철학과 석사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 철학박사
1993년 교육과학부 브레인 풀(Brain pool) 초빙교수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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